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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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 키우는 ‘재판부 쇼핑’ 논란

재판장과 친한 변호사 선임은 옛말… 이젠 원하는 재판부 고르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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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02-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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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최근 대형 사건에서 관할 법원 논란이나 법관 기피 신청이 이어지며 ‘재판부 쇼핑’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최근 대형 사건에서 관할 법원 논란이나 법관 기피 신청이 이어지며 ‘재판부 쇼핑’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뉴시스]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 피의자 6명이 사건 관할 법원을 서울서부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변경해달라고 서울고법에 신청했으나 2월 10일 모두 기각됐다. 이들은 앞서 피해자 격인 서울서부지법이 가해자의 구속 적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최근 대형 사건에서 관할 법원 관련 문제 제기나 특정 법관 기피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국민의 낮은 법원 신뢰도와 관련 있다. 지난달 10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46%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44%)을 근소하게 앞섰다. 표준오차(±3.1%p) 범위 내여서 ‘신뢰한다’가 반드시 더 많다고 볼 수도 없다. 확실한 것은 국민의 절반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은 결과만큼 진행 과정의 공정성에 공을 들인다. 전산을 활용한 ‘무작위 배당’ 원칙이 그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관련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 같은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원하는 재판부를 고르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尹 체포영장 서울서부지법 청구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영장 청구가 대표적인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한다. 내란 혐의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가 관할 법원도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위법이자 규정 남용이라는 것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 사건의 관할 법원을 ‘서울중앙지법’으로 규정한다. 다만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다른 법원을 관할로 할 수도 있다. 공수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전 기준으로 서울중앙지법, 군사법원(군인 사건은 군사법원에만 청구 가능)에 영장을 청구한 사건의 비중은 98%로 나타났다. 나머지 2%(7건)만 수원지법에 청구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 ‘이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대통령 측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오동운 공수처장이 진보·개혁 성향의 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또 지난달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우리법연구회 출신 정계선 재판관이 서울서부지법원장 출신이고, 헌재재판관 후보자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마은혁 판사 역시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라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공수처가 이들의 정치 성향을 보고 서울중앙지법 대신 서울서부지법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주거지(서울 용산구 한남동)를 고려할 때 공수처법의 ‘불가피한 사유’에 따라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윤 대통령 측이 이후 서울중앙지법에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공수처 영장이 적법하다며 기각했고, 이후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 구속영장은 이순형 판사가 아닌 당시 당직 판사였던 차은경 부장판사가 발부했다는 것이다.

    검찰 대북송금 사건 수원지법 기소에 이재명 반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관련된 자료를 보고 있다. 이 대표 측은 검찰이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수원지법에 관련 사건을 기소한 데 대해 반발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관련된 자료를 보고 있다. 이 대표 측은 검찰이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수원지법에 관련 사건을 기소한 데 대해 반발했다. [뉴스1]

    쌍방울을 통한 불법 대북송금 혐의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재판에서도 검찰의 ‘재판부 쇼핑’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이 대표의 다른 혐의는 서울중앙지법에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데 검찰이 대북송금에 대해서는 수원지법에 기소해 이 대표의 ‘동시심판 이익’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대북송금 재판은 검찰이 지난해 6월 수원지법에 이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 측은 이 사건이 배당된 수원지법 형사11부가 공범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한 점을 감안해 수원지법에 기소한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검찰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는 모두 법관 기피 신청을 내 현재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재판부 기피·회피·제척 사유를 두고 있다. 재판장과 혈연·지연·학연 등 연(緣)으로 얽힌 피고인 또는 사건 당사자가 배당되거나 변호인이 선임될 경우 재판부를 바꿔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부 사건에서는 의도적으로 재판부를 바꿔 자신에게 유리한 재판부를 다시 선택하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이 같은 의혹이 불거졌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항소심은 당초 2023년 1월 서울고법 가사3-1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조영철 부장판사는 평소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노 관장 측은 재판부가 배당되고 그다음 달 조 부장판사 매부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K법무법인 소속 김모 변호사를 선임했다. 재판장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이 사건을 대리할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데도 김 변호사를 택한 것이다.

    그러자 서울고법 가사3-1부는 재배당 요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서울고법은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로 사건을 재배당했다. 사건이 재배당되자 김 변호사는 다른 법무법인으로 옮겨 노 관장 사건을 계속 맡고 있다.

    김시철 부장판사는 과거 다수 이혼 사건에서 유책 배우자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판결을 내린 점이 주목받았다. 특히 김 부장판사 가족과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인연도 거론된다. 김 부장판사의 부친인 김동환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경북고 1년 후배인 데다, 노태우 정부에서 임명직인 KBS 이사를 맡았다. 1995년 5·18특별법 제정 논의 당시에는 공개 기고를 통해 제정에 반대하며 노 전 대통령을 옹호하기도 했다.

    美에서도 판사 골라 소송 걸어 논란

    미국의 경우 낙태 반대 단체 ‘히포크라테스 의사 연합’이 2022년 11월 식품의약국의 낙태약 미페프리스톤 승인을 철회해달라며 텍사스주 연방지방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한 것이 재판부 쇼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원의 매슈 캑스마릭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임명됐으며, 이미 낙태약 미페프리스톤 승인을 중단한 판결을 내린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각 연방지법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무작위 배분한다. 하지만 판사 수가 1~2명뿐인 일부 소규모 지역 법원은 해당 사건을 접수한 지역의 판사가 재판을 맡게 돼 판사 1명이 모든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재판부 쇼핑이 생기는 이유가 △극단적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법관도 이념적 성향에 따라 갈라지고 있고 △사법 불신이 커지면서 재판 자체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법관 신뢰 회복과 사법 공정성 담보를 위해서는 재판부 쇼핑의 빌미가 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은 판결문으로 말해야 하고 그 판결문에는 어떠한 흔들림이나 시비가 없도록 떳떳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재판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특정 재판부를 당사자가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법 정의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그 전에 법원 스스로가 균형을 잡고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