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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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 입력2006-03-22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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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서 ‘죽는다’나 ‘죽인다’는 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여의도 정가를 강타했던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부적절한 3·1절 골프 회동사건이 터진 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런 얘기가 꽤 나돌았다.

    최 의원이 죽어야 한나라당이 살고, 이 전 총리를 죽여야 ‘최연희 늪’에 빠진 한나라당이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이 전 총리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최 의원은 이를 거부해 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야당에는 총재나 대표의 ‘친위부대’가 있었다. 총재나 대표의 뜻에 거스르는 행위를 해 당의 정체성에 해악을 끼쳤다고 간주된 국회의원을 주로 사무처 당료들인 친위부대가 당사 이슥한 곳으로 끌고 가 ‘손’을 봐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총재나 대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채 넘어갔고, 해당 국회의원도 창피해 입을 열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다.

    최 의원 성추행 사건이 터진 뒤 당 지도부의 어정쩡한 대응으로 수습의 가닥을 찾지 못하자 과거의 이런 ‘해법’을 그리워하는 한나라당 인사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당 대표의 카리스마를 보좌하는 친위부대의 존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타이밍 포착이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합종연횡의 정치세계에서 합당과 연합의 타이밍을 적절하게 선택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회창 씨가 두 번의 대선에서 석패한 것은 연합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 한 원인이다. 최 의원은 이미 ‘죽어야 사는’ 기사회생의 수를 선택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 대가로 최 의원은 정치권 전체와 국민들의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3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최연희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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