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옳다”. 육군실무자(오른쪽)와 군검사들은 서로가 옳다고 주장했다.
군검찰의 육군 장성 진급심사 수사가 피치를 올리던 2004년 11월2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군의 진급 비리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라며 군검찰을 적극 지지했던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의 말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에서는 안 의원 외에도 여러 명의 의원이 비슷한 주장을 펼쳤고, 이로 인해 당(우리당)-정(국방부)-청(청와대 민정)이 연합해 육군을 공격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런데 안 의원은 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을까. 안 의원은 “그때 나는 육군의 준장 진급에 문제가 있다는 여러 건의 제보를 받아놓고 있었다. 또 당내 갈등도 있고 해서 제2정조위원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당 의원임에도 군 진급 비리를 다루는 국정조사를 하자는 강성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이 문제 되면 제2정조위원장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수뇌부 뇌물·향응 증거 포착 실패
처음 군검찰은 육군에 남재준 참모총장을 정점으로 한 사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사조직을 찾는 데는 실패하고, 대신 11월22일 육군본부를 압수 수색해 가져온 자료 중에서 육본 인사참모부 진급관리과 차모 중령이 지난해 10월3일 만들었다는 52명의 유력경쟁자 현황(이하 현황)을 찾아냈다. 이 현황에 나온 이름 중 49명이 실제 진급했다(육군 2명, 기무 1명의 명단은 틀렸다). 그러자 군검찰은 “이 현황은 사전에 진급시켜야 할 사람을 정리해놓은 것”이라며 육군의 진급심사가 정실에 흘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 총장 등 육군 수뇌부가 실제로 진급한 49명 중 어느 한 사람에게서도 뇌물이나 향응을 받고 진급시킨 증거는 포착해내지 못했다.
과연 육군에는 아직도 사조직이 있을까. 뇌물은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 총장 등 육군 수뇌부는 사전에 진급시켜야 할 사람을 정해놓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52명의 이름이 적힌 현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해답을 찾아보려면 육군의 진급 인사 시스템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래 은 매년 반복되는 육군의 진급 시스템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해 준장으로 진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대령은 1151명이었다. 군에서는 3년에 걸쳐 진급 기회가 주어진다. 이 3년 사이에 진급하지 못해 ‘4수생’ 이상이 되면 진급 자격은 있으나 진급하지 못하고 경쟁률만 높이는 ‘허수’가 된다. 군에서는 보장된 정년 덕분에 군 생활을 계속하는 4수생 이상의 대령을 세칭 ‘장포대(장성 진급을 포기한 대령)’라고 한다. 장포대 수는 진급 자격자의 절반을 넘고 있다.
차 중령이 속한 진급관리과는 해마다 1월, 전후방 각지의 부대로부터 진급 자격을 갖춘 대령 명단을 받아 장포대를 솎아내고 진짜 경쟁자인 ‘관리 대상자’를 선발한다. 지난해 그 수는 602명이었다. 그해 3월 진급관리과가 이 관리 대상자 명단을 인사운영실에 보내주면, 인사운영실은 602명의 대령이 속해 있는 전국 부대로부터 근무평정을 접수해 석차를 매겨 우수자 329명을 선발해냈다. 인사운영실이 329명의 우수자 명단을 보내오면 진급관리과는 과거 이들을 지휘한 상급자가 남겨놓은 지휘추천을 접수해 다시 136명의 우수자를 추려낸다(7월).
이때쯤 육본의 인력계획과는 이해 몇 명의 준장이 필요한지를 결정한다. 이는 준장이 앉을 빈자리를 결정하는 것이라 ‘공석(空席) 결정’이라고 한다. 공석 결정은 병과별·특기별로 이루어지므로, 근무평정과 지휘추천을 합산한 총점이 1등인 대령일지라도, 그가 속한 병과와 특기에서 준장의 공석이 나오지 않으면 진급할 수가 없다. 지난해 인력계획과는 52개 준장 공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국방부 인력관리과에 올려 승인을 받고 이를 진급관리과로 통보해주었다(8월12일 국방부 승인).
육군에서 ‘누구도 말하지 않으나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 중 하나는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육사 출신이 대체로 점수가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과별·특기별로만 진급자를 뽑으면 육사 출신이 진급을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육군은 학군과 3사, 그리고 군검사와 군판사 임무를 맡는 법무 출신도 진급할 수 있도록 강제로 비율을 할당해오고 있다. 지난해 진급관리과는 육사 출신에게는 41석, 학군 출신에게는 3석, 3사에게는 7석, 그리고 법무에게는 1석을 배정했다. 또 3개년에 걸쳐 진급자를 낸다는 원칙에 따라 각 기수별 공석도 확정했다(9월24일).
인력계획과의 공석 결정과 진급관리과의 공석 배분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으므로 오랫동안 진급 임무를 담당해온 진급관리과는 공석이 결정되기 전에 몇 개의 공석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다. 인력계획과가 공석 결정 작업을 할 무렵, 진급관리과는 지난해 나올 개략적인 공석을 산출해냈다. 이렇게 해보면 공석이 나오지 않을 병과나 특기·출신(임관)·기수가 개략적이긴 하지만 확정된다. 이때 공석이 나오지 않은 병과나 특기 출신 기수의 대령은 진급할 수가 없으므로 진급관리과는 이들을 진급 자격자에서 제외할 수 있다.
진급관리과 매년 명단 작성
이런 과정을 거쳐 모든 공석이 확정된 9월24일 진급관리과는 확정된 공석에 136명을 대입해 113명을 추려내고 이들의 명단에 ‘유력경쟁자 현황’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까 유력경쟁자 현황은 113명이 기재된 9월24일본과 52명이 기재된 10월3일본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군검찰과 육군의 주장은 판이하게 갈리는데, 이 대목이 바로 육군 진급심사 재판의 쟁점이 되고 있다(주간동아는 국방부 공보과를 통해 군검찰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군검찰을 대표하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따라서 여기는 군사재판에 나온 군검찰의 주장을 중심으로 군검찰의 의견을 정리했다).
군검찰은 52명 현황에 대해 “남 총장 지시로 만들었을 것”이라며 차 중령 등을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육본 측은 1151→602→329→136→113명으로 줄어든 과정을 전체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에 군검찰은 “52명 현황 외에 실제 진급자와 똑같은 명단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그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군검찰에 기소돼 군사법정에 출두하는 육군본부 관계자(오른쪽). 이들을 기소한 군검찰단 사무실.
두 주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근접해 있을까. 지난호 주간동아는 ‘청와대 민정의 개입으로 기무사 쪽 준장 진급 예정자 두 명이 모두 바뀌었다가 그중 한 명이 기사회생해 다시 별을 달았다. 하지만 육군 쪽 준장 진급 예정자는 남 총장의 강한 반발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육군은 변경된 기무사의 진급 예정자를 확정해주기 위해 두 번이나 선발위를 더 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검찰은 공소장에 첨부한 자료에서 청와대 민정의 요구로 별을 달게 된 기무사 대령 1명의 이름은 ‘10월3일자 현황을 만든 뒤 실제 진급자와 똑같이 만들었지만 군검찰이 찾아내지 못한 자료에 들어 있다’고 주장해놓았다(군검찰은 이를 ‘추후 조정된 유력경쟁자 명단’이라는 제목으로 임의로 정리해 공소장에 첨부해놓았다).
육군은 청와대 민정의 개입이 있은 후 두 차례나 더 선발위를 열어 이 대령을 준장 진급예정자로 확정해주었는데도, 군검찰은 이 대령은 육군이 사전에 진급시킬 사람으로 내정해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와 군검찰의 주장은 완전히 다른데, 이는 둘 중 어느 한쪽이 완전히 틀리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다.
군검찰은 군사재판장에서 육군이 두 번이나 더 선발위를 열어 ‘요식적’으로 승인해준 기무사의 준장 진급 예정자에 대해 ‘완벽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군검찰은 재판장에서 “기무를 제외한 육군의 진급자 중에서…”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선발위 심사 후 전혀 바뀌지 않은 육군 쪽 진급 문제만 거론하고 있다. 왜 군검찰은 기무사 부문은 거론하지 않는 것일까. 관계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군검찰의 육군 진급심사 수사와 재판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이 기사를 세밀히 읽어온 독자라면 진급관리과 등은 왜 2004년 대령→준장 진급 예정자 중에서 우수자를 추려왔는지에 주목할 것이다. 1151→602→329→136→113→그리고 문제가 된 52명에 이르기까지 육군은 끊임없이 우수자를 추려왔다. 이러한 사실은 설사 뇌물이나 향응이 제공되지 않았다 하더라도(혹은 군검찰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육군이 특정인을 진급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
실제로 육군이 내놓은 자료와 해명에 따르면 육군은 1151명과 602명, 329명, 136명에 대한 자료를 메인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법으로 추천위에 제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두 개의 현황으로 정리한 113명과 52명 이름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36명을 추려내 이 자료를 추천위에 제공한 것은 추천위원들에게 ‘이들 중에서 진급 예정자를 뽑아주시오’라고 한 무언의 요구로 비칠 수가 있다. 그러나 군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따지지 않고 있다.
인사 검증 자료 불공정하게 활용
이에 대해 육군 측은 “3일간 열리는 추천위원들에게 우수자를 추려낼 수 있는 객관화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한다. 육군은 “아무리 군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15명의 추천위원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대령을 다 알 수는 없다. 설령 다 안다 하더라도 개개 대령과 접촉한 기간이 다르므로 인상에 의존하는 주관적·주정적인 느낌만으로 이들을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인사 부서는 점수화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데, 이러한 일은 대기업 인사부서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급관리과가 추천위 컴퓨터에 입력해준 대령은 정확히 583명이었다. 이 583명은 그동안의 변화로 602명이 줄어든 것이다. 583명의 자료에는 근무평정과 지휘추천 등 점수화된 ‘자력’이 붙어있어, 클릭만 하면 추천위원은 누가 우수자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추천위원은 329명과 136명으로 압축된 우수자 명부도 사실상 함께 받는 셈이이다.
그러나 육군은 113명과 52명이 있는 현황은 진급관리과에서 임의로 만든 것이라 추천위원에게는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군검찰은 육군이 1151→602→329→136→113→52로 우수자를 추려왔다는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이는 육군이 우수자 위주로 진급 예정자를 선발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튼 육군이 남 총장의 지시로 차 중령이 실무자가 돼 52명을 추렸다면 추천위원과 선발위원은 ‘거수기’ 노릇을 했으므로 종범(從犯)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군검찰은 추천위원과 선발위원의 혐의점을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육군 진급심사 사건에서 또 하나의 쟁점은 진급 대상자에 대한 비위 사실을 적은 검증위(이하 검증위) 자료가 불공정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군검찰은 검증위에서 만든 자료에 차 중령이 만든 52명 현황에 들어 있는 사람(실제로 진급함)의 비위 사실도 열거돼 있으나 이들은 진급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실제로 진급한 사람 중에서 아파트 관리비를 미납하고 음주측정을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무와 헌병에서 정보 수집할 때 관리비를 내지 못했더라도 그 후 다 납부했으면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음주운전도 아니고 측정을 거부한 것이 그의 진급을 막아야 할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가. 검증위에서는 본인에게 확인해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경우엔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4년 대령→준장 진급심사를 앞두고 기무와 헌병은 315건의 비위 사실을 육군에 통보하면서 특별히 검증과정 없이 자료를 사용해달라고 요구했고 남총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육본의 이모 준장 등은 이를 추려 22명의 비위 사실을 정리하고 다시 17명으로 추린 자료를 추천위에 제공했다. 공교롭게도 17명은 모두 진급에 실패했는데, 이때 이 준장은 검증위원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검증위 직인을 찍어 추천위에 제공했다.
이 부분에 대해 육군은 이 준장이 검증위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고, 남 총장의 지시를 받은 데다 여러 명의 검증위원과 함께 일했으므로 본인 독단으로 직인을 찍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군사법원이 엄격하게 법적용을 한다면 이 부분에서는 유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과연 군사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