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무대로 올라갔다. 리듬을 타는 Y의 몸놀림이 유연했다. 파워풀한 브레이크댄스에 고난도 테크닉이 부드럽게 연결됐다. 참석자들이 모두 환호했다.
1999년 7월경 러시아 모스크바 ‘인터내셔널스쿨’에서 벌어진 댄스파티. 히어로는 단연 Y였다. 이날 그는 댄스 챔피언을 ‘먹었다’. 상을 받은 직후 갈색 머리 여학생 두 명이 Y와 Y의 형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자매이고, 너희는 형제이니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
동생의 이름은 카테리나. 영어로는 ‘Kate’였다. Y가 웃으며 카테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 이들은 붙어다녔다. 어느 날 Y는 카테리나를 집으로 데려와 “캐나다에서 온 친구”라며 부모에게 인사를 시켰다. 카테리나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했다.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Y의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온 이 여학생에게 호감을 표했다. 금요일 밤이면 벌어지는 댄스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던 Y와 카테리나는 밤 1시까지 Y의 집에서 춤 연습을 하기 일쑤였다.
모스크바 댄스파티에서 첫 만남
그렇게 6개월을 보낸 어느 날 모스크바 인근 외교단지에 있는 Y의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Y의 아버지를 불러 세우고 “당신 아들과 그 여학생이 타고 온 차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경비원은 “카테리나가 타고 온 차가 아무래도 크렘린궁 소속 같다”고 귀띔했다. “애들이 아파트로 올라가면 경호원 한 명이 아파트 입구를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대문 앞을 지킨다”는 말도 덧붙였다.
Y의 아버지는 즉각 아들을 불렀다. 의외로 Y가 순순히 대답했다.
“사실 카테리나는 캐나다인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둘째 딸입니다.”
카테리나와 한국인 남자친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막 사춘기를 지난 Y로서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싹틀 시기. Y의 부모는 당시 카테리나와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여가 흐른 지금 카테리나를 향한 Y의 열정과 관심을 우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Y의 아버지는 아들과 카테리나의 사랑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할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테리나의 특별한 신분 때문에 Y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Y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현재 따로 떨어져 각각 미국과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며 그리움을 쌓고 있다. Y와 카테리나의 대화 통로는 인터넷과 전화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눈치 빠른 외교가 사람들은 두 청춘 남녀의 숨겨진 러브스토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과연 Y와 카테리나의 국경을 넘은 우정과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Y와 카테리나의 우정과 사랑은 모스크바는 물론 서울에서도 펼쳐졌다.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6월 초. Y는 외교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카테리나의 한국 방문의사를 전달했다.
“카테리나가 월드컵 경기를 보고 싶어합니다. 엄마와 언니(마리야)와 함께 오는 방법, 언니하고 둘이 오는 방법, 마지막으로 혼자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사관에서 의전을 담당해본 경험이 있는 Y의 아버지는 국가 요인의 나들이가 주는 정신적 부담감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류드밀라 여사가 동행한다면 모든 일정을 러시아 대사관에서 맡아 처리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Y의 아버지는 “월드컵 때문에 안전문제가 부담스럽다”며 러시아 대사관저를 추천했다. 당초 류드밀라 여사는 혼자 한국에 가려는 카테리나를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딸 편을 들었다.
“한국을 가본 적이 있다. 한국은 친절하고 평화스러운 나라다.”
결국 카테리나는 러시아 대사관저에서 숙식을 하는 조건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대사관저에 짐을 푼 카테리나는 Y의 집에 곧잘 놀러 왔다. Y는 남자친구의 나라를 찾은 카테리나를 경복궁과 창덕궁, 신촌과 이태원, 압구정과 테헤란로 등지로 안내했다. 카테리나는 특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대문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Y는 그런 여자친구를 데리고 동대문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녔다. 카테리나는 동대문의 노점에서 아버지에게 선물할 옷과 어머니에게 줄 액세서리를 직접 골랐다.
카테리나는 바다를 무척 보고 싶어했다. Y는 모스크바에서 바다를 보려면 800km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Y와 그의 아버지는 카테리나와 함께 제주도 방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주한 러시아 대사가 안전을 이유로 만류했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가 대안으로 결정됐다. 경호원 차량 2대와 대사관 차량 1대, 그리고 Y의 아버지가 탄 차량 등 총 4대의 차량이 안면도를 찾은 것은 6월 중순. 바닷물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카테리나와 Y의 가족은 추위도 잊고 물에 뛰어들었다.
당시 카테리나의 서울 방문을 눈치 챈 한 기업이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그에게 선물했다. Y와 카테리나는 상품권을 들고 쇼핑에 나섰다. 이틀 동안 백화점을 헤매면서 쓴 돈은 13만원. 카테리나는 “87만원을 쓰기 위해 겨울에 다시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Y는 카테리나를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사는 고모 및 이모 집으로 데려가 한국의 가정을 체험하게 했다. 카테리나는 남자친구와 한국과 독일전을 관전한 뒤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헤어진 지 6개월쯤 지난 그해 연말 Y는 크렘린궁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연말 휴가를 오스트리아 스키장에서 함께 보내자.”
정중한 초대였다. 류드밀라 여사와 카테리나, 그리고 그의 언니 마리야가 겨울 휴가 멤버. Y는 2주간 오스트리아의 한 스키장에서 카테리나 식구들과 스키를 타며 휴가를 보냈다.
Y 씨 아버지 “국제결혼 반대 안 한다”
Y와 카테리나의 사랑 이야기는 외교가에서는 잘 알려진 비밀. 그들의 사랑이 양국 간의 평화와 우호를 증진하는 계기가 된 적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2005년 9월20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정보기관이 양국 대통령 부부의 ‘대담자료’를 작성하며 Y와 카테리나의 얘기를 정리해 청와대에 보냈다. 이들을 대화 소재로 삼아 양국 정상 부부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하자는 의도였다.
이 자료를 접한 청와대 관계자가 Y의 아버지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Y는 청와대를 방문해 내용을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권양숙 여사는 “이런 일도 있었나”라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 내외가 푸틴 대통령 부부를 만나 Y와 카테리나 문제를 거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Y는 인터넷을 통해 카테리나와 만나고 있다. 학생 신분으로 만만치 않은 항공료를 감당하기도 벅차고 국제전화 요금도 버겁기 때문이다. Y는 아버지에게 몇 차례 모스크바 방문 계획을 밝히고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 모두 공부해야 할 나이다. 모든 결정은 좀더 성장한 뒤에 내릴 계획이다. 문제가 생기면 나는 괜찮지만 당사자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Y의 아버지는 “두 사람 관계를 남자와 여자로 보지 말고 친구로 봐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아들이 원한다면 결혼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Y의 어머니는 안전문제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생각한다.
Y는 조만간 귀국, 해병대에 입대할 예정이다. Y와 카테리나의 국경을 넘은 사랑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모스크바와 서울, 그리고 미국의 한 도시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깊어가는 이들의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애가 탄다.
1999년 7월경 러시아 모스크바 ‘인터내셔널스쿨’에서 벌어진 댄스파티. 히어로는 단연 Y였다. 이날 그는 댄스 챔피언을 ‘먹었다’. 상을 받은 직후 갈색 머리 여학생 두 명이 Y와 Y의 형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자매이고, 너희는 형제이니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
동생의 이름은 카테리나. 영어로는 ‘Kate’였다. Y가 웃으며 카테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 이들은 붙어다녔다. 어느 날 Y는 카테리나를 집으로 데려와 “캐나다에서 온 친구”라며 부모에게 인사를 시켰다. 카테리나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했다.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Y의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온 이 여학생에게 호감을 표했다. 금요일 밤이면 벌어지는 댄스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던 Y와 카테리나는 밤 1시까지 Y의 집에서 춤 연습을 하기 일쑤였다.
모스크바 댄스파티에서 첫 만남
그렇게 6개월을 보낸 어느 날 모스크바 인근 외교단지에 있는 Y의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Y의 아버지를 불러 세우고 “당신 아들과 그 여학생이 타고 온 차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경비원은 “카테리나가 타고 온 차가 아무래도 크렘린궁 소속 같다”고 귀띔했다. “애들이 아파트로 올라가면 경호원 한 명이 아파트 입구를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대문 앞을 지킨다”는 말도 덧붙였다.
Y의 아버지는 즉각 아들을 불렀다. 의외로 Y가 순순히 대답했다.
“사실 카테리나는 캐나다인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둘째 딸입니다.”
카테리나와 한국인 남자친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막 사춘기를 지난 Y로서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싹틀 시기. Y의 부모는 당시 카테리나와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여가 흐른 지금 카테리나를 향한 Y의 열정과 관심을 우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Y의 아버지는 아들과 카테리나의 사랑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할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테리나의 특별한 신분 때문에 Y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Y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현재 따로 떨어져 각각 미국과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며 그리움을 쌓고 있다. Y와 카테리나의 대화 통로는 인터넷과 전화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눈치 빠른 외교가 사람들은 두 청춘 남녀의 숨겨진 러브스토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과연 Y와 카테리나의 국경을 넘은 우정과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Y와 카테리나의 우정과 사랑은 모스크바는 물론 서울에서도 펼쳐졌다.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6월 초. Y는 외교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카테리나의 한국 방문의사를 전달했다.
“카테리나가 월드컵 경기를 보고 싶어합니다. 엄마와 언니(마리야)와 함께 오는 방법, 언니하고 둘이 오는 방법, 마지막으로 혼자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사관에서 의전을 담당해본 경험이 있는 Y의 아버지는 국가 요인의 나들이가 주는 정신적 부담감을 잘 알고 있었다.
청와대 측은 노무현 대통령 부부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 부부의 모스크바 회동 시 대담자료로 카테리나와 Y의 이야기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05년 5월 모스크바에서 만난 양국 정상 부부.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Y의 아버지는 “월드컵 때문에 안전문제가 부담스럽다”며 러시아 대사관저를 추천했다. 당초 류드밀라 여사는 혼자 한국에 가려는 카테리나를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딸 편을 들었다.
“한국을 가본 적이 있다. 한국은 친절하고 평화스러운 나라다.”
결국 카테리나는 러시아 대사관저에서 숙식을 하는 조건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대사관저에 짐을 푼 카테리나는 Y의 집에 곧잘 놀러 왔다. Y는 남자친구의 나라를 찾은 카테리나를 경복궁과 창덕궁, 신촌과 이태원, 압구정과 테헤란로 등지로 안내했다. 카테리나는 특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대문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Y는 그런 여자친구를 데리고 동대문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녔다. 카테리나는 동대문의 노점에서 아버지에게 선물할 옷과 어머니에게 줄 액세서리를 직접 골랐다.
카테리나는 바다를 무척 보고 싶어했다. Y는 모스크바에서 바다를 보려면 800km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Y와 그의 아버지는 카테리나와 함께 제주도 방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주한 러시아 대사가 안전을 이유로 만류했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가 대안으로 결정됐다. 경호원 차량 2대와 대사관 차량 1대, 그리고 Y의 아버지가 탄 차량 등 총 4대의 차량이 안면도를 찾은 것은 6월 중순. 바닷물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카테리나와 Y의 가족은 추위도 잊고 물에 뛰어들었다.
당시 카테리나의 서울 방문을 눈치 챈 한 기업이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그에게 선물했다. Y와 카테리나는 상품권을 들고 쇼핑에 나섰다. 이틀 동안 백화점을 헤매면서 쓴 돈은 13만원. 카테리나는 “87만원을 쓰기 위해 겨울에 다시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Y는 카테리나를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사는 고모 및 이모 집으로 데려가 한국의 가정을 체험하게 했다. 카테리나는 남자친구와 한국과 독일전을 관전한 뒤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헤어진 지 6개월쯤 지난 그해 연말 Y는 크렘린궁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연말 휴가를 오스트리아 스키장에서 함께 보내자.”
정중한 초대였다. 류드밀라 여사와 카테리나, 그리고 그의 언니 마리야가 겨울 휴가 멤버. Y는 2주간 오스트리아의 한 스키장에서 카테리나 식구들과 스키를 타며 휴가를 보냈다.
Y 씨 아버지 “국제결혼 반대 안 한다”
Y와 카테리나의 사랑 이야기는 외교가에서는 잘 알려진 비밀. 그들의 사랑이 양국 간의 평화와 우호를 증진하는 계기가 된 적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2005년 9월20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정보기관이 양국 대통령 부부의 ‘대담자료’를 작성하며 Y와 카테리나의 얘기를 정리해 청와대에 보냈다. 이들을 대화 소재로 삼아 양국 정상 부부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하자는 의도였다.
이 자료를 접한 청와대 관계자가 Y의 아버지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Y는 청와대를 방문해 내용을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권양숙 여사는 “이런 일도 있었나”라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 내외가 푸틴 대통령 부부를 만나 Y와 카테리나 문제를 거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Y는 인터넷을 통해 카테리나와 만나고 있다. 학생 신분으로 만만치 않은 항공료를 감당하기도 벅차고 국제전화 요금도 버겁기 때문이다. Y는 아버지에게 몇 차례 모스크바 방문 계획을 밝히고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 모두 공부해야 할 나이다. 모든 결정은 좀더 성장한 뒤에 내릴 계획이다. 문제가 생기면 나는 괜찮지만 당사자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Y의 아버지는 “두 사람 관계를 남자와 여자로 보지 말고 친구로 봐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아들이 원한다면 결혼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Y의 어머니는 안전문제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생각한다.
Y는 조만간 귀국, 해병대에 입대할 예정이다. Y와 카테리나의 국경을 넘은 사랑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모스크바와 서울, 그리고 미국의 한 도시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깊어가는 이들의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애가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