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초원을 달리다 만난 야생마들.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한가롭다.
사막은 밤이 되면 급속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모래와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자연의 범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때문에 고비사막의 일정은 대부분 이른 아침에 시작된다.
몽골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한국 자동차는 디자인보다 실용적인 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울란바토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는 여전히 비포장도로가 많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드넓은 초원과 사막이 펼쳐진다. 때문에 몽골 땅에서는 튼튼한 한국 자동차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몽골인에게 최고의 트랙터로 손꼽히는 차가 있는데 바로 러시아제 푸르공이다. 사막을 달리고 있으면 멀리서 힘차게 달려오는 푸르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몽골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푸르공은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여겨진다. 몽골인 사이에는 “요즘에는 말 대신 푸르공을 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푸르공을 타고 반나절을 달렸다. 우리 팀은 황량하면서도 신선한 초원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군데군데 게르(몽골인의 이동가옥)들이 커다란 회색버섯처럼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야생마와 산양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감미로운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몽골의 초원에는 로멩가리가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꽃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로멩가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니! 몽골 땅의 지류가 물이 없어도 촉촉하기 때문에 로멩가리가 잘 자란다고 한다. 때문에 물 부족이 심각한 이 땅에서도 야생의 짐승들은 고개만 숙여도 충분히 수분을 취할 수 있다.
고비사막에서 만난 몽골의 어린아이(왼쪽). 몽골인의 이동가옥 ‘게르’와 러시아제 밴 푸르공.
피곤에 지친 우리 일행은 차를 세우고 유목민에게 하룻밤 쉬어갈 수 있겠냐고 청한다. 이방인을 맞이하는 몽골인의 관습에 따라 우리는 가장 좋은 게르로 안내된다. 게르는 몽골인의 삶의 방식을 닮았다.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천막 위에 두꺼운 짐승 가죽을 둘러놓았기 때문인지 게르는 생각보다 아늑하다. 게르 안에는 푹신한 침대와 편리한 세면대는 없지만 원색의 질감 좋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부족의 평화와 조상을 기리는 히닥(이리를 상징하는 푸른 천)도 장식되어 있다. 머나먼 옛날, 칭기즈칸도 대륙을 달리다가 이런 곳에 누워 뚫린 천장을 통해 저 별들을 바라보곤 했을까? 게르 안에서 사람들과 둥글게 모여 앉아 수태(보드카에 말젖을 섞은 몽골의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몽골의 밤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빠르게 빠져든다.
보통 고비사막 일정은 일주일 정도로 계획된다. 울란바토르를 떠나 초원과 사막을 통과하면서 중간중간 낙타사파리도 경험하고,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인 만달고비(Mandalgobi)나 달란자가드(Dalan-zadgad)의 모텔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사막으로 떠나 순한 야생말을 타고 공룡의 발원지라고 하는 욜링암(Yoling Am)의 아이스밸리에 가본다(신기하게도 그곳에는 여전히 빙하가 있다). 아이스밸리를 마지막으로 푸르공은 방향을 바꿔 울란바토르를 향해 달린다. 운이 좋으면 되돌아오는 길에 불교와 티베트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웅깃사원까지 가볼 수 있다.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과 초원의 연속. 고비사막으로의 여행은 자칫 지겨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풍요로운 빛깔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올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몽골인은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이다. 그래서 풍경이든 사람이든 그들이 먼저 여행자를 마중 나오는 경우가 없다. 여행 중 그들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뿐이다.
조금만 적극적인 마음으로 몽골을 대한다면 그곳은 순수하고 따뜻한 자신의 정원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먼 거리를 달리느라 피로가 몰려오고 화장실 하나 없는 불편한 사막에서 여행자들이 밝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야생마를 타고 초원을 달리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는 차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열심히 뛰어야 하는 곳이 바로 몽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