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품 ‘작은 기쁨들’ 앞에 서 있는 바실리 칸딘스키, 1913.
추상회화와 더불어 ‘그리다’라는 동사의 성격에 변화가 온다. 과거에 ‘그리다’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였다. 예를 들어 과거의 화가들은 인물을 그리고 정물을 그리고 풍경을 그렸다. 하지만 현대회화에서 ‘그리다’는 자동사가 된다. 추상회화는 목적어 없는 그림이다. 그림은 있는데, 그게 가리키는 대상이 없다. 제목으로 슬쩍 눈을 옮겨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종종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무제’.
아니면 재귀동사(reflexive verb)라고나 할까? 현대회화가 가리키는 게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20세기의 회화는 자신, 즉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것은 회화를 구성하는 두 요소, 형과 색에 대한 탐구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반성적(reflexive), 즉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이다. 1910년에 파울 클레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과 자연의 습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구통 속의 내용물에 대한 화가의 태도다.”
중심의 상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의 초상’, 1909~10.
물론 회화의 현대성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프란츠 마르크의 추상회화를 본 관객들은 격분하여 입장료 환불을 요구했다. 무지한 관객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제들마이어 같은 문화보수주의자는 현대회화에 일어난 ‘중심의 상실’을 한탄하며 예술가들에게 그리스 예술을 전범(典範)으로 한 ‘인간의 영원한 상’을 회복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 요구에 대해 칸딘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시대의 예술 원리를 재생시키려는 노력은 고작 해야 사산아를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사람들처럼 생활하고 느낄 수는 없다. 때문에 조각 작품을 만들면서 그리스의 원칙을 좇으려 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의 작품은 정신성이 결여된 오로지 형식의 유사성만을 따른 결과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모방은 원숭이의 광대짓과 마찬가지다.”
앙리 마티스, ‘사라 슈타인의 초상’, 1916.
칸딘스키가 외부세계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때 마침 러시아에서는 인도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지학(神智學)’이라는 정신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위대한 운동이 어둠에 휩싸여 절망하는 많은 사람의 가슴에 구원의 종소리처럼 나타나 ‘물질적 장애와 곤란’을 겪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정신적 전환”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했다.
“종교·과학·도덕 등이 (이 마지막 것은 니체의 강력한 손에 의해서) 흔들렸을 때, 그리고 외적인 지주가 몹시 흔들렸을 때, 인간은 그의 눈을 외적인 것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렸다.” 인간의 눈이 돌아갈 때 그에 앞서 화가의 눈도 돌아간다. 현대회화가 외부세계의 ‘재현’에서 벗어나 점차 예술가 내면의 ‘표현’으로 흘러간 데에는 이런 시대정신의 변화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티스와 피카소
칸딘스키가 ‘추상’이라는 생각에 도달한 계기는 러시아에서 열린 인상파 전시회였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모네가 그린 밀 짚단을 보게 된다. 인상파 특유의 빛의 효과 때문에 매우 흐릿해도 뭔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칸딘스키는 그게 밀 짚단이라는 사실을 카탈로그의 제목을 보고 비로소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순수회화의 가능성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추상으로 나아가는 길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 고대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회화의 기원은 어느 여인이 멀리 떠나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전설대로 고전회화 속에서 형태는 묘사 대상의 윤곽과 일치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대상의 윤곽선을 닮아야 할 의무에서 형(形)을 해방시켰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형태는 묘사 대상이 된 사물의 윤곽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전회화 속에서 이미지의 색은 묘사 대상의 자연색을 그대로 반복한다. 하지만 마티스는 사물의 실제 색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물감을 사용했다. 여기서 색은 대상을 재현할 의무에서 풀려나와 자유로이 유희한다. 색을 해방시킨 마티스와 형을 해방시킨 피카소. 칸딘스키는 두 화가를 순수추상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이정표로 본다. “마티스-색. 피카소-형태. 이 두 표지판은 위대한 목표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
하지만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에서도 대상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회화가 지닌 기본적인 상황 때문에 자연에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색채구도와 형태구도에서 내적인 체험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추상을 향하기 시작한 회화의 움직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칸딘스키에게서 마침내 회화는 대상성이 완전히 사라진, 그리하여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추상에 도달한다.
프란츠 마르크, ‘비 속에서’, 1912.
대상성 없는 회화가 어떻게, 내용을 갖고 재현하지 않는 회화가 어떻게, 전달을 할 수 있을까? 추상회화가 전달하는 내용은 형식과 따로 존재하지 않고 이미 형식 안에 들어 있다. 중세 장인들이 재료 자체를 상징적으로 해석했듯 현대 화가들 역시 회화의 재료, 즉 형과 색이라는 요소 속에 ‘정신적인 것’을 구현해 전달한다. “예술가들은 주로 그들의 재료에 관심을 두어 연구조사하고 있으며 이 요소들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피아노의 은유
재현하지 않는 회화가 뭔가를 전달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음악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음악은 현실을 재현하지 않으나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리며 정신적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던가. 여기서 추상회화는 음악을 닮아간다. “자연현상을 모방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예술가, 즉 내면적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는 그 같은 목표들이 음악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용이하게 달성되는가를 선망하고 있다.”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했던 칸딘스키는 회화의 효과를 피아노에 즐겨 비유한다. “색깔은 심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색깔은 피아노의 건반이요, 눈은 줄을 때리는 망치요, 심성은 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인 것이다.” 같은 비유가 형태에도 적용된다. “여기에서 ‘색채’ 대신에 ‘형태’를 넣어보면 예술가는 여기저기 건반(형태)을 누름으로써 인간의 심성을 합목적적으로 진동시키는 손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IV’, 1913.
공감각
칸딘스키는 색채가 갖는 의미와 관련해 “색깔이 눈만이 아니라 그밖의 다른 감각들에 미치는 물리적 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밝은 노란색이 레몬 맛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시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고도로 감각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공감각’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빛의 음악을 작곡했던 작곡가 스크랴빈처럼 칸딘스키 역시 공감각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스크랴빈이 음에서 색깔을 느꼈다면 칸딘스키는 색채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공감각적 능력 덕분에 회화는 음악처럼 선율적 구도와 교향악적 구도를 가질 수 있었다. 순수추상은 이렇게 귀와 눈이 하나가 되는 공감각의 체험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