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와’
관람객은 ‘드로잉 에너지’의 전시장에 각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개별 공간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듯 체험해간다. 또한 개인적인 낱장의 드로잉들과 수많은 낙서와 글들을 읽어내고, 작가의 생활 공간이자 생산의 현장을 살펴보기도 하고, 주변에 사는 피조물들의 생태도감을 열람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와 비슷한 경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작가들과 ‘드로잉’을 매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결국 전시 공간에서 우리의 움직임은 ‘드로잉’이 뿜어내는 전체 에너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각 설치 공간-즉 설치라는 미디어 작품-을 보면 각종 다양한 미디어들이 혼성적으로 병치, 결합되어 있다. 현대의 미디어 속에서 ‘드로잉’은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으로부터 공공장소에서의 각종 다양한 미디어와 개념들을 넘나드는 또 다른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개별 공간을 탐색해가는 관객은 그 미디어 속에 다시 결합하는 제3의 미디어가 된다.
과연 ‘드로잉’이 우리 삶에서 성찰과 비판의 과정 혹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일까. ‘드로잉’은 가볍게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계획 단계 혹은 반성의 단계처럼 보이는 제스처(혹은 개념)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특징은 인간이라는 존재 혹은 주체성에 대한 위기의식과 각종 미디어(뉴미디어, 매스미디어, 멀티미디어 등)의 혼성적 발전에 대한 기대 심리가 경합을 벌이는 데서 발생하는 모순 속에 있을 것이다. 이런 경합과 모순 속에서 주체성에 대한 반성이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미디어 혼성의 장에서 펼치는 ‘이율배반적’인 시도가 우리 시대의 한 초상이 될 것이다. 12월14일까지, 아르코미술관, 02-760-4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