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공매도 재개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대차잔고(투자자들이 주식을 빌 린 뒤 갚지 않은 물량)가 많았던 기업들은 공매도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수급도 좋지 않았다. 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얘기가 나온 상황에서 현대차가 미국에 3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도 25% 관세를 부과받으니 이제 한국 기업은 미국에서 장사를 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절망감, 답답함까지 시장에 반영됐을 것으 로 생각한다.”
공매도 재개 첫날, 증시 급락
2023년 11월 이후 전면 금지됐던 공매도가 재 개된 3월 31일 한국 증시는 그야말로 블랙먼데이 를 맞았다. 코스피는 2500 선이 무너졌고, 코스 닥 지수는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그래프 참 조).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의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공매도 거래대금은 1조4833억 원에 달했다. 종목별로는 코스피에서 SK하이닉스가 2298억 원으로 가장 많은 공매도가 이뤄졌다. 코스닥에서는 제약·바이오주와 이차전지주에 공매 도가 집중됐다.시장에서는 우려하던 대로 외국인의 공매도로 주가지수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32년 차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 자자문 대표를 4월 1일에 만나 1년 5개월 만에 이뤄진 공매도 전면 재개가 한국 증시에 미친 영향과 트럼프발(發) 상호관세 악재까지 겹친 국내 증시 전망에 관해 물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조영철 기자〕
“공매도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다.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기금이나 증권사 등으로부터 이 자를 주고 빌려와 매도한 뒤 주가가 쌀 때 되사서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을 볼 수 있어 주가 하락에 베팅한다는 인식을 주지만, 사는 사람만 있던 시장에서 비유동되 는 주식을 빌려와 파는 사람도 나오게 되니 유동성 을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 특정 회사가 감추 고 있는 것들을 폭로함으로써 시장을 투명하게 만 드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기·수소트 럭 제조업체 니콜라는 한때 차세대 최고 기업이 될 것으로 여겨지며 한화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투자했다. 하지만 공매도 투자회사 힌덴버그리서치가 니콜라의 홍보 동영상 속 전기·수소트럭의 주행 장면이 내리막 도로에서 촬영된 것이라는 보고서 를 발간하고 공매도를 한 뒤 그 내용이 사실로 밝혀져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시장에서는 공매도 재개와 함께 ‘외국인 컴백’을 기대했는데.
“외국인은 투명한 시장을 좋아한다. 투자에 앞서 애널리스트들의 매수 보고서만 보다가 공매도 세력의 매도 보고서를 보면 크로스 체크가 되기 때 문이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2023년 11월 공매도가 금지된 이후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됐다. 또 공매도 금지에 따른 주가 상승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공매도 가 재개되자 시장 전체에서는 외국인이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공매도 대응에는 자사주 매입 소각이 최고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외국인은 돌아온 첫날 대규모 공매도에 나섰다.“한국 주식시장은 U자 모양이다. 시장 전체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8~0.9배인데 실제로는 0.1~0.2배로 저평가된 주식과 10~20배 이상으로 고평가된 주식이 엄청나게 많아서다. 그중 PBR이 높은 기업은 성장성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 성장성이 과대평가됐거나 없다고 여겨지면 공매도 세력이 행동에 나선다. 전통적으로 제약·바이오 주 식이 타깃이 되는데 시장에서는 미래 성장 가능성 을 높게 평가해 밸류에이션을 주지만 선진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참고로 미국 증시는 PBR이 5~6배, 일본 증시는 2~3배, 유럽 증시는 2배 안팎, 중국 증시는 1배 후반대다.)
제약·바이오 기업과 함께 이차전지 종목의 낙폭 도 컸는데.
“사실 제약·바이오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줄임말)가 가능한 업종이고 저력 있는 기 업은 잘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이차전지는 캐 (일시적 수요 정체)도 문제지만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파도가 밀려들고 있어 한국 기업에 견딜 만 한 힘이 있나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저가라 오래 달리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제 1회 충전으로 500㎞를 주행한다고 하고, 일본 도요타는 2027년에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내놓는다고 한다. 과거 LG에너지솔루션이 대규모 상장(12조7500억 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삼성SDI가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것도 앞으로 다가올 힘든 시간에 대비해 서둘러 자금 조달을 했다고 보이지 않나. 거기에 공급 과잉 리스크까지 있으니 답답한 상황이다.”
공매도로 주가가 하락했을 때 기업이 대응할 방 법은 없나.
“공매도가 들어올 때 할 수 있는 최고 방법은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것이다. 주가 하락을 막으면 공매도 세력이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대응을 안 한다면 그럴 돈이 없거나, 지금 투자 하기에도 바쁘거나, 주가가 빠져도 상관없다거나 셋 중 하나일 텐데, 주가가 빠져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실적도 잘 안 나오는 회사라면 공매도가 되는 게 맞다.”
“한국 증시, 올인하면 안 되는 시장”
투자 가치가 있는 기업을 어떻게 골라야 하나.“일단 그 회사가 돈을 벌고 있는지, 성장 기업이라 돈을 못 벌고 있다면 매출은 늘고 있는지, 매출마저 늘고 있지 않다면 회사가 내놓을 신제품이 미래를 바꿀 만한 것인지와 시장에 경쟁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타깝지만 한국 주식시장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투자자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외국인이 ‘물 반, 고기 반’ 하며 공매도를 하려고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1~2월에는 한국 증시 상승률이 세계 상위권이었다.
“너무 쌌기 때문이다. 온갖 악재가 다 터지며 코 스피가 2300일 때 PBR이 0.8배였다. 그래서 저가 매수가 들어왔고 국민연금도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간 리밸런싱을 하며 7조~8조 원어치를 사들였 다. 그러다 3월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증시가 빠지고 원/달러 환율마저 오르니 지수가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한국 증시는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 까지 올랐으니 경쟁력 있는 기업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물론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은 빠져나가 수급이 줄겠지만, 배당도 하고 자사주 매입 소각도 하고 또 낙관적인 이익 공시를 하는 기업의 주가가 한없이 빠질 수는 없지 않나.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매출이 증가하지 않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 다. 내가 좋아하는 주식은 조선주다. 세계 조선업 계에서 경쟁을 벌이는 한국, 일본, 중국 가운데 우리나라 환율 여건이 좋지 않아 돈을 벌기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환율이 받쳐주면 한국이 수익성에서 중국을 앞서갈 수 있다.”
한국 증시투자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올인하면 안 되는 시장이다. 주가가 되게 싸게 거래되고, 앞서 언급한 대로 최소한 3단계 검증을 거친 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나는 한국 경제는 낙관하지만 한국 증시는 낙관하지 않 는다. 절망이 극에 달해 주가가 싸면 좀 사자, 하지만 희망 베팅은 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요즘같이 변동성이 클 때는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금, 한국 주식, 한국 채권, 미국 주식, 미국 채권에 나눠서 투자하는 5분법 투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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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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