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 중심업무지구(CBD). GettyImages
최근 상업용 부동산에서 가장 크게 의외의 반전을 보인 섹터는 오피스 시장이다. 코로나19 엔데믹 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기업 경영 여건과 재택근무 제도 영향으로 오피스 시장의 반등을 예측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8%를 기록한 서울 대형 오피스 공실률이 2023년 절반 수준인 4%로 뚝 떨어졌고, 임대료도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눈에 띄는 흐름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세계자본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오피스 거래 비중은 20%로, 2017년 이후 가장 높았다.
오피스 강세, 주거용 부동산에도 지각변동 예고
한국 오피스 시장이 최근 유독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제조업에 기반을 둔 한국 특유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 때문이다. 또 인재 유치에 나선 기업들의 프라임 오피스에 대한 ‘안전자산 선호’(Flight To Quality·FTQ)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국내 50대 기업 재택근무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92%에 달한 재택근무 비중은 2023년 58%까지 감소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생산 현장 중심의 기업 문화가 근로자를 일터로 복귀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경총이 발표한 2024년 임금 통계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평균 연봉은 7000만 원을 돌파했다. 이는 조사 이래 최고치로, 여전히 4000만 원 수준을 맴도는 중소기업 평균 연봉과 극명히 대비된다. 중소기업 대비 높은 연봉은 대기업의 인재 유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함을 방증한다. 일단 확보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면 근무 환경에 대한 투자도 필수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금융 등 창조 산업 관련 대기업이 좋은 입지의 고스펙 신축 오피스 수요를 견인했다.
오피스 시장의 FTQ 트렌드는 주거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우량 입지의 고스펙 자산에만 투자가 쏠리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서울 업무지구 사이에도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결국 주거 입지에서 핵심 요소인 직주 근접성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것이다. 어느 업무지구의 접근성이 더 좋은지에 따라 집값 격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오피스 시장 활황은 2027년까지 지속되리라는 게 상업용 부동산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전망에 따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자리한 연면적 46만3098㎡(약 14만 평) 초대형 오피스 ‘원그로브’가 우량 임차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해당 지역의 직주 근접 수요 덕에 그간 잠잠했던 마곡지구 주택 가격도 들썩이는 분위기다. 다만 서울 오피스 시장의 향후 변수는 약 165만㎡(약 5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오피스 공급이 집중될 2028년 이후 흐름이다. 이때부터 서울 종로구 일대 CBD(중심업무지구)에 신축 대형 오피스가 쏟아진다. 이때는 아무리 좋은 입지의 고스펙 자산이라도 “공급량에 장사 없다”는 부동산시장의 생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8년 이후 CBD의 공급 과잉은 오피스와 주거 시장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우선 단기 이익과 투자금 배당을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의 경우 공실 증가 및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이 우려된다. 반면 우량 오피스로 이주를 꿈꾸며 사옥 마련을 목표로 삼는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는 비교적 착한 가격에 프라임 오피스를 거머쥘 기회를 얻을 것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강남업무지구(GBD). GettyImages
역발상 투자전략으로 리테일 부동산 기회 모색
CBD에서도 을지로·충무로·종로 역세권을 가로지르는 연면적 100만㎡(약 30만 평)의 ‘세운지구’는 우량 기업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2030년쯤 세운지구가 빌딩숲으로 변모하면 서울지하철 2·3·5호선 도심 역세권으로서 가치를 더해 집값 상승 기폭제가 될 공산이 크다. 반면 세운지구의 압도적 스케일에 밀리는 명동·무교동·서린지구 등은 재무적 투자자뿐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에게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028년 이후 서울 주요 업무지구인 GBD(강남업무지구)에는 눈에 띄는 대규모 공급이 없을 예정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오피스 고령화 영향으로 GBD에 들어서는 프라임 오피스는 그 가치를 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옛 정보사령부 부지를 개발하는 ‘서리풀 복합개발사업’을 통해 서초역 일대에 대규모 오피스가 들어설 전망이다. 인근 방배동 재건축과 발맞춰 2030년대 강남의 주거·업무 벨트를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저앉은 리테일 부동산시장에도 새로운 기회는 있다. 이때 유념할 것이 축소 시대의 역발상 투자전략이다. 역발상 투자전략은 ‘비혼 시대에도 혼인 건수가 증가하는 곳’ ‘저출산 시대에도 출산이 늘어나는 곳’처럼 저성장 국면에도 ‘수요의 빛’이 반짝이는 투자처를 주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을 리테일 부동산시장에 적용하면 매력적인 오프라인 매장 입지에서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 중 대표적인 것이 신선식품이다.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선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특성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 유통업체는 수요가 집중된 곳에 온라인 쇼핑몰로 대체되지 않을 신선식품 중심의 차세대 매장을 공격적으로 출점하고 있다. 매출이 낮은 점포를 폐쇄하는 대신 우량 수요지를 공략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따라서 대형 유통업체가 프리미엄 매장을 출점하는 곳은 곧 탄탄한 주거 수요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가령 이마트는 최근 마곡지구 ‘원그로브’에 트레이더스를 오픈했고, 인천 남동구에 구월점을 열 예정이다. 롯데마트의 경우 서울 강동구에 신선식품 코너를 강화한 천호점을 개점한 것은 물론, 경기 구리에 구리점을 오픈한다. 유통업계가 오프라인 점포에 사활을 거는 지역은 하나같이 신규 주거지가 탄생하는 곳이다. 인천 구월동의 경우 인근에 주안뉴타운(주안2·4동 재정비촉진지구)이 있고 구월2지구에도 대규모 택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강동구 천호동 일대에선 천호뉴타운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경기 구리는 인접한 다산신도시와 함께 지하철 8호선 개통으로 탄탄한 배후 수요를 갖추고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강서구 제공
서울 오피스텔 수요 이끄는 강서·영등포·송파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친숙한 수익형 부동산은 오피스텔이다. 수익형 부동산 가운데 비교적 초기 투자금이 적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금리인하 기조로 오피스텔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오피스텔 매매 실거래는 2023년 월평균 500여 건으로 저점을 찍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꾸준히 월평균 600여 건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오피스텔 월세 실거래는 1월 역대 최고치인 4237건을 기록하며 오피스텔 투자 수익의 근원인 월세 수요가 강세에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서울에서 오피스텔 월세 수요가 많은 곳은 강서구, 영등포구, 송파구다. 이들 3개 구의 오피스텔 월세 거래량은 서울 전체의 30%에 달한다. 강서구에서 오피스텔 수요가 많은 곳은 마곡동과 등촌동이다. 영등포구의 경우 당산동과 영등포동에 오피스텔 수요가 몰린다. 마곡지구와 YBD(여의도업무지구), 넓게 보면 구로디지털단지가 이들 지역의 역세권 오피스텔 수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송파구에서 오피스텔 수요 강세 지역은 신흥 업무지구로 떠오른 문정동과 전통적인 오피스텔 중심지 방이동이다. 신흥 업무지구나 기존 주요 업무지구의 배후지에 가성비를 노린 오피스텔 월세 수요가 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