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4월 15일 광주 서구 기아오토랜드 광주공장에서 자동차산업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부터 문재웅 기아 광주공장장, 한 권한대행, 최준영 기아 사장. 국무총리실 제공
보수 진영에서 ‘한덕수 차출론’에 이어 ‘무소속 출마’ 시나리오가 급부상하고 있다. 2002년 ‘반(反)이회창 연대’로 뭉쳤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올해 6·3 대선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 승자와 단일화를 이뤄 ‘반 이재명 연대’ 바람을 일으킨다는 시나리오다.
한덕수 무소속+후보단일화 승부수
국민의힘 지도부도 한 권한대행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는 분위기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4월 14일 비상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대행이 무소속 출마 후 단일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도부 입장은 뭔가”라는 질문에 “한 대행도 후보 중 한 분이라고 보면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도 “정치적 선택은 본인이 할 것”이라고 답했다.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에선 4선 박덕흠 의원, 3선 성일종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중진의원들이 ‘한덕수 차출론’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한 권한대행 출마 촉구 연판장에 동의 의사를 밝힌 의원 수만 54명에 이른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박 의원은 4월 16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장관 캠프에 합류했다. 김 전 장관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한 권한대행과 단일화를 시도한다는 구상이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은 반발하고 있다. 홍준표 후보 등은 빅텐트론을 주창하지만 이들은 국민의힘 중심의 ‘반이재명 연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민의힘 경선을 통과하고도 다시 한 권한대행과 최종 후보를 두고 단일화에 나서야 한다는 시나리오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경선에 본격 돌입하면서 당 지도부는 일단 ‘빅텐트론’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자칫 ‘한덕수 출마론’ 띄우기가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모처럼 관심이 집중되는 국민의힘 경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1월 15일 대선 후보단일화를 합의하고 껴안고 있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왼쪽)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동아DB
‘미묘한 시기’에 광주 찾은 韓
그렇다면 한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를 강행할까. 한 권한대행이 6·3 대선에 출마하려면 공직자 사퇴 시한인 5월 4일까지는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한 권한대행은 출마 여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 권한대행 측은 당장 출마나 불출마 여부를 밝힐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권한대행과 가까운 한 정부 인사는 “정치인도 아닌 현직 총리이자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며 “지금 한 권한대행은 평생 이어온 공직 생활을 흠결 없이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민의힘 경선이 마무리되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된 후에도 한 권한대행 중심의 단일화만이 보수 진영 승리를 담보하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출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총리실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의 출마설에 대해 “대선의 ‘ㄷ’자도 꺼내지 마라”며 입단속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출마설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그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4월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하지 않고 광주를 방문해 기아오토랜드를 둘러본 다음 어려운 이웃들에게 15년째 1000원 백반을 제공하는 광주 ‘해뜨는 식당’에 격려금과 함께 손편지를 전달했다. 미국 관세 부과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자동차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이 총리실의 설명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미묘한 시기에 미묘한 지역’을 방문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수 진영 인사의 광주 방문은 이른바 ‘통합 행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한 권한대행이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되는 ‘호남 후보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또 일각에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대선 출마 후 문제가 될 수 있는 격려금을 식당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한 권한대행이 출마 계획이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나왔다. 공직선거법 제113조는 선출직과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후보자 및 그 배우자는 선거구 안에 살고 있는 주민이나 기관·단체·시설에 기부 행위를 일절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대선은 전 국민이 유권자인 만큼 직무상 행위라 해도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든 금품을 전달할 수 없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금 예측하긴 어렵지만 원래 빅텐트라는 것이 선거 패배 가능성이 클 때 나오는 이론”이라며 “5월 3일 출마설이 나오는데 출마 한 달 만에 대선을 치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