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의 독일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왼쪽)와 바이볼은 평면의 차이는 있지만 디자인이 흡사하다(점선 부분).
공인구는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축구팬의 관심을 끌어왔다. FIFA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때 ‘텔스타’라는 공인구를 첫 도입(74년 독일월드컵에서도 사용)한 이래,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때의 ‘탱고’, 82년 스페인월드컵의 ‘탱고 에스파냐’, 86년 멕시코월드컵의 ‘아즈테카’,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에트루스코 유니코,’ 94년 미국 월드컵의 ‘퀘스트라’, 98년 프랑스월드컵의 ‘트리콜로’ 등이 공인구로 사용됐다. 2002 한일월드컵의 공인구는 잘 알려져 있듯 ‘피버노바’다.
축구공의 기본형은 1963년 처음으로 축구공을 생산하기 시작한 아디다스가 12개의 정오각형과 20개의 정육각형 가죽 조각을 끼워 만든 32면체 형태. 반면 팀가이스트는 사상 처음으로 32면체를 탈피한 축구공으로, 14개의 조각으로만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이전의 공들보다 훨씬 완벽한 구(球)의 형태에 근접해 선수들이 정확도와 볼 컨트롤 면에서 놀라운 향상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아디다스 측의 자랑이다.
인터넷 카페 통해 도용 의혹 제기
그런데 최근 한국의 한 발명가가 팀가이스트의 패널(축구공의 표면을 이루는 가죽 조각) 문양이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형태의 공인 ‘바이볼(BYBALL)’의 디자인과 흡사하다며 도용 의혹을 주장하고 나섰다. 바이볼은 ‘공 옆에 또 하나의 공이 있다’는 의미다.
의혹을 제기한 주인공은 김학철(47) 씨. 그는 1999년 3월, 동그란 공 2개를 나란히 붙이고 그 가운데의 연결 부분을 조랭이떡처럼 잘록하게 한 독특한 모양의 공인 바이볼을 만들어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청 특허심사정책과에 따르면, 김 씨가 낸 특허출원은 2006년 1월 특허 결정을 받아 3월14일 현재 등록절차만 남은 상태다.
김 씨가 바이볼을 창안한 이유는 기존의 구기 스포츠와는 전혀 다른 종목인 ‘바이볼 스포츠’를 대중에게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바이볼 스포츠는 바이볼의 잘록한 가운데 부분에 발을 넣어 볼을 걷어올린 뒤 손으로 잡아서 던지거나 발로 차도록 함으로써 정확한 패스가 가능하게끔 한 운동. 김 씨는 경기규칙까지 만들어 최근 2년간 각급 학교와 체육공원 등지를 돌며 바이볼에 대한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바이볼 스포츠는 아직 국내에서도 공인된 정식 스포츠 종목은 아니다.
그러나 아디다스의 팀가이스트를 언론에서 접한 김 씨는 팀가이스트의 패널 문양이 자신의 작품인 바이볼의 디자인을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 BYBALL SPORTS)를 통해 3월부터 도용 의혹을 알리는 한편 문화관광부 등 관계기관에 관련 민원까지 냈다. 김 씨가 이런 주장을 펼치는 데는 나름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바이볼을 개발한 지 2년 뒤인 2001년 5월 축구공과 농구공의 원단을 전문으로 제조·수출하는 업체인 국내 D사(경기도 안양 소재)를 찾아 바이볼을 만들 원단을 주문하기 위해 상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D사 관계자에게 바이볼의 사진과 디자인에 관한 자료들을 건넨 사실이 있다는 것.
디자인 도용 의혹을 제기한 발명가 김학철 씨와 그의 특허결정서.
“D사가 세계적인 대기업에 우수한 품질의 원단을 납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바이볼의 원단을 구하기 위해 D사의 해외영업 담당자를 만나 바이볼 디자인의 컨셉트에 대해 설명했다. 그랬더니 D사 측은 ‘아디다스의 임원과 디자이너들이 우리 회사를 곧잘 방문하므로 바이볼을 우리 회사의 쇼룸에 진열하면 외국 스포츠용품 업체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다’고 권했다.”
반면 D사 측의 주장은 다르다. 2001년 당시 김 씨를 만났던 D사 관계자는 “김 씨와 상담을 한 적은 있다”면서도 “당시 김 씨는 바이볼 샘플을 가져온 게 아니라 바이볼 사진과 디자인 관련 자료만 가져왔다. 그래서 이를 받았으나 바이볼 샘플을 회사 쇼룸에 전시한 일은 없다”며 “김 씨가 요구한 바이볼 원단의 주문량은 수천 개의 바이볼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적은 양이어서 원단 매매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답했다. D사 측에 따르면 자사는 결제조건이 취약한 내수 쪽보다는 수출에 주력하고 있으며, 원단 1㎡당 축구공 5개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컨테이너 단위로 납품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
한편 김 씨는 D사 관계자와 상담한 며칠 뒤 D사 측으로부터 A4 크기의 원단 견본을 택배로 전달받고, 팩스를 통해서는 원단 시험성적서를 전해 받은 사실이 있다. 이는 D사 측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 씨는 “D사 측이 건네준 소량의 원단 견본으로 바이볼을 만든 뒤 다시 D사를 방문했으나 주문량이 소량이고, 당시 2002년 월드컵 공인구인 아디다스의 피버노바 원단 제조 때문에 바빠 원단 주문에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바이볼의 디자인 패턴.
김 씨는 2001년 당시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 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발명한 바이볼의 사진과 디자인 컨셉트, 자신의 홈페이지 주소 등을 담은 e메일을 홍보 차원에서 보냈다고 덧붙인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김 씨의 주장이 그야말로 의혹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의혹을 떨치지 못하는 까닭은 월드컵 공인구의 제작·판매사인 아디다스가 1970년 이후 2002년 월드컵 때까지 수십 년간 줄곧 고집해온 오각형과 육각형 문양의 조합을 왜 하필 자신이 2000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바이볼의 특허출원 소식을 알리고 D사를 방문한 일이 있은 뒤에 전격적으로 가운데가 잘록한 문양으로 바꿨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문제의 팀가이스트 패널 문양은 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아디다스 코리아㈜ 관계자는 “지적재산권에 관한 의혹들 가운데 근거가 희박한 황당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회사 법무팀에서 김학철 씨의 이번 의혹 제기에 대해 검토 중이다”며 “아디다스 코리아는 판매를 주 업무로 하는 만큼 디자인 관련 문제는 독일 아디다스 본사와 풀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팀가이스트의 전체 디자인은 아디다스 이노베이션의 영국 출신 디자이너 스코트 톰린슨과 독일 출신의 카테고리 디자이너 아나톨 저스트가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볼 권리 지키기’에 대한 김 씨의 공론화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아디다스 측이 바이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의혹을 쉽게 지우기 힘들다”며 “현재 법적인 대응방법을 찾기 위해 변리사와 변호사 등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이처럼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칫 자신이 개발한 바이볼의 디자인이 향후 팀가이스트의 패널 문양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씨의 말이다.
“가운데가 잘록한 바이볼의 독특한 형태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을 비롯해 청자, 조롱박, 장구, 분단된 조국 등의 의미를 담아 창작한 것이다. 2개의 공이 한 몸체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이다. 나름대로 이런 깊은 뜻을 지닌 바이볼의 디자인과 월드컵 공인구의 문양이 지나치리만치 흡사한 것에 대해 바이볼 제작자로서 의혹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발명가로서, 아디다스 측을 모함하려는 게 아니라 팀가이스트 패널 문양이 어떤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인지 정확한 경위를 알아내 ‘우연의 일치’인지, ‘고의적인 도용’인지를 가리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