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실시되는 서울대의 통합형 논술고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형’이라는 이름으로 인문계와 자연계에 처음 실시되는 논술이기 때문이다. 또 서울대의 논술 방향은 향후 타 대학의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예의주시 중이다.

서울대는 지난해 11월 말 2008학년도 통합형 논술고사 예시문항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올 상반기 이후에는 현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모의논술고사를 실시할 방침이나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대 통합형 논술고사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문계건 자연계건 전 과목에 걸쳐 중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단순히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것뿐 아니라 교과과정의 지식을 동시에 평가하겠다는 의미다. 수험생들이 들으면 실망하겠지만,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원리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비방법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과서 중심의 원리와 개념 위주 공부’의 의미를 빨리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교과서 지문의 ‘발전적 독서’

서울대는 지난해 말 예시문항 발표 때 인문계 문제에 교과서 지문을 다수 제시했다. 이는 본고사 논란을 피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교과서를 많이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예시 1번 문제는 존 로크의 ‘통치론’에 서술된 ‘사유권’의 고전적인 지식을 현대 정보화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3번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기업, 개인, 국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었다. 4개 지문 모두 교과서에서 인용됐고, 학습자료로 자주 쓰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나왔다.

예시문항에서 서울대가 수험생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시사적인 내용을 교과서 지문을 통해 발전적으로 이해하라는 뜻이다. 인문계에서 수리 논술이 출제될 수 있으며, 자연계의 경우 기후현상, 줄기세포 논쟁 등 최근 이목을 끄는 과학적 성과가 출제될 수 있음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서울대 필독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가 제시한 필독서는 대학 신입생들에게 대학 4년간 읽으면 좋을 수준의 책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 책을 수험용 책으로 오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통합형’ 의미 이해해야

‘통합형’이라는 말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연계열의 수험생들이다. 이는 자연현상을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으로 나눠 구분 짓지 말고 통합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대가 제시한 예시문항은 ‘코끼리만큼 커진 개미가 가능한지’ ‘개미만큼 작아진 코끼리가 존재하는지’ 등 기발한 생각에 대한 견해를 물리적, 생물학적 방식으로 정리하라는 문제였다.

고교 교과과정에 제시된 내용을 토대로 주어진 문제 상황을 재구성해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과정중심형’으로 공부해야 한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의 관계자는 “수학·과학 문제를 단순히 푸는 것이 아니라, 공식이나 개념이 나오게 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 이슈와 수리 공식 유도과정의 이해, 과학 현상의 다각도 분석 등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재 서울대가 인문계에서 실시하고 있는 논술고사는 시험시간 3시간에 답안 길이 2500자로 제한돼 있지만, 2008년부터는 시간을 4시간 내외로 늘리는 한편 인문계열은 문항에 따라 길이를 300∼1600자로 다양화한다. 자연계열은 답안 길이에 제한을 두지 않을 방침이다.

■ 정세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mint4a@donga.com

[고려대]

고려대는 2007학년도 수시 1, 2학기에서 실시하려던 수리 논술을 폐지하고 언어 논술과 수리 논술을 합친 통합논술 시험을 치른다. 2008학년도 논술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고려대 입학관리처 관계자는 “올해 입시에서 수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학생을 뽑기 위해 통합형 논술 문제를 내겠다”고 밝혔다.

고려대는 올해 수시모집에서 논술을 70% 반영할 계획이다. 학교생활기록부(25%)나 서류 점수(5%)에 비해 비중이 훨씬 크다.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논술을 이 정도는 반영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관계자는 예시문항을 미리 발표했다가 서울대처럼 교육부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을 우려한 듯 “아직 구체적인 출제 방향이 나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올해 논술 출제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논술연구회에서 이달 말 논술시험의 세부 시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또한 논술 형태의 변화에 따른 수험생의 혼란을 막기 위해 6월경 모의고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고려대는 얼마 전 교육부로부터 지난해 자연계열 논술에서 수학과 관련해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김인묵 고려대 입학처장은 “교육부의 지적은 오해”라며 “학교에서 단순히 수학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을 선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부와 수능만으로 학교 간 격차를 반영하고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에는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학생들의 실력을 면밀하게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이 논술”이라고 강조했다.

김 처장은 “우리 학교는 언어적 지식, 수리적 지식, 인성, 논리력, 합리적 사고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이에 충족되는 학생을 뽑을 것”이라며 “수학만 잘하거나 국어만 잘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는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2006학년도 고려대 논술 문제는 ‘질서의 의미와 가치’였다.

■ 윤완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zeitung@donga.com

연세대는 올해 초 두 개의 팀을 꾸렸다. 2008학년도 입시에 대한 팀과 2008학년도 논술에 대한 팀이다. 입학관리처 관계자는 “논술은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기존 출제위원을 중심으로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며 “논술을 강화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7학년도 논술까지는 형태와 난이도가 올해와 유사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2008학년도부터는 자연계 논술을 도입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측은 논의가 정리되는 대로 6, 7월경 예시문항과 의도를 발표할 계획이다.

출제위원장 김도형 사학과 교수는 “논술에 대한 철학이나 학생을 뽑는 기준이 바뀐 건 아니다”며 “2008학년도부터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어떤 논술 문제를 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세대 역시 섣불리 예시문항을 발표했다가 서울대처럼 교육부와 여론의 뭇매를 맞을까 내심 고민하고 있다. 다년간 논술 출제에 관여한 한 교수는 “수능이 쉬워지면 논술에서 교과 과목의 지식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교육부에서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 문제”라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통합교과형 논술의 취지를 살리면서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연세대가 밝히는 논술의 목적은 ‘풍부한 독서와 문화적 체험을 쌓고, 이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연세대 논술문제는 꾸준한 독서와 사고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지문을 출제하고 문제 유형도 자주 바꾸는 편이라 수험생들에게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는 ‘불안’을 주제로 남동원의 ‘주역 해제’, 조지 허버트의 ‘도르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리자 자딘의 ‘기발한 탐구: 과학혁명의 구축과정’에서 지문을 냈지만, 문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학생이 절반도 안 됐다.

하지만 연세대 내부에서는 “이 정도 난이도는 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세다. 8년째 출제위원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주어진 지문을 읽고 이해한 뒤 내면화해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며 “문제 유형을 바꾸는 것은 학원에서 단기간에 모범답안을 연습한 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 장원재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