화개동천 산기슭에서 찻잎을 따는 아낙네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지나, 한 민박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 6시에 화개동천 길을 나섰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어귀까지는 5km 남짓 되고, 쌍계사 어귀에서 화개동천 안쪽 신흥마을까지는 4km가 된다. 녹차 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쌍계사 어귀에서 신흥마을 삼거리 사이의 길옆 산자락이다. 일은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길도 없는 개울을 바지 걷어붙이고 건너기도 하고, 줄배 시늉을 낸 널빤지배를 타고 건너서 가파른 산자락에 붙어 아낙네들이 녹차 잎을 딴다. 화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녹차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례나 광양에서 건너온 이들이다.
녹차 잎 닦는 법을 시연하고 있는 산골제다 김종관 씨.
쌍계사 어귀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부산국제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어제 순천의 낙안읍성을 들렀다가 화개로 들어와 잠을 자고 쌍계사 뒤편의 불일폭포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특수학교라 한 학년 학생이 60명으로 단출하다. 교감선생님이 인솔해 현장학습을 왔는데, 현장학습용 교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선 길이었다. 그들의 다음 일정은 녹차 체험이었다. 학생들이 산비탈을 치고 올라간 곳은 녹차 잎으로 녹차냉면을 만들어 유명해진 산골제다였다.
산골제다의 김종관 대표는 일손이 바쁘지만, 학생들이 온다기에 기꺼이 문을 열었다고 했다. 교실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신이 나 수다스러워진 학생들에게, 산등성이 차밭에 올라가 30분 동안 찻잎을 따게 했다. 찻잎은 새순만을 따는데, 가지 끝에 쭈뼛 올라온 엷은 잎 두 장을 똑 끊어서 따면 된다. 이때 묵은 잎이 섞이면 안 된다. 묵은 잎은 뻣뻣하고 수분이 적기 때문에 찻잎을 덖을 때 쉽게 타버린다. 녹차 잎이 타면, 찻잎 속에 탄 냄새가 배어 향이 나빠진다. 그래서 손놀림이 좋은 농부들도 찻잎을 따고 나면, 간간이 섞인 묵은 잎을 따로 골라내야 한다. 햇잎만 따는 것, 이것이 좋은 녹차를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다.
녹차 잎을 따고 있는 부산국제중학교 학생들.
학생들이 딴 녹차 잎을 덖기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었다. 재래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가마솥 앞쪽에 볏짚으로 짠 멍석을 깔았다. 가마솥이 달궈지자 김종관 씨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가마솥에 뿌리며 설명했다. “초의선사가 쓴 ‘동다송’에 보면, 물방울을 뿌리면 곧바로 증발할 만큼 가마솥을 달구라고 했습니다. 그 온도가 섭씨 400℃쯤 됩니다. 장갑을 몇 겹으로 끼고 녹차를 덖지만, 솥이 뜨겁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김종관 씨가 녹차 잎을 가마솥에 넣고, 뒤집고 누르기를 반복하면서 녹차 잎의 숨을 죽이는 시연을 보였다.
멍석 위에서 녹차 잎을 비비고 있는 학생들.
덖고 비비는 작업이 끝나면 녹차 잎을 그늘에 말린다. 잎이 다 마르면 녹차가 완성된다.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덖는 방법과 덖을 때의 온도, 도르르 말리는 녹차 잎의 정도에 따라 작업 속도를 조절하는 게 어렵다. 집에 가서 말리겠다며, 덖은 녹차를 봉지에 담아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위해서다.
화개에 새로 생긴 공간으로 차 문화센터가 있다. 올 5월 야생차문화축제에 맞춰 개관한 차 체험관도 있다. 200명이 함께 녹차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야외에서 녹차 잎을 따고, 딴 녹차 잎을 덖고 비벼서 말리는 작업을 할 수 있으며, 더불어 다도 체험까지 할 수 있다. 하동군의 이종국 계장은 체험장은 차 단체나 차 동아리들이, 또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와 이용하기 편하다고 한다. 300개가 넘는 녹차 농가에서 숙박하면서 차를 만들 수 있도록 연계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제 화개에 오면 누구든 녹차를 만들어보고 맛볼 수 있게 됐다. 화개 산기슭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고, 뜨거운 가마솥에 손을 담갔다가 도톨도톨한 멍석에 녹차 잎을 비비고 나면, 녹차의 청량한 기운과 화개의 맑은 바람이 내 안에 똬리를 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