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종 풍경. 원형으로 건설된 금강보행교 아래로 세종시청사가 보인다. [세종시 제공]](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ae/a9/9c/67aea99c2465d2738276.jpg)
금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종 풍경. 원형으로 건설된 금강보행교 아래로 세종시청사가 보인다. [세종시 제공]
최근 금강이 주목받고 있다. 세종시가 올해 들어 행정수도 명문화 및 대통령 집무실 이전, 국회 완전 이전 등을 목표로 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서울 한강과 매우 유사하게 흐르는 금강이 돋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지도를 통해 보면 세종을 관통하는 금강과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은 여러모로 닮은 모습이다. 다만 규모 면에서 한강이 형이라면 금강은 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호수공원이 제천 물길 약점 보완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제공]](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ae/a9/dc/67aea9dc01eed2738276.jpg)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제공]
둘째, 세종 아름동에서 발원한 제천(濟川)은 세종 시내를 관통하며 방축천을 만나 몸집을 다소 키우면서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아름다운 산책 코스로 유명한 제천은 서울로 치면 청계천에 비유된다. 다만 청계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것과 달리 제천은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풍수 고전에서는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에 재물이 무궁하다고 한다. 이에 비춰 보면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제천의 재물 기운은 청계천 기운보다 약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있다. 세종호수공원이다. 세종 중앙행정타운 남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금강 강물을 끌어와 조성한 세종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면적 32만2800㎡, 담수량 50만8000t에 이르는 국내 최대 인공호수다. 제천 물줄기와 이어지도록 만든 이 호수는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제천 물길의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유량을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이는 서울 내(內) 명당수인 청계천을 복원할 때 한강 물과 지하수 등을 끌어와 유량을 늘린 것과 같다. 청계천 수량이 늘어나면서 복원 이전보다 청계천 주변 상권이 크게 활성화됐다. 이처럼 풍수에서는 재물 크기가 유량에 비례한다고 본다. 물이 많은 곳은 재물이 풍성하지만, 물이 얕고 흩어지는 곳은 재물이 약하다는 뜻이다.
![국내 최대 인공호수와 산책로 등이 어우러진 세종호수공원. [GettyImages]](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ae/aa/00/67aeaa0004ccd2738276.jpg)
국내 최대 인공호수와 산책로 등이 어우러진 세종호수공원. [GettyImages]
금강 남쪽에 미래 부촌 형성될 것
마지막으로 금강 남쪽 세종시청 일대 지형은 서울 강남과 비슷하다. 세종시청 기준으로 동쪽 삼성천과 서쪽 용수천이 금강으로 합류하는 형세인데, 마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서초구 반포동 좌우에서 탄천, 반포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모습과 같다. 압구정동과 반포동, 잠실 일대가 서울 강남권 부자 동네로 손꼽히듯이 이곳 금강 남쪽 일대에 미래 부촌이 형성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길이 합류하는 곳에서 부(富)의 밀집도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울과 비슷한 입지의 금강변 일대는 일찍부터 도읍지로 주목받아왔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충남 공주와 연기군 일대를 행정수도로 삼는 ‘백지계획’을 세우기 훨씬 전부터다. 한강변을 통치하던 백제(기원전 18~기원후 475)가 한성시대를 마무리한 뒤 웅진백제(475~538)와 사비백제(538~660) 모두 금강변을 끼고 왕성을 지은 것은 이곳이 예부터 예사로운 땅이 아니었음을 역설한다.
한편 세종 이웃인 충남 계룡산과 대전을 포함하는 범(凡)대전권이 제2 수도권으로 완성될 경우 한반도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남다른 의미도 갖게 된다. 동북아 전통 세계관에서는 양(陽)이 지배하는 선천(先天) 시대가 끝나면 음(陰) 기운을 띤 후천(後天) 시대가 시작되는데, 한국의 경우 계룡산과 금강변 일대가 후천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다.
수도 분산을 어색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북방 지역에 뿌리를 둔 우리 겨레의 주축 세력은 일찌감치 세 곳에 수도를 정하는 삼경제(三京制) 전통을 유지해왔다.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북사(北史)’에 의하면 고구려는 주(主) 수도인 평양성 외에 국내성과 한성에 별도로 도읍을 두었고, 이를 삼경(三京)이라고 했다. 또 고구려 왕은 한 수도에만 머물지 않고 세 곳을 돌면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고려 역시 삼경제를 따랐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 인물인 김위제는 고려에는 세 곳의 서울(개성, 한양, 평양)이 있으며 왕이 세 곳을 돌아가면서 머물러야 나라가 융성해진다고 주장했다.
세 곳에 수도 두는 ‘삼경제’, 우리 전통
삼경제가 시작된 게 고구려 때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삼경제는 단군조선(고조선)의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 마한·진한·변한) 통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에서 백제가 서울, 공주, 부여로 수도를 옮긴 것도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삼경제는 하늘의 별자리를 따르는 천손(天孫)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는 게 고구려 사람들이 묘사한 천문도다. 고구려 무덤 무용총(춤무덤), 각저총(씨름무덤)의 별자리 그림에는 북쪽 하늘 북두칠성 옆에 ‘북극삼성(北極三星)’으로 불리는 별 3개가 유독 강조돼 있다.
북극삼성 중 가운데 별은 북극대성이라고 하는 으뜸별이다. 북국대성 왼쪽 별은 태자(太子), 오른쪽 별은 서자(庶子)가 돼 으뜸별을 보좌한다. 이러한 북극삼성은 지상에서 도읍 3개로 구현된다. 중심 별은 주도(主都)로 표현되고, 나머지 2개 별은 부도(副都)가 된다. 이처럼 ‘하늘의 자손’인 고구려인은 3개의 수도를 운영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지상에서 구현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면 서울과 평양이라는 2개의 수도가 이미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394년 한양이 수도 기능을 한 이후 620여 년 만에 통치권자 집무실이 한양도성을 빠져나와 용산으로 이전하는 역사적 사건도 발생했다. 필자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머지않은 미래에 수도가 변천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서울은 미국 뉴욕처럼 경제수도 기능을 하고, 세종은 워싱턴DC처럼 행정수도 기능을 하면 된다. 평양은 한반도 통일 이후 그 위상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처럼 미래 통일 한국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보자면 삼경제 부활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