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후반기를 맞이하면서 여당은 ‘양극화’ 문제를 집중 부각하고 나섰다. 여당은 교육 분야 등을 포함한 ‘5대 양극화 해소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사회 각 부문에서 양극화 논쟁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킬 태세다. 양극화가 사회적 통합을 해치고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데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진정으로 듣고 싶은 것은 양극화에 대한 현실 인식이 아니라 해결방안이다.
양극화 현상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여당의 저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교육 양극화 문제와 관련한 여당 지도부 인사들의 언행은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등 여당 실력자들은 연일 교육문제와 관련해 계층 갈등을 유도하는 ‘증오와 분노의 수사’를 토해내고 있다. 사실 교육 양극화는 정책 실패의 결과다. 즉 교육을 통해 부익부·빈익빈 추세가 강화되는 것은 경직적인 교육제도에 따른 ‘공교육 실패’가 원인이다. 그런데도 마치 양극화가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인과관계를 호도(糊塗)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비양심적이다.
교육부총리까지 여권 실세들에게 화답하고 나섰다. 김진표 부총리는 당분간 자립형 사립고를 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김 부총리는 경제부총리 시절부터 줄곧 자립형 사립고 확대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사립학교법 문제를 놓고 가톨릭 지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20개 정도로 확대하려고 한다. 종교계에서 운영해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지 않았었나.
정치적 요구에 김 부총리가 고개를 숙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곤 씨의 ‘회장님, 딸랑딸랑’ 코미디가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의 오버(?)인가.
1년여 전 김진표 씨가 교육부총리로 지명되던 날, 많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교육에 시장논리를 도입하려는 부적절한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일부 진보단체들은 그를 ‘평준화 해제론자’로 지목하고 “강력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혹자는 부총리 지명에 대해 “이쯤 되면 거의 막가자는 이야기다”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과 폄하에도 많은 국민들은 경제전문가의 교육부총리 취임에 큰 기대를 걸었고 성원도 보냈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공교육 정상화 소명 잊고 정치에 고개 숙여
당시 김진표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경제전문가를 교육정책의 수장으로 기용한 시대적 의미는 분명했다. 그것은 경제원리를 통해 사교육 광풍을 잠재우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라는 소명이 아니었나. 경제학의 창(窓)을 통해서 볼 때, 사교육은 일종의 ‘교육 암시장’이다. 암시장의 부작용은 정규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때만 제어된다. 즉 교육 정상화는 교육의 정규시장인 공교육의 기능이 회복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공교육 정상화의 요체는 평준화 체제의 완화·수정에 있다. 이런 점에서 자립형 사립고 확대 방안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상징이었다.
국민들이 김 부총리에게 기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시도였다. 일을 해가는 데에 소신과는 다른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필부(匹夫)도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킨다. 여권 실세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조건반사’ 하듯이 소신을 버리고 아세(阿世)하는 부총리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허탈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마저 ‘증오와 분노의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정치인이나 그런 편 가르기 정치에 원칙을 포기해가며 장단을 맞추는 교육 수장이 있는 한 이 나라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양극화 현상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여당의 저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교육 양극화 문제와 관련한 여당 지도부 인사들의 언행은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등 여당 실력자들은 연일 교육문제와 관련해 계층 갈등을 유도하는 ‘증오와 분노의 수사’를 토해내고 있다. 사실 교육 양극화는 정책 실패의 결과다. 즉 교육을 통해 부익부·빈익빈 추세가 강화되는 것은 경직적인 교육제도에 따른 ‘공교육 실패’가 원인이다. 그런데도 마치 양극화가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인과관계를 호도(糊塗)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비양심적이다.
교육부총리까지 여권 실세들에게 화답하고 나섰다. 김진표 부총리는 당분간 자립형 사립고를 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김 부총리는 경제부총리 시절부터 줄곧 자립형 사립고 확대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사립학교법 문제를 놓고 가톨릭 지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20개 정도로 확대하려고 한다. 종교계에서 운영해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지 않았었나.
정치적 요구에 김 부총리가 고개를 숙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곤 씨의 ‘회장님, 딸랑딸랑’ 코미디가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의 오버(?)인가.
1년여 전 김진표 씨가 교육부총리로 지명되던 날, 많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교육에 시장논리를 도입하려는 부적절한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일부 진보단체들은 그를 ‘평준화 해제론자’로 지목하고 “강력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혹자는 부총리 지명에 대해 “이쯤 되면 거의 막가자는 이야기다”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과 폄하에도 많은 국민들은 경제전문가의 교육부총리 취임에 큰 기대를 걸었고 성원도 보냈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공교육 정상화 소명 잊고 정치에 고개 숙여
당시 김진표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경제전문가를 교육정책의 수장으로 기용한 시대적 의미는 분명했다. 그것은 경제원리를 통해 사교육 광풍을 잠재우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라는 소명이 아니었나. 경제학의 창(窓)을 통해서 볼 때, 사교육은 일종의 ‘교육 암시장’이다. 암시장의 부작용은 정규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때만 제어된다. 즉 교육 정상화는 교육의 정규시장인 공교육의 기능이 회복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공교육 정상화의 요체는 평준화 체제의 완화·수정에 있다. 이런 점에서 자립형 사립고 확대 방안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상징이었다.
국민들이 김 부총리에게 기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시도였다. 일을 해가는 데에 소신과는 다른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필부(匹夫)도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킨다. 여권 실세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조건반사’ 하듯이 소신을 버리고 아세(阿世)하는 부총리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허탈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마저 ‘증오와 분노의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정치인이나 그런 편 가르기 정치에 원칙을 포기해가며 장단을 맞추는 교육 수장이 있는 한 이 나라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