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상민병 소속 선박들이 떼 지어 항해하는 모습. [VCG]
중국 정부는 2020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선 수백 척을 보내는 등 이 암초를 자국 영토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였다. 필리핀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는 자국 어선들이 풍랑을 피해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런데 중국 어선들은 날씨가 좋을 때도 이 암초 인근 해역에 수개월씩 머물렀다. 이 암초를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해 인공 구조물들을 설치하는 등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1994년 미스치프 암초(Mischief Reef)와 2012년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 등을 점거할 때도 동일한 방법을 썼다. 이들 암초는 모두 필리핀 정부가 주장하는 EEZ 내에 있다.
퇴역 군인 대거 복무하는 해상민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13년 4월 하이난성 해상민병 부대를 방문했다. [중국 정부]
중국은 1949년 대만 국민당군의 공격을 막으면서 연안 조업과 해군력 열세를 보강하는 수단으로 해상민병을 창설했다. 1920년대 소련에 유학했던 샤오진광(蕭勁光) 중국 초대 해군사령관은 당시 잘 훈련된 소형 선박들로 대형 함대에 맞서는 소련 해군의 전술을 차용해 해상민병을 만들었다. 중국은 1974년 1월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베트남명 호앙사군도) 해역에서 벌인 베트남군과 해전에서 해상민병 선박들을 첨병으로 내세워 승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국 해상민병 선박들은 미 해군 함정의 항해를 방해하는 등 적대 행위를 자행해왔다. 해상민병 선박 100여 척은 최근에도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 100여 일간 상주하며 해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해상민병은 중국 해군과 해양경찰에 이어 ‘제3해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등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 해상민병을 ‘리틀 블루맨(Little Blue Man)’이라고 부른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했을 때 군번과 계급장이 없는, 녹색 군복 차림의 ‘리틀 그린맨(Little Green Man)’으로 불리는 민병을 투입한 것처럼 중국도 해군과 비슷한 파란색 군복을 입은 해상민병을 각종 분쟁 해역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민병은 중국이 군을 개입시키지 않고 분쟁지역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른바 ‘회색지대(grey zone)’ 전술을 구사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회색지대 전술은 분쟁지역에서 정규군이 아닌 민병이나 민간인을 활용해 도발하는 전술을 뜻한다. 중국의 의도는 해상민병을 동원해 동·남중국해 분쟁지역을 평화(백색)도, 전쟁(흑색)도 아닌 중간 단계의 혼란한 상태로 만들어 점령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라는 레드라인(금지선)보다 낮은 수준의 도발을 감행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이런 전술은 도발 의도와 동기를 애매하게 포장함으로써 상대의 대응 수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때도 해상민병을 대거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류더진 대만 국방부 총감찰장(중장)은 “중국이 해상민병을 대만 침공에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100~300척 떼 지어 불법 조업
중국은 이를 위해 해상민병 선박들에 위성항법장비와 통신장비 및 각종 무기를 탑재했다. 칼 슈스터 전 미국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중국 해상민병은 자동화기를 싣고 다니고, 선체도 강화해 근접할 때는 매우 위협적”이라면서 “선박의 최고 속력은 18∼22노트(시속 33∼41㎞) 수준으로 대부분 어선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하이난성 탄먼진의 한 해상민병 부대를 방문해 부대원들에게 “현대식 장비 지식을 배우고, 작업 능력을 키우며, 어민을 인솔해 바다에서 돈을 벌면서 동시에 먼바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섬과 암초 건설 작업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앤드루 에릭슨 미 해군참모대 교수는 “중국 해상민병은 국가가 조직해 발전시키고 통제하는 무력집단(force)으로 군 지휘체계 아래서 운용되며, 국가가 뒷받침하는 행위를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10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이 남중국해 인공섬 12해리 이내로 진입해 초계 작전을 수행하자 중국 해상민병 선박 수백 척이 달라붙어 압박했던 일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미 해군함정은 외형상 중국 선박들이 군함이 아닌 어선이어서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다.특히 해상민병은 중국의 불법 조업도 주도하고 있다. 통상 어선은 2∼3척으로 구성되지만 해상민병이 주도하는 어선단은 100∼300척으로, 이들은 떼 지어 출몰해 해당 해역에서 각종 어종을 말살하는 ‘싹쓸이’ 불법 조업을 자행한다. 말 그대로 ‘선해(船海)전술’이다. 중국의 이런 불법 조업 때문에 아세안 회원국은 물론 한국, 일본 어선들도 제대로 조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5월 24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한 4개국 정상들.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즈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시스]
IPMDA는 바다 위 反中 포위망 역할
IPMDA는 중국 해상민병을 견제하는 데도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의 양이쿠이 연구원은 “IPMDA는 쿼드가 처음으로 중국 해상민병에 대응하고자 합의한 체제”라면서 “정규군 대신 민병을 내세운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에 대응하는 것이 IPMDA의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IPMDA가 구축되면 앞으로 불법 조업 감시를 넘어 동·남중국해 등에서 확대되는 중국 해군의 활동도 감시할 것으로 보인다. 쿼드 정상들이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방적인 힘을 통해 현상을 바꾸려는 일방적인 시도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IPMDA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중국 선박의 불법 조업뿐 아니라 중국 해군을 상대할 만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면서 “시스템이 구축되면 이 지역 국가의 해안과 EEZ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쿼드의 의도는 대만해협과 동·남중국해, 태평양 등에서 반중 포위망 구축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IPMDA는 중국의 묵인 아래 동중국해 등에서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불법 환적을 통해 유류 등을 밀반입해온 북한 선박 감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