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동아 DB]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2016년 10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내용이다. ‘1세대 노동운동가’로 분류되는 한 사무총장은 10여 년 전부터 진보진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다 최근 들어 아예 “진보라는 외투를 벗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198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노동운동에 투신한 데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그가 더 이상 진보로 규정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평등, 공정,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대한한국에서 진보 호칭은 오욕이자 불명예가 돼버렸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한 사무총장은 1983년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소위 ‘운동권’에 입문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투쟁동지회를 만들어 처음으로 구속됐고,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며 사면된 뒤에는 ‘노동운동의 메카’였던 인천에서 현장 노동자 조직사업에 참여했다. 이후로도 전국 단위 노동조합(노조) 조직에 앞장섰다. 1990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될 때 선봉에 섰고, 1995년 민노총 출범 이후 산하 금속산업연맹 조직실장, 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등을 지내며 그 역사를 함께 했다.
한 사무총장은 민노총에 몸담고 있는 동안 진보 노동운동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2012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민노총으로 대변되는 대공장 정규직, 금융 사무직은 이제 중산층이 됐지만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4월 25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는 “(지난 40여 년 간)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는데 상층(고임금 근로자)만 처우가 좋아지고 저 밑바닥(저임금 근로자)은 방치되도록 놔둔, 그런 노동운동이었다”며 “노조가 조직된 이들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지키는 데만 집중하고 몰두해온 것이 만든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한 사무총장은 진보정치에 대해서도 내내 비판 목소리를 냈다. 2012년 ‘통합진보당(통진당) 부정 경선 사건’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통진당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통진당은 한국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돼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 비정규직들, 학생들이 함께 총을 맞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각종 비리 의혹이 떠오른 2019년에는 “조국 사태로 ‘평등·공정·정의’라는 진보의 가치가 통째로 날아갔다”고 직격했고, 지난해 정의당 10년 평가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정의당이 민주당에 의존하며 불평등에 맞서지 않은 결과가 바로 총선·대선·지선 연속 패배”라고 분석했다.
한 사무총장은 올해 초 자신의 ‘친정’ 격인 민노총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정부 주도 상생임금위원회(상생위)에서 탈퇴하라는 민노총의 요구를 그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상생위를 ‘반노동적 위원회’로 규정한 민노총은 당시 한 사무총장에게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직 사퇴를 압박했으나 그는 “(민노총이) 죽으라고 던지는 돌멩이는 그대로 얻어 맞겠다”며 맞섰다. 현재 한 사무총장은 금태섭 전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금 의원은 연내 신당 창당을 공식화 한 상태다. 다만 한 사무총장은 25일 동아일보 인터뷰 중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실 정치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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