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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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가입 3~4일 만에 너도나도 “같이 죽을래요?”

자살사이트 체험 취재기 … 힘겨운 삶 넋두리, 시간·장소까지 알려주고 동참 호소(?)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6-11-09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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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가입 3~4일 만에 너도나도 “같이 죽을래요?”
    “안녕하세여.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살사이트 찾다가 님의 아이디를 보고 멜 보냅니다. 전 서울에 살구여. 28살입니다. 집안 형편도 너무 어렵고 하는 일마다 안 돼서 더 이상 여력이 없네여. 전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거든여. 며칠 전 혼자 시도했는데 힘들더군여. 맨정신엔 힘들 것 같아서 술을 약간 마시든지, 아님 잠이 잘 오는 감기약 몇 개 먹고 몽롱한 상태에서 뛰어내리려구여. 그래서 같이 할 분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서로 넋두리나 늘어놓다가 같이 떠났으면 해여. 주변 정리하고 수욜 밤에 실행할 생각입니다. 011-○○○○-○○○○입니다. 생각 있으심 연락주세여. 빨리 가고 싶네여.”

    사법시험 낙방생 “돈에서 벗어나고 싶다”

    11월1일, 기자에게 e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자살사이트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자살사이트를 찾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지 만 하루가 지나서였다.

    e메일을 보낸 강씨와 곧바로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진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면서 자신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동반 자살할 사람을 구한다”는 그는 “오늘 나와 같이 (자살을) 할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날짜와 시간을 두고 2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가까스로 다음으로 약속(?)을 미룰 수 있었다. 대신 그와 인터넷 채팅으로 대화를 더 나누기로 했다.

    채팅이 이뤄진 건 전화통화 후 5~6시간이 지나서였다. 3시간 넘게 채팅을 한 뒤에야 그가 자살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울 사립) ○○대학 법학과를 3학년까지 다니다 생활고로 자퇴했다”는 강씨는 4년 이상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거푸 시험에서 떨어졌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허덕인다고 전했다. 이미 그와 가족들은 모두 신용불량 상태로 수억원대 빚을 지고 쫓겨다니는 처지였다. 강씨는 “더 이상 살아갈 여력이 없습니다. 고시공부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집안 살림을 도왔어요. 부모님이 경제력이 없으세요. 제가 돕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죠. 그러나 이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번 달 고시원 방세도 못 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는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모든 걸 정리하고 편안해지고 싶어요”라며 괴로워했다.



    그는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 한 달 넘게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이 자살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연락이 닿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도 있었고, 충동적으로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말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던 사연도 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수일 전의 일이라고 했다. 상대는 30세 사업가 A씨. 그에 따르면 A씨는 약 2주 전 강씨와 인터넷을 통해 만나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날짜까지 정했다. 그러나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A씨가 약속 하루 전날 먼저 자살해버렸기 때문. 강씨는 “약속한 날(10월31일) A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안 됐어요.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살하기로 했던 수도권 ○○시에 있는 △△아파트에 가봤더니 전날 이미 죽었더라고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었어요. 참 허탈했습니다. 정말 급하셨나봐요. 저도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오늘(11월1일) 저녁에 자살할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시에 떨어진 후 자살한 사람이 주변에만 몇 명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지난달) 사법시험 결과가 나온 이후 내가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같이 밥 먹고 공부하던 형이 며칠 전 고시원에서 목을 매 자살했어요. 죽기 전엔 전혀 눈치를 못 챘죠.”

    또 다른 사람에게 e메일이 온 것은 11월2일, 강씨에게 연락이 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번에는 30세 여성 S씨였다.

    “안녕하세요. 저도 카페를 찾고 있던 차에 우연히 님의 글을 보고 쪽지 보내요. 너무나 힘듭니다. 그곳에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여기는 ○○이구요. 여자입니다. 나이는 서른이구요. 혹시 카페나 정보 아시는 거 있으면 답장 부탁드릴게요.”

    전직 호스티스라고 자신을 밝힌 그녀도 오래전부터 자살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빠르면 일주일 후, 늦어도 올해 안에는 자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 자살에 쓸 약(청산가리)을 구한다는 그녀는 인터넷 채팅 도중 줄곧 “약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S씨의 자살 동기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사실 삶의 희망이 없는 것이 더 큰 이유”라고 그녀는 털어놨다. S씨는 “(술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달리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네요. 삶의 희망도 없어요. 술집을 나와 잘 살아보려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지만 소용없었어요. 제 과거는 바뀌지 않잖아요. 부모님 뵙기도 미안하고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과거가 짐이 돼 떠났다”는 그녀는 “술집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이 좀 있는데,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께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남겨드리고 갈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며 말끝을 흐렸다. 대화를 끝내며 그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는 말도 남겼다. “구름도 보고 산도 보고 바다도 보려고요. 예쁜 것들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네요.”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충동적이든 계획적이든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상에서 쉽게 만났고, 마음속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살사이트(카페)를 찾습니다’는 글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이후 3~4일간 동반자살 혹은 자살방법에 대한 문의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20명이 넘었다. 그중 4~5명은 실제로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으며, 동반자살을 제안한 사람도 3명이 있었다.

    자살용 독극물 구하는 법 묻기도

    이들이 말하는 자살 동기는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였다. 사업 혹은 생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더 이상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남녀관계가 자살을 고민하는 이유인 경우도 간혹 있었다.

    S씨를 통해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S씨에 따르면, 독극물은 대부분 일대일 관계(e메일이나 인터넷 쪽지)로 유통되는데, 자살과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판매업자들이 e메일 등을 이용, 구매를 권유해오는 식이라고 했다. 물론 “사기도 많다”고 한다.

    “지난해 자살을 하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어떤 사람이 청산가리를 판다고 연락해왔어요. 한 달 넘게 그 사람과 e메일을 주고받았죠. 그런데 돈 50만원만 날렸어요. 청산가리는 받지도 못했고요.”

    매년 우리나라에서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05년에만 1만2047명이 자살했고, 이는 전체 사망자 수(24만5511명)의 4.9%에 달했다. 2003년(4.4%)과 2004년(4.7%)에 비해 늘어난 수치. 그러나 자살을 막을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제한적이다. 특히 2인 이상의 동반자살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예방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최근에도 서울 남산에서 20, 30대 3명이 동반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자살사이트가 있어서 이곳을 집중적으로 단속, 차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예방효과를 거뒀지만, 요즘에는 대부분 일대일 관계로 만나 동반자살을 하기 때문에 예방이 쉽지 않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e메일이나 개별적인 전화 연락을 통해 자살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자살을 막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자살을 계획하는 사람이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정말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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