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선비촌의 전경.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불리는 곳이다. 주세붕이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던 사묘에 학사를 세우고 ‘백운동’이라는 이름의 서원을 꾸렸다. 이것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가 임금인 명종에게 새 이름을 지어줄 것을 건의하여, ‘소수’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임금에게 이름을 얻은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는데,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기도 하다.
영주 땅은 유학의 본고장이다. 유생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사방 10여리를 가도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소수서원 지나 청다리라고도 불리는 제월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설의 본원지이기도 하다.
청다리를 지나 산 아래 들판에 7년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공사가 진행됐다. 그 공사가 지난가을에 끝났다. 산자락 아래 일곱 채의 기와집과 다섯 채의 초가가 강학당, 정자, 누각, 저잣거리, 주막거리, 대장간, 방앗간 등과 어우러진 마을로 태어났다. 그 마을이 영주시가 7년 동안의 공사로 만들어낸 선비촌이다.
무인의 집에서 투호를 하고 있는 관람객.
강학당에서는 실제로 유교 강의가 진행되고 있고, 떡메를 직접 쳐가며 떡을 빚어 파는 저잣거리에는 문방구·도자기·옷감 등 전통적인 소품들을 파는 점방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집들을 재현한 솜씨 하며 한갓진 조선의 골목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학생들이 선비촌에서 한학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정말 반가운 것은 낮 동안 전시 공간이었던 가옥들이 밤에는 체험 공간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이 방은 일반인들에게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값도 아주 싸서 마당 딸린 두 칸짜리 초가를 통째로 빌리는 데도 모텔 숙박비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추운 날, 아이들과 함께 기와가 올려진 중인의 집 중 사랑채를 빌려 들어갔다. 약방으로 꾸며진 곳으로, 방 안에는 약장이 있고 서랍마다 약초들이 잘 정돈돼 있으며 마루 천장에는 약봉지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다.
해가 진 뒤 거리는 어둠뿐이다. 길가의 바윗돌이 조명등 구실을 하지만 도회의 거리와 사뭇 달라서 나갈 일도 나갈 곳도 없다. 텔레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작은 방에 오랜만에 모인 식구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간단한 도구로 할 수 있는 놀이나 끝말 잇기, 무서운 옛날이야기 하기 등. 그러고 있노라면 밖에서 죽을 사 먹으란다. “찹쌀떡, 팥죽, 호박죽”을 외친다. 팥죽을 한 그룻 시켰더니 무척 뜨겁다. 구름다리 건너 저잣거리에서 절절 끓던 팥죽이다. 밤이 더욱 깊어져 네 명의 가족이 2인용 방에 나란히 누웠다. 옛날 같으면 이런 방에 일곱 명은 잤다고 호언을 해놓고 자리에 누웠다. 일곱이 아니라 여덟 명도 잤겠다. 어찌나 외풍이 매섭던지 식구끼리 끌어안고 자느라고 좁디좁은 방이 오히려 남는다.
이러고 있노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실컷 복닥대본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문명의 이기가 사라지고 오직 한기와 어둠만 남아 있는 선비촌에서 보낸 하룻밤은 가족이 똘똘 뭉쳐 놀고 끌어안고 자는 가족용 MT 여행이 된다.
체험행사 참여자들이 지게를 지고, 널뛰기를 하고 있다
영주시에는 이곳 말고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 많다. 읍내리 쪽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6세기경의 벽화고분과 불교의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부석사도 빼놓지 말고 돌아볼 곳이다.
영주시의 선비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문화체험 공간이다. 너무 소문이 나서 외국 손님치레로 바빠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를 권한다. 조선이라는 과거로 돌아가 넓디넓은 우주 속에 작은 단칸방, 그 안에 가족들과 알곡처럼 들어앉아 하룻밤의 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여행 메모
선비촌 숙박 예약 054-638-7114/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소수서원 054-633-2608
부석사 054-633-3464
읍내리 고분벽화 054-639-6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