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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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스포츠 정신, 오만의 축 부쉈다

슈퍼스타들 상대로 야구 진수 선보여 … 미국 팬들도 박진감 넘친 팀플레이에 감탄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6-03-22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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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 스포츠 정신, 오만의 축 부쉈다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은 야구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과 컴퓨터 게임처럼 정교한 야구를 하는 일본을 꺾으면서 한국 야구 101년 역사상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다. 그 매혹적인 순간을 떠올리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보라. ‘우연의 연속은 필연’이라는 상식을 한국 선수들이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건너가서 완성시키지 않았던가. 도쿄돔에서 흡사 아름다운 새의 비행처럼 황홀한 다이빙 캐치를 선보였던 이진영은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도 마력적인 어깨 힘을 보여줌으로써 반복된 우연이 필연이었음을 입증했다.

    선수들의 애국심을 누가 국수주의로 폄하하랴

    이를 통해 한국 선수들은 무엇을 보여준 셈인가. 어떤 이들은 ‘황우석 사태’ 이후 주춤했던 전 국민적 애국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글쎄, 지지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는 주장 이종범의 발언 역시 ‘국수주의’의 단면은 결코 아니다. 20세기의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우리와 복잡다단한 인연을 맺어온 두 나라가 앞세우는 종목을 연거푸 꺾었으니 이를 ‘애국’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성취를 ‘애국심’만으로 요약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것, 선수들이 이룩한 성취를 내용적으로 성찰하는 것, 그리하여 과연 그들이 어떤 힘으로 어떤 결실을 맺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단서는, 이종범의 깊숙한 안타로 한국팀이 승리를 거둔 직후 현장의 미국 팬이 펄펄 끓는 목소리로 “미국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수십 년 전의 야구를 한국 선수들이 하고 있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이다.

    나는 바로 이 말 속에 한국 선수들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적인 고액 연봉자로 구성된 미국팀, 그리고 그 야구 문화는 ‘개인기의 격전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철저히 슈퍼스타 위주로 진행된다. 미국 팬들은 한국팀의 박진감 넘치는 팀플레이를 보면서 그들이 한때 이룩했으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저 1960~70년대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했던 것이다.

    일본은 어떠한가. 이른바 ‘스몰 볼’이라고 하여 흡사 잘 만들어진 컴퓨터 게임을 반복하는 듯한 그들의 야구는, 틀을 지키되 그것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야구의 역동성 앞에 무너지지 않았는가. 정석을 지키되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세계 최강 한국 바둑의 능란한 창의는 야구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한국대표팀의 연전연승. 그것도 형, 아우 하면서 세계 야구를 호령해온 미국과 일본을 물리친 이 성취는 한국 선수들의 혈관 속에 ‘신의 관장 아래 인간들이 펼치는 제전’이라는 신성한 ‘스포츠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것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준 것이 ‘애국심’임은 틀림없으나, 나는 우리가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하고 한국 야구 문화의 전반적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할 것은 차고 넘치는 애국심의 반복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 즉 원칙과 정석을 제대로 지키되 서로의 특장을 최대한 살려 창의와 역동의 순간을 빚어내는 미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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