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과세 시행에 대한 투자자 반대가 거세다. 사진은 11월 21일 신고가를 기록한 비트코인 가격.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가상자산투자소득세를 유예하자는 정부·여당 방침에 따르겠다고 밝히며 한 말이다. 이로써 내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이던 가상자산 과세는 2027년으로 2년 미뤄지게 됐다. 민주당이 “추가 유예는 없다”는 당초 입장을 뒤집은 것은 가상자산 투자자 저항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발표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청년을 위해 좋은 일”이라며 “국민을 이겨먹는 정치는 없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예 결정 이해 어려워” 당내 반대
가상자산투자소득세는 가상자산에 투자해 소득이 발생할 경우 22% 세금(지방세 포함)을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20년 소득세법 개정안 통과 이후 두 차례 유예를 거쳐 내년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폐지 쪽으로 결론 나면서 가상자산 또한 과세 유예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기본공제 한도를 기존 25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상향한 뒤 예정대로 가상자산 과세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가상자산 투자로 5000만 원 이상 수익을 내는 경우가 드물고, 5% 수익률을 기준으로 5000만 원 수익을 올리려면 10억 원 넘는 돈을 투자해야 하기에 고액 투자자만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는 논리였다.
투자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5% 수익을 내려고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같은 반응이 나오며, 국회동의청원 홈페이지에 ‘2025년 1월 1일 코인 과세 유예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청원 요건인 5만 명 동의를 넘겼다. 가상자산 투자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로 자금을 이전하는 방법을 묻는 게시물이 줄을 잇기도 했다. 한 투자자는 “과세가 시행되면 이제 ‘김치 프리미엄’(국내 가상자산 가격이 해외보다 비싼 현상)은 사라진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해외 거래소로) 대규모 자금 이탈이 일어나면서 국내 거래소 투자자는 ‘역프’(역 김치 프리미엄) 손해에 22% 세금까지 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투자 유예 결정 배경으로 꼽은 것은 ‘미비한 제도’다. 그간 가상자산은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고, 정확한 과세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과세 시행이 미뤄져 왔다. 특히 해외 거래소의 거래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로 꼽혔다. 당초 민주당은 “일단 국내 중심으로 과세를 시작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 암호화자산자동정보교환체계(CARF)가 가동되는) 2027년부터 해외 거래까지 과세하면 된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를 바꾼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추진해온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내대표 발표를 보고 몹시 당혹스러웠다”며 “4년 전 여야 합의로 입법됐던 과세가 상황논리에 따라 이렇게 쉽게 폐기되고 유예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선진국은 이미 가상자산에 과세 중
해외에서는 이미 가상자산에 과세를 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해외 거래소 추적 불가 등 과세 인프라 미비에도 가상자산 양도차익에 자본이득, 기타소득(잡소득) 등 명목으로 세금을 매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주요국의 디지털자산 과세제도’ 보고서에서 “한국은 과세 인프라 구축 미비를 이유로 가상자산 소득을 전부 과세하지 않는데, 국제적 현황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또 주식투자는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산업 발전을 이끌고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만큼 세제 혜택을 제공할 여지가 있으나, 가상자산은 자본시장 육성과 관련성이 없어 정책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금투세에서 한 차례 과세 원칙을 저버린 탓에 가상자산투자소득세 또한 명분을 상실하는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라며 “자본시장 육성 차원에서 가상자산은 주식과 차별적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가상자산 투자자 입장에서는 ‘왜 더 큰 어른인 주식은 봐주고 이제 막 성장하는 어린이인 가상자산은 죽이려 하느냐’는 조세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 같은 여론을 제어하기에 정치권은 이미 금투세를 기점으로 주도권을 뺏겼다”고 덧붙였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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