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산불 예방을 위해 숲 밀도 조정을 강조했다. 홍태식
산불이 대형화하는 데 불씨를 제공한 것은 기후변화다. 지난 100년간 한국의 겨울 평균 기온은 4℃ 상승했고, 강수량은 17㎜ 줄었다. 전 세계에서도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 여파가 가시기 전인 3월 초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8배를 불태웠고, 태국 치앙마이에서도 산불이 2주 넘게 이어졌다. 2019년 고성·속초, 2022년 울진·삼척 산불 현장에서 진화 대책에 참여한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현실적인 예방책을 주문한다.
4월 1일 만난 고 학회장은 “기후변화는 산불 원인 중 하나지만 현 흐름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5년 산림청에서 산불 관련 업무로 공직에 입문한 산불 관리 분야 베테랑이다.
임목 축적량 50년 만에 15배 늘어
이번 영남권 산불은 과거 산불들보다 강력하고 컸는데, 왜 진화가 어려웠다고 보나.
“강풍으로 확산 속도가 너무 빨랐다. 초속 6m 바람이 불면 바람이 없을 때에 비해 산불이 번질 위험이 26배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번에 경북 지역에 초속 15m 강풍이 불어 불씨가 널리 퍼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영남권에서 사흘간 30건 넘는 산불이 발생하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대응이 더 어려웠다. 이러한 산불의 대형화와 동시다발화는 2022년 울진·삼척 산불에서도 나타난 현상으로, 그만큼 산불 예방이 절실한 상황이다.”
산불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산불은 열과 산소, 연료가 있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산불은 발생하지 않는다. 산불 예방은 그 고리를 끊는 일이다. 특히 연료에 해당하는 삼림 관리를 평시에 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림은 산불 원인 그 자체인 동시에 산불을 키우는 요소이기도 하다.”
산에 나무가 너무 많다는 얘기인가.
“지속된 녹화 사업으로 1972년에 비해 임목 축적량이 15배 증가했다. 또 나무는 자생적으로 매년 2.5%씩 부피가 커진다. 그만큼 산불이 발생해 탈 연료가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제는 나무를 늘릴 게 아니라 심은 나무를 잘 관리할 때다. 숲 밀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벌채가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많다.
“벌채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연료를 계속 축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숲의 종류는 다양하다. 보호가 필요한 숲이 있고, 목재나 임산물을 이용하기 위한 숲도 있으며, 휴양을 위한 숲도 있다. 생태 보호가 중요한 국립공원은 최대한 사람 손이 덜 타야 하지만 모든 숲이 보호 대상은 아니다. 특히 사찰 등 문화재 주변은 식생 제거 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변에 나무가 없으면 산불이 옮겨 붙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벌채가 산사태를 일으키지는 않나.
“과거처럼 민둥산을 만드는 식으로 벌채를 하지 않는다. 뿌리째 뽑아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날 위험은 적다. 또 베어낸 나무는 목재 자원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국토의 70%가 산지인데 목재자급률이 20%도 안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나. 이제는 벌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3월 24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영남권 산불로 서울의 80%에 해당하는 면적이 불에 탔다. 동아DB
실화 용의자, 형사처벌에 손해배상금까지
불이 잘 붙는 소나무가 경북 지역에 많아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종을 많이 심기도 했지만 자생적으로 잘 자란다는 특성도 있다. 앞으로 수종 관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지 않는 나무는 없다. 강조하지만 연료를 줄이는 것이 대형 산불을 줄이는 길이다.”
지난 10년간 실화와 쓰레기 소각이 산불 원인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또 하나의 산불 원인이 열 발생이다. 실화 용의자에게는 형사고발뿐 아니라, 국가가 진화 비용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5년 발생한 삼척 산불 용의자에게는 1억 원 넘는 배상금이 청구됐다. 한순간의 실수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고통받는 일이 될 수 있다.”
불법 쓰레기 소각을 막을 방법이 있나.
“농촌에서는 수확하고 남은 영농 부산물이나 비닐 등을 소각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태우는 것이 가장 빠른 처리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개별 지자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시장과 군수, 이장 등 마을지도자나 읍면 지역 공무원이 감시체계에 신경 쓰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산불 발생 가능성은 큰 차이가 난다. 감시나 처벌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몰래 소각하는 경우도 많으니, 쓰레기 수거를 제대로 한 지역에 포상금을 주는 식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최근 대형 산불이 강원 지역에 집중됐는데 이번엔 영남권에서 발생했다.
“강원 동해안 지역에 산불이 많이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산불에 대한 공식이 무의미해진 상황이다. 산림청에는 ‘아카시아꽃이 피면 산불은 없다’는 말이 내려온다. 하지만 2022년 밀양 산불도 5월 말에 발생해 6월 초까지 이어졌다. 3~4월 건조기뿐 아니라 장마가 오기 전까지, 그리고 겨울에도 산불을 조심해야 하는 때가 됐다.”
산불이 연중화한다는 뜻인가.
“미국에서는 기온이 높고 건조한 여름에 산불이 빈번했다. 하지만 LA 산불도 1월에 발생한 것처럼 이제는 언제든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지자체장 중심 산불 감시체계 중요
예방에 신경 써도 산불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진화 작업도 중요한데 어떤 대책이 더 필요한가.
“산불 진화는 기계화 시스템을 이용한 지상 작업과 공중 작업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 현재 공중 작업에는 유인 헬기만 동원되고 있는데, 연무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 사고 위험성이 크다. 돌풍에도 취약한 편이다. 미국에서는 군 수송기를 산불 진화에 사용하고 있다. 군 수송기를 사용하면 더 많은 양의 물을 살포할 수 있고, 야간에도 공중 진화 작업이 가능하다.”
영남권 산불 진화 과정에서 지자체가 고용한 1만여 명의 산불예방진화대원의 평균 연령(61세)이 지적됐다. 산청에서 진화대원 4명이 불을 끄다가 사망하기도 했는데.
“농촌 지역 고령화로 현실적으로 연령을 낮추기는 어렵다. 다만 산불 감시와 진화 작업에 도움이 되고 안전을 책임질 장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산불 감시와 예방을 이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드론을 도입하는 등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산림청과 소방청 간 컨트롤타워 논쟁도 산불이 날 때마다 매번 벌어진다.
“부질없는 논쟁이라고 본다. 결국 컨트롤타워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지자체장이 불이 난 지역과 주민에 대해 가장 잘 안다. 산림청과 소방청 모두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행정수장 목소리를 듣고 움직여야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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