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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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는 일시적 현상 … 70달러 유지 어려워”

‘오일 100달러…’ 저자 김재두 박사 “수요공급 원칙보다는 안보 변수로 유가 요동”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6-04-26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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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가는 일시적 현상 … 70달러 유지 어려워”
    국제유가(油價)가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4월17일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70달러 선을 돌파했다. 국내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동산 두바이유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외신(外信)은 이번 유가 폭등의 원인으로 이란 핵개발과 나이지리아 반군활동, 미국 휘발유 재고 감소 등 이른바 ‘트리플 악재(惡材)’를 들고 있다.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의 핵개발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갈등 고조, 세계 11위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정정(政情) 혼란으로 인한 생산 차질, 세계 석유소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휘발유 재고가 220만 배럴 이상 줄었다는 소식 등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유가 불안의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정확한 유가 예측이 국가경쟁력”

    그렇다면 국제유가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 충격 요인이 완화되면 유가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재두(48) 박사의 전망은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석유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지난 몇 년간 ‘에너지 안보’라는 흔치 않은 분야를 천착해온 김 박사는 얼마 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오일 100달러 시대는 오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국제유가에 대한 예측과 전망은 지금까지 수요·공급 원칙에 기반한 시장경제적 시각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물론 이런 측면은 앞으로도 유효하겠지만, 이젠 지정학적 요인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국제유가 분석에서 안보 측면에 대한 고려가 중요해졌고, 안보라는 프리즘을 통해야만 세계 석유시장의 큰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에너지 안보 자체가 패권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는 환경이 됐다.”



    -당면한 관심사는 ‘오일 100달러 시대’가 실제로 오느냐 여부다.

    “유가 추이를 결정짓는 데 재고량·기후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데, 예컨대 이란 핵문제를 그중 한 가지 변수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아직도 크다. 하지만 나는 이란 문제를 그렇게만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산업자원부와 석유공사가 만든 유가 예측 민간기구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도 그런 주장을 했다. 이란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 국면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봐야 유가의 향배를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상황’이 되면 국제유가는 당연히 올라간다. 그 ‘어떤 상황’이란 국가 간 에너지 전략이 서로 충돌하거나, 테러 등으로 페르시아해협, 말라카해협 등 핵심 지역이 마비돼 복구가 지연되는 경우 등이다. 이런 일이 한 건만 일어나도 유가는 아주 쉽게 80, 90달러 선을 넘어설 수 있다.

    “고유가는 일시적 현상 … 70달러 유지 어려워”
    하지만 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어느 국가도 ‘유가 100달러 시대’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100달러 시대가 온다고 해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길어야 2~3주 정도 될까? 이란 위기를 예로 들면, 그렇게 유가가 오르는 시기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가 아니라 미국이 군부대를 움직이는 등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터진 뒤에는 이미 리스크가 다 반영된 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되면 유가가 100달러대에 들어선다는 인식은 모두 공유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자신이 그런 상황을 초래하는 당사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포인트다. 미국이 이란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면서도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모순된 얘기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식의 지루한 공방전 속에서 고유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지금 상황의 차이는 무엇인가.

    “70년대에도 자원민족주의라는 말이 있었고, 공급 불안이라는 말도 있었다. 중동지역이 유가 불안의 주원인이고, 특히 국제유가에 미치는 이란의 영향력도 지금과 비슷하다. 다만 지금은 자원민족주의가 더 강력하고, 더 정교하게 추구되며,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주요 산유국들의 태도다. 과거 그들은 오일머니를 소비재를 사는 데 다 써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오일머니를 활용해 모든 영역에서 서방국가 수준으로 올라서겠다는 인식이 절박하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은 수입국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유가 정책을 통해 단기간에 최대한의 오일머니를 빨아들이겠다는 식의 전략은 절대 취하지 않는다.

    예컨대 유가가 60달러대에서 가격 밴드를 형성하면 오일을 대체하는 에너지가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캐나다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오일샌드라든가 독도 밑에 있다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같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은 산유국 처지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산유국들은 과거 수급조절 수단에 더해 갈등조정 등 다른 수단을 총동원해 한결 세련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가 100달러 시대가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란이나 나이지리아 사태가 수습된다고 해서 2002년의 30달러대나 2004년의 40달러 선까지 떨어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과거 유가는 기업경쟁력이나 국가재정 수지 등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됐지만, 이제는 유가 향배에 따라 세계 패권질서가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예컨대 유가가 3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러시아나 이란, 베네수엘라 등 주요 반미(反美)국가들의 영향력이 약화된다. 반미 연대의 대상으로서 카스피해 유전지대를 포함한 중앙아시아나 이란의 매력도 뚝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이들 국가의 전략적 입지는 좁아지고, 상대적으로 미국·영국의 대외정책에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반대로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대체에너지원이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3~5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 기간에 남미의 반미 연대가 상당한 틀을 잡을 수도 있고, 이란의 내부 통치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몇 년만 지나면 세계 판도가 바뀌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70, 80달러의 고유가는 산유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6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한 국가가 유가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느냐는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한두 달 앞을 내다보는 것은 시장상황을 보면서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년 앞을 내다보는 능력은 그 국가의 대외정책과 직결되는 총체적 역량이다.”

    -미국의 대외전략이 국제유가 추이에 끼치는 영향력도 상당할 텐데….

    “1992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 말기 시절 뉴욕타임스에 ‘디펜스 플래닝 가이던스(DPG·Defense Planning Guidance)’라는 비밀문서가 유출된 적이 있다. 이건 미국 안보를 책임진 최고 수뇌부의 인식을 담은 문서인데, 울포위츠 전 국방차관이 작성했다. ‘미국의 에너지 안보이익을 국가 대외정책의 제1 우선순위에 올려야 한다’ ‘미국은 국가이익을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감행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상대방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내용이 당시 굉장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때 형성된 기본 인식이 현 부시 정부에서 구체화됐다고 보면 된다.”

    -김 박사는 그동안 에너지와 안보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왔다.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이 향후 에너지 전략은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말도 있지만, 에너지는 한 국가의 자주,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프랑스의 경우 자국 에너지 수요량의 80% 이상을 독자적인 개발권을 갖고 충당한다. 일본은 30% 이상이다. 우리도 이라크 파병을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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