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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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관세전쟁 트럼프, 미국 국채 가격 폭락에 굴복 

돈 빌려 부동산 재벌 된 트럼프, 금리 상승이 사업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4-1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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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부동산 개발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시절 부친 밑에서 부동산 개발을 배운 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맨해튼에 마천루를 수십 채씩을 짓고 빌딩 입구마다 ‘트럼프’라는 이름을 새겨넣었다. 특히 뉴욕 5번가에 있는 ‘트럼프 타워’는 맨해튼의 상징 중 하나다. 당시 트럼프는 금융권으로부터 상당한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부채가 10억 달러(1조4520억 원)에 달했던 트럼프는 채권시장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주식시장보다는 채권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관세 정책으로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모두 하락하는 등 월가가 흔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엔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관세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주식시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밝힌 적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2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상호 관세를 발표한 이후 국제사회와 정치권, 시장의 반발에도 꿈쩍 않는 모습을 보여왔고, 주말에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주택으로 날아가 골프를 치는 영상을 SNS에 올리며 여유를 드러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4월 9일 오후 1시,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전격적으로 상호관세 부과 조치 유예 결정을 내린 이유는 국채 때문이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채시장의 반응 때문에 상호관세를 유예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채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어젯밤에 사람들이 좀 불안한 모습을 봤다”고 밝혔다. 

    30년물 금리, 43년 만에 최대 상승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10년 만기 채권 수익률은 9일 4.51%까지 치솟으며 2001년 이후 3일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30년 만기 수익률은 같은 기간 0.50%포인트 급등했는데 1982년 이후 가장 빠른 증가 속도다. 채권은 가격과 수익률이 반비례한다. 투자자들이 채권을 많이 살수록 가격은 높아지고 수익률은 낮아진다.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국채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관세 전쟁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마저 팔아 치운 것이다. 

    미국 국채 이탈 현상은 투자자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글로벌 투자은행 미국 시티그룹의 금리 전략가 벤 윌트셔는 “이번 매도는 미국 국채가 더 이상 글로벌 채권시장의 안전 자산이 아니라는 체제 변화(regime shift)를 시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은 또 미국의 시중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장기주택담보대출(mortgage) 금리, 자동차·기업 대출 등 전반적인 차입 비용이 치솟게 된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상승이 사업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잘 알고 있다. 국채 수익률을 낮추지 못하면 미국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를 줄일 수 없고, 국민들의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들의 채권 등에 대한 이자 부담도 덜어줄 수 없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부채를 활용해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 채권시장의 경고 신호를 누구보다 잘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WSJ “트럼프, 채권시장에 굴복”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2022년 9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하자 영국 장기 국채 투매가 발생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그 여파로 트러스 전 총리는 취임 44일 만에 물러났다. 뉴시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2022년 9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하자 영국 장기 국채 투매가 발생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그 여파로 트러스 전 총리는 취임 44일 만에 물러났다. 뉴시스

    트럼프 2기 정부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국채 금리를 안정에 힘을 쏟았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국 재정 상황은 중환자실에 누워 하루 담배 2갑을 피워대는 160㎏ 환자와 같다”면서 “미국은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1%포인트씩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정·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며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연방부채 규모는 35조4600억 달러(5경1487조 원)로 GDP 대비 124%다. 2024 회계연도 미국 정부는 국채 이자로만 1조1330억 달러(1645조 원)를 지불했다. 사상 처음으로 이자 부담이 1조 달러를 넘었는데 고령자 의료보험이나 국방예산을 웃도는 수치다. 시장에서 국채 금리가 떨어져야 연방 정부가 지급하는 이자도 줄어든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상자산을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달러와 코인의 가치를 일대일로 고정하는 스테이블 코인 육성은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릴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면 담보로 달러나 미국 국채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꾸준히 은행 규제도 완화하고 있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도 완화 대상 중 하나다. 은행들이 국채를 보유할 때 추가 자본을 쌓아야 하는 의무를 느슨하게 풀어주면 그만큼 은행들이 국채를 사들일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세전쟁을 선포 이후 채권시장 흐름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국채 금리가 내려가야 하는데 거꾸로 올라간 것이다. 관세전쟁으로 무역이 줄어들어 경기침체에 빠질 경우 미국 정부는 부족한 세금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국채를 더 많이 찍어내야 한다. 국채 발행 물량이 늘어나면 국채 가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채권 보유자들이 서둘러 투매에 나선 것이다. WSJ은 “90일 관세 유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혼돈에 빠진 채권시장에 굴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대규모 감세와 대규모 정부 차입을 함께 추진했다가 채권시장의 붕괴로 굴욕적으로 사임했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90일 관세 유예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상호관세 영향으로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 국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흑자를 보지 못하면,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 결국 국채 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미치광이 전략’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후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폭락했다. S&P500 지수는 4월 7일 장중 5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후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폭락했다. S&P500 지수는 4월 7일 장중 5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뉴시스

    또 90일 관세 유예 결정은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는 월가의 전망 속에서 나왔다. JP모건은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경기침체 확률을 기존의 40%에서 60%로 올렸다. JP모건은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와 경기침체)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무역이 불공정하다고 결론짓는 것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경기침체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WSJ은 “채권시장의 국채 폭락과 다이먼 회장을 포함한 재계 지도자들의 우려를 들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본능에 의지해 방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해 온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관세 부과에 우려를 표시해 왔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다른 나라가 보복 조치를 할 경우 미국, 특히 텍사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를 공포에 빠뜨린 관세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행보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상대방에게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는 ‘미치광이 전략’을 추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예측 불허의 미치광이 전략을 더욱 강력하게 구사할 것이 분명하다. 상호관세는 유예됐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각국에 대한 10% 기본관세는 유지되고 있으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관세전쟁은 더욱 격화되는 상황이다. 제이크 콜빈 전미무역위원회(NFTC) 회장은 “이번 관세 유예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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