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검은 황금, 2006
노재운은 전시장보다는 인터넷에서 먼저 알려진 작가다. 그는 3개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극장이고, 다른 하나는 공장이며, 나머지 하나는 창고다. 인터넷 유저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비말라키’(vimalaki.net)는 그가 채집한 이미지들로 만든 극장이다. 그는 채집한 이미지와 직접 만든 이미지들을 섞어서 그 나름의 영화를 만든다. 스틸 사진 한 장을 가지고도 줌인(zoom in)과 줌아웃(zoom out)을 반복한다거나 상하좌우로 훑고 다니는 식이다. 사각형의 망점들이 서서히 뒤로 빠지면서 뭔가를 드러내거나 원경을 근경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정도의 원시적인 테크닉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라우디’(cloudy12pictures.com)는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다. 그가 관심을 가진 온갖 장소와 상황의 이미지들이 죄다 이곳에 모여 있다. 타임이미지(time-image.co.kr)는 실재의 이미지들을 가공하는 이미지 공장이다. 최근에 띄워놓은 것은 컨테이너로 만든 창고나 공장 이미지 수백 컷이다. 그는 온라인의 창고와 공장과 극장을 오가며 분주히 이미지 게임을 벌인다.
노재운의 이미지 채집-가공 방식은 저작권을 침해하기보다는 떠다니는 이미지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카피레프트(저작권 공유)’ 정신이 담겨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예술가를 상품생산자로 규정한다. 상품 교환의 정교한 구조체 속에서 예술가의 삶과 예술작품도 교환체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러한 난점으로부터 노재운의 장점을 찾아보면, 과도한 물질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미지 채집과 가공, 재배치 등의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과 이로써 자신을 소비자이자 생산자, 수취인인 동시에 발신인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그는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프린트, 회화, 설치, 영상출력 등 특정 매체에 전적으로 기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노재운은 온라인 기반의 작가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 가둬놓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 파일을 가지고 어떠한 매체로든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이며 자신이 만든 이미지들을 가지고 어떤 인터페이스를 구축할지에 대해서도 사통팔달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구기동으로 이전한 대안공간 풀의 개관 기념전으로 3월31일까지 열린다. 02-396-4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