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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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건축물 전시장 중세시대로 시간여행 온 듯

  • 글·사진=안진헌 www.travelrain.com

    입력2008-08-20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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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전체가 건축물 전시장 중세시대로 시간여행 온 듯

    더르바르 광장에 펼쳐져 있는 파탄의 왕궁 전경. 왕궁이 광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불과 5km 거리에 파탄(Patan)이 있다. 자칫 카트만두의 한 지역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과거의 파탄에는 엄연히 별도의 왕조와 수도가 있었다. 파탄은 바크타푸르(Bhaktapur)와 함께 말라 왕조 시대 독립된 세 개 왕국을 형성했다. 카트만두가 정치, 바크타푸르가 문화의 중심이었다면 파탄은 예술의 중심지였다.

    네팔을 통일한 샤 왕조가 카트만두를 수도로 정하면서 파탄은 역사의 중심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현재는 카트만두의 한 부분처럼 여겨진다. 여행자들도 카트만두에서 반나절 코스로 다녀오는 여행지 정도로 치부한다.

    미의 도시란 뜻의 랄리트푸르(Lalitpur)라 불렸던 파탄에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이 산재한다. 무려 180여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원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밀집해 있으며, 대를 이어 그림과 공예품을 생산하는 장인들까지 옛 터전에서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 파탄은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파탄으로 여행을 떠나며 ‘하루로는 안 된다’고 최면을 걸었다. 카트만두에서 택시를 타고 바그마티 강을 건너니 파탄의 중심가인 더르바르 광장이 나왔다. 더르바르(Durbar)는 네팔어로 ‘왕궁’이란 뜻이다. 더르바르는 카트만두 분지의 세 왕조에서 동일한 형태로 건설된 도시건축의 기본이라고 한다.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은 16~18세기에 건설됐다. 왕궁을 포함해 10여 개의 힌두 사원이 몰려 있다.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구성이 산만하지 않고 일목요연하다. 더구나 석조 사원과 목조 사원이 혼재해 네팔 건축물의 전시장 같았다. 건축적인 완성도도 뛰어나 미의 도시다운 느낌이 확연히 든다. 마치 시간을 건너뛰어 중세로 온 듯한 분위기다.



    왕궁과 사원 즐비 … 예부터 美의 도시로 불려

    더르바르 광장에서 맨 먼저 왕궁을 찾았다. 왕궁은 광장의 50%을 차지하는 규모다. 왕궁의 출입문은 ‘순 도카’라 불리는 황금 문이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왕이 드나들던 정문으로 시바, 파르바티, 가네시 같은 힌두교 신들이 조각돼 있다. 아바로카테쉬바르(천수관음보살) 조각도 눈에 띈다. 인도와 티베트 사이의 완충지대에 자리해 두 나라의 문화와 종교가 융합했던 결과일 것이다.

    황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왕궁의 안마당이 나왔다. ‘촉(Chowk)’이라 불리는 안마당은 모두 7개가 있었는데, 1934년 지진으로 네 개가 파괴돼 현재는 셋만 남아 있다. 말라 왕들이 신에게 제사 지내던 물 촉, 네팔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인 파탄 박물관으로 변모한 케사브 나라얀 촉을 지나 박물관 안뜰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왕실 목욕탕으로 쓰였다는 순다리 촉은 유네스코에서 복원 중이라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으로 왕궁을 나와 크리슈나 사원에 걸터앉았다. 한때 왕이 살았던 더르바르 광장은 이제 파탄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해 있었다. 분주한 관광객들 사이로 신문을 읽는 사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보였다. 네팔 특유의 한가한 기분이 느껴졌다. 혼자 시간을 거슬러온 사람처럼 현재의 시간을 살면서 동시에 과거를 여행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호객꾼이 접근하며 고요는 깨졌다. 그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반 공개가 안 되는 왕궁 안마당으로 나를 이끈다. 왕궁의 종교적인 공간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운 정원이다. 비원(秘苑)이라도 되는 듯 숨겨진 왕궁의 안뜰은 정교한 석조조각이 목욕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카트만두 분지에 속한 파탄에는 일찌감치 저녁이 찾아왔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파탄의 저녁은 낮과 전혀 달랐다. 마지막 손님들이 카트만두로 돌아간 뒤, 더르바르 광장은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팔고 사는 벼룩시장으로 변모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시장으로 변한 더르바르 광장에 무대가 들어섰다. 무대는 무굴 양식의 힌두 사원과 네팔 양식의 사원을 배경으로 삼았다. 형편없는 앰프에서 동네 악단의 엇박자 음악이 흘러나오고, 엉성한 분장을 한 무희들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춘다. 무대는 열악했고 관객은 적었지만 무희들의 몸놀림은 진지했다. 어둑한 조명 때문인지 공간과 시간이 이질적이다. 시간이 흐르며 영상은 더욱 몽롱해졌다. 아침부터 느껴지던 시간을 건너뛴 비현실적인 느낌은 절정에 달했다.

    골목 안쪽에 있던 숙소는 조용했다. 숙면을 방해하던 사람들도 없었다. 자연스레 눈이 떠진 아침, 다시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한다. 파탄의 아침이 궁금했다. 이른 시간의 광장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흥건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아침은 저녁과 또 다른 시장이 펼쳐졌는데, 이번에는 아침식사에 필요한 채소와 생필품이 주를 이룬다.

    왕실 목욕탕으로 쓰였던 공간은 유네스코가 복원 중

    도시 전체가 건축물 전시장 중세시대로 시간여행 온 듯

    벼룩시장으로 변한 더르바르 광장에서 펼쳐진 춤(왼쪽)과 정교한 왕궁 건축의 모습.

    거리에서 즉석으로 차이(밀크 티)를 만드는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차이는 어느새 세 잔째다. 선한 얼굴의 네팔 아저씨가 모델이 돼준다. 전문 모델처럼 웃음을 지어주더니, 내 옆에 앉아 능청맞게 차이를 부탁했다. 모델료치고는 너무도 싼 셈이다. 그와 말없이 웃으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어느덧 더르바르 광장 주변의 카페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어제 못 가본 카페 옥상에 올라 근사한 아침식사를 주문한다. 높지도 않은 카페 옥상은 탁 트인 전망이 기분을 더욱 좋게 해주었다. 몬순이 지나간 자리에 히말라야가 온전한 얼굴을 드러냈다. 구름인지 설산인지 구분하기 힘든 히말라야가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여행 Tip

    한국에서 카트만두까지는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방콕을 경유하는 타이항공도 여행자들이 즐겨 탄다. 비행시간은 6시간 40분이며, 왕복 요금은 100만원 정도.

    파탄까지는 카트만두 타멜에서 택시로 30분 걸린다. 요금은 120~150루피에 흥정하면 된다. 로컬 버스는 카트만두 시티 버스 스탠드(라트나 파크·Ratna Park)에서 출발하며, 편도 요금은 9루피다. 파탄 입장료는 200루피로 더르바르 광장의 남쪽과 북쪽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파탄의 숙소는 카페 드 파탄(Cafe de Patan, 전화 553-7599), 레스토랑은 탈레주 레스토랑(Taleju Restaurant, 전화 553-8358)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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