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겪는 가운데도 최대 매출을 기록한 한미약품. 한미약품 제공
한미약품그룹이 1년 넘게 이어진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고 경영과 대주주가 분리된 ‘선진 거버넌스 체제’로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3월 2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그룹 본사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에서 ‘다시, 창조와 혁신으로’라는 주주서한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송 회장은 “한국 기업 경영 환경에서는 볼 수 없던 선진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대주주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면서 관리, 감독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나갈 것”이라며 “대주주들의 합심과 이사회의 탄탄한 지원, 전문경영인들의 자유로운 역량 발휘가 조화를 이뤄 한미약품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비상할 것임을 주주들에게 약속한다”고 말했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배우자인 송 회장은 같은 날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그룹 회장직만 유지하기로 했다. 한미약품그룹의 도약을 이끌 한미사이언스 새 대표이사에는 김재교 전 메리츠증권 부사장이 선임됐다. 김 대표는 제약산업과 금융계에서 고르게 경험을 쌓은 인물로 꼽힌다. 1990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31년간 경영 기획, 글로벌 전략, 인수합병, 기술 수출 등 업무를 총괄했으며, 2021년 메리츠증권에 합류해 바이오 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IND 본부를 담당했다.
송영숙 회장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사임
김 대표는 4월 1일 취임 후 첫 메시지로 “이제 ‘혁신적인 글로벌 신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한다”며 “창조와 도전의 DNA, 그리고 이를 이끌어갈 혁신 정신으로 세상에 없던 신약을 개발하는 ‘살아 있는 제약기업’이 되자”고 주문했다. 이날 한미약품그룹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한미사이언스 내에 기획전략본부와 이노베이션 본부를 신설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한편, 미래 사업 발굴과 전략적 성장 기회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한미약품그룹은 이번 새 출발에 앞서 경영권 분쟁에 시달렸다. 분쟁은 송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당시 한미약품 사장)이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모녀 측은 기업 합병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장남 임종윤·차남 임종훈 당시 한미약품 사장 형제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주요 주주인 4자 연합(송 회장-임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라데팡스파트너스)과 형제 측은 약 1년간 대립했는데, 지난해 12월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보유 중인 지분 일부를 4자 연합에 매각하며 경영권 분쟁 종결 수순을 밟았다.
지난해 그룹 전체가 내홍을 겪는 가운데도 핵심 사업 회사인 한미약품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달성한 매출 1조4955억 원은 2022년 1조3315억 원, 2023년 1조4909억 원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영업이익률도 14.5%로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R&D(연구개발)에도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2098억 원을 투입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원외처방 부문에서만 전년 대비 7.1%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이상지질혈증 복합신약 ‘로수젯’ 한 제품으로만 전년 동기 대비 17.6% 성장한 2103억 원의 처방 매출을 달성했다. 또한 지난 한 해 동안 매출 100억 원 이상인 블록버스터 제품 20종을 배출해 국내 제약사 최다 기록을 유지했다.
증권가 “실적 개선 가능성 크다”
R&D 부문에서는 ‘신약 개발 전문 제약기업’으로서 신규 모달리티(치료법)를 접목한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다수의 글로벌 학회에 항암과 비만대사, 희귀질환 분야 혁신 신약들의 연구 결과 39건을 발표하는 등 R&D 성과를 공개했다. 대표적인 신약후보로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기반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면역 조절 항암 신약 ‘HM16390’ 등이 거론된다. 특히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개발 속도가 빨라 2026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차세대 표적항암 혁신 신약 ‘EZH1/2 이중 저해제(HM97662)’의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신규 바이오마커(몸속 세포나 혈관, 단백질, DNA 등을 이용해 몸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발굴했다. 현재까지 EZH1/2 억제제의 반응성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로 SWI/SNF 복합체 구성 단백질의 기능 상실 돌연변이가 사용돼왔지만 불완전한 예측력 등 한계로 대안적 바이오마커 탐색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 확대에 성공했음에도 주가 하락은 면치 못했다. 한미약품 주가는 4월 9일 종가 기준 22만6000원으로 52주 최고가(37만5000원) 대비 39.7% 하락했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SK증권은 4월 7일 “지난 1년간 지속됐던 경영권 분쟁이 종결된 가운데 경영 정상화 초기 국면에 진입한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7만 원을 유지했다. 현대차증권도 4월 9일 “학회에서 비만치료제에 대한 성공적 임상데이터 발표를 통해 한미약품의 기업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8만 원을 유지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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