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이후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행보가 현란하다. 10월31일 북-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도출해낸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먼저 금융제재를 해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번 북-미-중 회동에서 북한은 사실상 이 요구를 거둬들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회동 다음날인 11월 1일 “우리는 6자회담 틀 안에서 조-미(북-미) 사이에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종전 입장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對北) 제재의 소나기를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의도일까? 아니면 북-미-중 3국 대표 회동에서 공개되지 않은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이 고수해오던 요구를 스스로 철회한 ‘이변’을 설명할 근거가 없지 않은가.
북-미 간 협상과정에서 중국이 큰 역할을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측 대표를 베이징(北京)에 불러 한자리에 앉힌 것 자체가 중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한국은 이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북한 스스로 요구 철회 이유는?
사실 중국은 갈등의 양대 축인 북-미 양측을 불러 모은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1년 넘게 평행선을 달려오던 북-미 양자가 회동에 응했다는 것은 사전에 어떤 식으로든 물밑 교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중국이 양측을 오가며 ‘거래 조건’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얘기다. 그 내용은 무엇일까? 중국 내 사정에 정통한 한 정보통의 설명은 이렇다.
“핵실험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쇄 접촉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탕 위원은 ‘북한을 설득할 재료가 필요하다’며 3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선 첫째, 미국이 가동 중인 금융제재에서 정상적인 거래를 통한 합법적인 돈과 불법행위로 조성한 자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 제재를 중단하고 셋째, 6자회담에서 성과가 나올 경우 안보리 제재를 없던 일로 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탕 위원은 부시 대통령의 일차 동의를 받아낸 뒤 평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제안을 전달받은 김 위원장은 “계속 거짓말을 해온 미국을 믿을 수가 없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유감의 뜻을 전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평양에서 돌아온 탕 위원은 북한의 반응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방북이 헛되지 않았다”고 한 탕 위원의 당시 발언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
그런데 미국이 또다시 시간을 끌었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를 구체화하는 한편, 중국이 가져온 안에 대해선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과 북한은 ‘미국이 중간선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미-중 3자회동은 중국이 내놓은 3가지 제안을 미국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성사됐다는 게 중국 측 정보통의 설명이다.
이 같은 분석은 미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한·미연구소장 돈 오버도퍼에 의해서도 일부 확인된다. 미 행정부 내에 광범한 네트워크를 가진 오버도퍼 소장은 11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400만 달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800만 달러는 합법적인 돈으로 확인됐다”며 “미국은 6자회담 재개 이전에 이 돈을 풀어 평양에 ‘잘해보자’는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 측 정보통의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발언이다.
남북관계 변수, 관련 국가들 내심 강하게 의식
한편, 안보리 주도로 준비 중인 대북제재 리스트가 북한의 희망대로 중단 내지는 폐기될지 여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는 것만으로 국제사회의 합의를 없던 일로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11월1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수출 및 수입 제재대상 품목을 확정했고, 유엔 192개 회원국은 11월13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앞으로 일정을 짚어볼 때 6자회담은 11월 말 혹은 12월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협상에 임하면서, 미국 측에 금융제재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미국 또한 안보리 결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기존의 대북 압박 수단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 이런 구도에서 상황 전반을 컨트롤할 주체는 여전히 중국이다.
여기에 더해 관련 당사국들 모두가 내심 강하게 의식 중인 ‘변수’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다. 만약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을 전후해 남북대화 축에서 뭔가 중대 발표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같은 소재가 뜬다면, 북핵 해법의 기존 틀과 역학구도는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 당국은 제각각 속계산은 달라도 ‘회심의 한방’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남북관계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이 질문에 교과서적으로 답한다면 이렇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은 국제관계 축과 남북관계 축을 병행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남북관계 축을 동원해 국제사회의 압박을 약화 내지는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지금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을 회피할 방어막으로 남측을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다.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먼저 금융제재를 해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번 북-미-중 회동에서 북한은 사실상 이 요구를 거둬들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회동 다음날인 11월 1일 “우리는 6자회담 틀 안에서 조-미(북-미) 사이에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종전 입장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對北) 제재의 소나기를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의도일까? 아니면 북-미-중 3국 대표 회동에서 공개되지 않은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이 고수해오던 요구를 스스로 철회한 ‘이변’을 설명할 근거가 없지 않은가.
북-미 간 협상과정에서 중국이 큰 역할을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측 대표를 베이징(北京)에 불러 한자리에 앉힌 것 자체가 중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한국은 이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북한 스스로 요구 철회 이유는?
사실 중국은 갈등의 양대 축인 북-미 양측을 불러 모은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1년 넘게 평행선을 달려오던 북-미 양자가 회동에 응했다는 것은 사전에 어떤 식으로든 물밑 교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중국이 양측을 오가며 ‘거래 조건’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얘기다. 그 내용은 무엇일까? 중국 내 사정에 정통한 한 정보통의 설명은 이렇다.
“핵실험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쇄 접촉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탕 위원은 ‘북한을 설득할 재료가 필요하다’며 3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선 첫째, 미국이 가동 중인 금융제재에서 정상적인 거래를 통한 합법적인 돈과 불법행위로 조성한 자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 제재를 중단하고 셋째, 6자회담에서 성과가 나올 경우 안보리 제재를 없던 일로 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탕 위원은 부시 대통령의 일차 동의를 받아낸 뒤 평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제안을 전달받은 김 위원장은 “계속 거짓말을 해온 미국을 믿을 수가 없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유감의 뜻을 전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평양에서 돌아온 탕 위원은 북한의 반응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방북이 헛되지 않았다”고 한 탕 위원의 당시 발언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
그런데 미국이 또다시 시간을 끌었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를 구체화하는 한편, 중국이 가져온 안에 대해선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과 북한은 ‘미국이 중간선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미-중 3자회동은 중국이 내놓은 3가지 제안을 미국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성사됐다는 게 중국 측 정보통의 설명이다.
이 같은 분석은 미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한·미연구소장 돈 오버도퍼에 의해서도 일부 확인된다. 미 행정부 내에 광범한 네트워크를 가진 오버도퍼 소장은 11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400만 달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800만 달러는 합법적인 돈으로 확인됐다”며 “미국은 6자회담 재개 이전에 이 돈을 풀어 평양에 ‘잘해보자’는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 측 정보통의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발언이다.
남북관계 변수, 관련 국가들 내심 강하게 의식
한편, 안보리 주도로 준비 중인 대북제재 리스트가 북한의 희망대로 중단 내지는 폐기될지 여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는 것만으로 국제사회의 합의를 없던 일로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11월1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수출 및 수입 제재대상 품목을 확정했고, 유엔 192개 회원국은 11월13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앞으로 일정을 짚어볼 때 6자회담은 11월 말 혹은 12월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협상에 임하면서, 미국 측에 금융제재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미국 또한 안보리 결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기존의 대북 압박 수단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 이런 구도에서 상황 전반을 컨트롤할 주체는 여전히 중국이다.
여기에 더해 관련 당사국들 모두가 내심 강하게 의식 중인 ‘변수’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다. 만약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을 전후해 남북대화 축에서 뭔가 중대 발표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같은 소재가 뜬다면, 북핵 해법의 기존 틀과 역학구도는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 당국은 제각각 속계산은 달라도 ‘회심의 한방’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남북관계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이 질문에 교과서적으로 답한다면 이렇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은 국제관계 축과 남북관계 축을 병행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남북관계 축을 동원해 국제사회의 압박을 약화 내지는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지금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을 회피할 방어막으로 남측을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