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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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쳐서 망한 사람, 공 쳐서 흥한 사람

  • 입력2006-03-22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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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스 샷!” 이해찬 전 총리가 홀인원을 했다. ‘홀인원(hole in one)’이 아니라 ‘홀인원(hole in own)’이다. 골프공 대신 자신을 밀어 넣어버린 홀은 불행히 ‘블랙홀’. 뜻하지 않은 불명예 퇴진을 당한 그의 속내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총리직과 맞바꾼 일생일대의 라운딩, ‘3·1절 골프 회동’의 후폭풍은 드셌다. ‘황제골프’ ‘내기골프’ ‘부적절 처신 골프’…. 문외한에겐 생소한 용어들이 보름간 인구에 회자되면서 골프 대중화를 향한 계몽(?)마저 이뤄졌으니 그는 분명 ‘골프 홍보대사’ 구실까지 톡톡히 한 셈이다. 그 덕에 부산 아시아드CC는 ‘명소’로 떠올랐지 않은가. 산불이 나든 물난리가 나든 초연하게 골프라는 한 우물을 파온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진정한 ‘골프인’이다.

    그는 이제 마음껏 골프를 칠 수 있게 됐다. 혹 치다 치다 지치면 등산을 해봄이 어떨까. 누군가 “골프와 등산이 뭐가 다르냐”고 했으니 동반사퇴한 이기우 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과 손잡고 봄 향기를 음미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아마도 두 사람은 산에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골프는 ‘경쟁’을 우선시하나, 등산은 ‘수양’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또 한 명의 ‘황제’가 군림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차기 대권주자라는 사람이 2년 가까이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주말 황금시간대에 독점하다 물의를 빚자 뒤늦게 사용료 일부를 허겁지겁 낸 것이 파문을 불렀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 역시 이해찬 전 총리처럼 스포츠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2002년 7월, 그는 히딩크 감독의 명예 서울시민증 수여식에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불러 기념촬영을 해 비난받은 일이 있다. 공과 사를 분간하지 않는 그의 그릇된 태도는 이번 ‘황제 테니스’ 파문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이 시장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대선에서는 대통령을 뽑지 황제를 옹립하진 않기 때문이다. 골프공과 테니스공은 ‘거짓’과 ‘독점’을 불렀다.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을 준 건 야구공이다.

    진정한 황제는 ‘거짓’과 ‘독점’ 없이 자기 본분을 다해 4강까지 오른 WBC 한국대표팀과 그들을 믿고 성원한 국민들 아닌가. 황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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