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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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파에 결혼 프러포즈 이벤트도 다이소 제품으로

수십만 원대 호텔 이벤트 대신 몇만 원 다이소·알리 파티용품으로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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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5-02-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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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다이소와 알리익스프레스(알리) 제품으로 직접 숙소 방을 꾸며 예비 신부에게 프러포즈 이벤트를 해줬다. 방을 꾸밀 조화(造花), ‘Marry Me’라고 적힌 조명, 테이블보 등 프러포즈 용품을 구매하는 데 총 5만 원도 안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프러포즈 업체에 의뢰해 생화로 장식하겠지만 다이소 조화의 품질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명과 꽃을 섞어서 배치하면 가짜 꽃인 것도 티가 잘 안 난다.”

    지난해 11월 결혼식을 올린 20대 이모 씨가 “다이소와 알리 제품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프러포즈를 할 수 있다”며 전한 프러포즈 후기다. 이 씨는 “조화는 알리로 주문하면 택배 배송 과정에서 꽃잎이 구겨져 올 수 있으니 다이소에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라”는 ‘꿀팁’도 덧붙였다.

    결혼을 앞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다이소나 알리 제품을 사용해 알뜰하게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프러포즈 이벤트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자랑하는 것이 결혼식 전 필수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실속형’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프러포즈 이벤트도 ‘스드메’처럼 정형화

    한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온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들. [네이버 스토어 캡처]

    한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온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들. [네이버 스토어 캡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프러포즈 이벤트는 연인에게 자신과 결혼해줄 것을 실제로 청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연인이 결혼하기로 합의하고 결혼식장 예약과 상견례까지 끝낸 상태에서 이벤트 성격으로 진행한다. 여성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풍선과 꽃잎으로 꾸민 5성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의 고층 스위트룸에서 예비 신부에게 명품 목걸이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는 유명 유튜버 영상이 프러포즈 이벤트의 정석으로 여겨진다. 해당 유튜버는 이벤트를 위해 호텔 숙박비부터 호텔에서 제공하는 꽃과 풍선 장식비용, 선물 가격까지 합쳐 약 1500만 원을 지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김모 씨(29)는 “결혼한 주변 친구들을 보면 10명 중 9명은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추세라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예비 신부의 눈치가 보일 정도”라면서 “벽에 붙인 풍선, 바닥에 깔아놓은 촛불, 풍성한 꽃 장식, 명품 가방 혹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프러포즈 이벤트의 구성 요소로 정형화돼 있다”고 말했다.

    결혼식을 위한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의 줄임말)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프러포즈 이벤트까지 필수가 되면서 예비부부의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프러포즈 이벤트를 위해 호텔 방을 생화와 조명, 풍선, 종이 피켓 등으로 꾸며주는 업체의 ‘호텔 프러포즈 패키지’ 상품 가격은 대부분 2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방을 꽃으로 가득 채워준다”고 광고하는 상품의 가격은 150만 원이다. 호텔 숙박비용은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프러포즈 비용을 줄이려는 젊은 세대는 프러포즈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다이소, 알리, 테무 등에서 직접 이벤트 용품을 주문한다. 생화 대신 조화를 사고, 비싼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 숙소나 자취방에서 이벤트를 연다. 다이소 제품으로 예비 신랑에게 프러포즈 이벤트를 해줬다는 20대 여성 김모 씨는 “업체를 호텔로 불러 각종 장식을 하려면 숙박비 포함 기본 50만 원이 넘게 드는 게 부담스러워 여러 다이소를 직접 돌아다니며 파티용품을 구매한 뒤 자취방을 꾸몄다”면서 “다이소 파티용품이 다양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벤트 후에는 프러포즈 용품을 당근 애플리케이션(앱)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되팔아 프러포즈 비용을 더 아끼는 이들도 있다.

    “이벤트 안 하면 신부 눈치 보여”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거래되는 중고 프러포즈 용품 목록. [당근 앱 캡처]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거래되는 중고 프러포즈 용품 목록. [당근 앱 캡처]

    다이소, 알리, 테무 등에서 파는 저렴한 제품으로 프러포즈 이벤트를 받은 이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지난해 12월 프러포즈 이벤트를 받은 20대 여성 정모 씨는 “예비 신랑이 회사 점심시간에 다이소에 들러 이벤트를 위한 꽃과 풍선을 샀다고 자랑하더라”며 “남들처럼 화려한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평소 편지도 잘 안 쓰던 예비 신랑이 직접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니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박모 씨(29·여)는 “다이소에서 파는 모형 촛불에 가짜 꽃잎으로 장식한 프러포즈 이벤트를 인스타그램에 박제하기는 부끄러울 것 같다”며 “호텔 방을 비싼 꽃으로 꾸미고 명품 선물을 주는 정석적인 이벤트를 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돈이 적게 들더라도 우리만의 특별한 프러포즈 이벤트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가 제품을 활용한 프러포즈 문화에 대해 “젊은 소비자들은 자기 자신을 워낙 소중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비싼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고 싶은 욕구가 다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데다 다채롭고 저렴한 제품이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를 통해 공급되다 보니 한 번 쓰고 버릴 프러포즈 용품의 경우 저렴하게 구매하는 문화가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