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부부클리닉’.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시청률 덫에 걸려 변화도, 폐지도 꾀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 2TV의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의 덫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불러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방송 초기의 ‘사랑과 전쟁’은 부부의 문제를 현실적인 접근방식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방송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부부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20%대라는 시청률의 덫에 걸린 지금, ‘사랑과 전쟁’은 선정성과 자극적인 방송, 클리닉 없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시청자와 방송 관련 단체로부터 비판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랑과 전쟁’은 부부문제를 드라마로 보여준 뒤, 법원 조정위원들의 문제점 지적과 조언으로 끝맺는 형식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프로그램의 소재는 선정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아, 저건 내 이야기인데…”라는 시청자의 공감 대신 “이제 갈 데까지 가는군”이라는 비판만 높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사랑, 형수와 시동생이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 처제를 성폭행했다고 의심받는 형부, 가정주부의 성매매와 스와핑, 남편의 내연의 여자와 한집에 사는 부부, 총각파티의 상대가 처형, 사돈처녀에 대한 사돈총각의 몰래카메라 등 그야말로 불륜과 선정의 극치를 지나 황당, 엽기적 사건까지 여과 없이 방송된다. 시청률을 붙잡으려는 제작진의 몸부림은 자극성 강도의 확대재생산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사랑과 전쟁’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극단적이고 엽기적인 소재의 드라마만 있고, 이 프로그램의 존재 목적인 부부문제의 클리닉은 없다. 드라마가 끝난 뒤 조정위원들의 입에서 나온 조언이라고는 “4주 후에 보자”“여행을 떠나라”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등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조언으로 부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자극적인 소재를 다룰수록 심리전문가 등을 동원한 전문적인 카운슬링 기법이 동원돼야 하는데도 프로그램 방식의 변화는 전혀 없다.
‘사랑과 전쟁’의 문제점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부부문제를 다루는 전형성도 큰 문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스테레오타입의 묘사는 편견과 왜곡을 심화시키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착한 주부와 못된 시어머니의 대결 구도는 기본이다. 전업주부는 무능하고 무료한 사람의 상징이고, 남편은 폭력과 불륜의 주범이며, 시어머니·시고모·시누이, 속칭 ‘시’ 자가 들어가는 시댁식구들은 악의 화신이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의 묘사 앞에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가족 행태나 역할, 성격의 변화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듯 문제점이 수없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프로그램은 계속 방송되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제작진의 안이한 인식이 부른 결과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끼치는 해악은 시청률 지상주의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폐지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다. 폐지도 좋은 대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