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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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뒤바뀐 김일의 인생 항로

  • 정재윤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jaeyuna@donga.com

    입력2006-11-13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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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따라 뒤바뀐 김일의 인생 항로

    박치기왕 김일(오른쪽)이 1965년 상대를 특유의 박치기로 쓰러뜨리고 있다.

    10월26일, ‘박치기왕’ 김일 선생이 별세했다. ‘십이륙’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27년 전 서거한 날이기도 하다. 우연이라 하기엔 묘하다. 김일은 언제나 박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김일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반면 김일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좋지 않은 인연이었다.

    김일과 박 전 대통령의 일화는 많다. 전남 고흥의 섬마을이었던 고인의 고향에 전기가 들어오게 된 것도 두 사람의 인연 때문이었다. 1960년대 말 박 전 대통령은 고인에게 “소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제 고향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제 경기를 볼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6개월 뒤 그의 고향은 인근 섬 중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

    김일은 반칙을 하지 않는 레슬러로도 유명했다. 그것도 박 전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라고 고인은 말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김일에게 “작은 한국인이 외국의 거인들을 무릎 꿇릴 수 있는 것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정신이야. 그런데 레슬링에는 반칙이 너무 많아. 어린아이들에게 교육상 안 좋아”라고 말했다고. 박 전 대통령은 이후 1975년 “한국 사람도 하면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며 ‘김일체육관’을 지어주기도 했다.

    1965년 장영철이 “레슬링은 쇼다”라고 폭탄선언을 한 뒤 프로레슬링은 위기를 맞았지만 프로레슬링이 급격히 쇠퇴한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라는 것이 중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로레슬링을 싫어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전 전 대통령이 여단장 시절 청와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대통령이 레슬링 중계를 보고 있자 “각하, 레슬링은 쇼인데 뭐 하러 보십니까”라고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 김일은 마지막 경기를 했고, 프로레슬링은 어느덧 TV에서조차 사라졌다. 전두환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탄압(?)은 철저했다. 정동의 김일체육관마저 몰수되어 문화체육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1981년 재단법인 김일후원회는 해산됐다. 한 프로레슬러는 “과격하게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은 가장 과격한 운동인 프로레슬링을 도태시키면서 의도적으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노년에도 전두환 정권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권력자가 전 시대의 영웅을 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영웅 김일’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맺힌 가슴을 통쾌하게 풀어줄 또 다른 영웅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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