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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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 구수한 한국의 맛 “하라쇼”

모스크바 한식당 현지인들에 폭발적 인기 … 유라시아 한류는 韓食이 이끌어

  •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6-04-26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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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큰 구수한 한국의 맛 “하라쇼”
    3월29일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한국의 농수산물유통공사 주최로 열린 한국음식 체험행사. 100여 명의 학생들과 교직원은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특강을 들은 뒤 한국 음식의 대표선수(?)격인 ‘카레이스키 샐러드(김치)’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양념만 버무리면 되도록 미리 준비해둔 ‘약식’ 김치 담그기였지만 한국인 요리사의 시범에 따라 생전 처음 이색적인 경험을 하는 참가자들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곧이어 시식 시간. 김치와 갈비, 불고기, 잡채, 김밥 등이 상에 올랐다. 분위기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참가자 모두 한국 음식을 그리 낯설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능숙하게 나무젓가락으로 김밥을 집던 국제법학과 1학년 나타샤 양은 “하라쇼, 오친 브쿠스나(좋다, 아주 맛있다)”라며 웃어 보였다.

    MGIMO는 러시아 외무부 산하의 명문 귀족대학이다. 원래 옛 소련 시절 외교관과 대외경제성 요원, 언론사 해외 특파원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져 특권계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통했다.

    이런 전통 때문에 요즘도 신흥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입학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해외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그래서 한두 번쯤은 한국 음식을 맛본 적이 있다. ‘한국의 맛’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도 높았다.

    청국장·삼합 즐기는 손님도



    이날 음식을 준비한 모스크바 한식당 ‘우리’의 김철수 조리실장은 “관심과 반응이 기대 밖으로 높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조리학과를 나와 호텔 한식당에서 일했던 김 실장은 우연히 지인이 모스크바에 한식당을 내는 것을 돕기 위해 러시아에 왔다. 원래는 반년 정도 머물다가 돌아가려고 했던 그는 계속 모스크바에 머물며 ‘한국음식 전도사’가 될 생각이다.

    김 실장이 일하는 오를료녹 호텔에 있는 한식당은 처음부터 현지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호텔이 교민들이 많이 사는 모스크바 남서구에 있고, 한국에서 출장 온 사람들이 많이 묵는 곳이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식당 문을 열었다. 당연히 현지인들의 입맛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짜고 매운 ‘고국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하지만 요즘 저녁시간이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식당이 붐비는데, 손님 중 절반은 현지인이다. 처음에는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찾기 시작하더니 점점 러시아 고객이 늘어났다고 한다. 심지어는 청국장과 홍어삼합 등 서양인들은 냄새도 맡기 힘든 음식을 즐기는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러시아국영철도공사에서 일하는 알렉세이 씨는 평양에서 근무할 때 한국 음식에 맛을 들였다며 삭힌 홍어 한 점을 삶은 돼지고기와 함께 묵은 김치에 싸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다.

    모스크바 시내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모두 20곳이 넘는다. 거기에 북한인과 고려인,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까지 합치면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훨씬 많다. 모스크바의 한국 교민은 겨우 3000여 명. 출장 온 사람과 관광객까지 합쳐도 한국인만을 상대로 해서는 이 많은 한식당이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한 교민은 “문을 열려고 준비 중인 한식당이 몇 곳 있는데 앞으로 10여 곳이 더 생겨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얼큰 구수한 한국의 맛 “하라쇼”

    한국야쿠르트의 도시락 컵라면을 먹는 러시아인들.

    ‘고급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 외무부 청사 인근의 ‘신라’가 대표적이다. 갈비나 불고기에 소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 1인당 100달러(약 10만원)가 금세 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오히려 한국 교민들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오일머니’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러시아 신흥 부유층에게는 인기가 높다.

    모스크바 세계무역센터 안의 ‘유정’ 역시 고급화와 현지화에 성공했다. 외국계 기업과 국제경제기구의 현지 지사와 사무소가 모여 있는 곳이라 주변에 중식당과 일식당 등 각국의 고급 레스토랑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도 유정의 인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한국 식당의 대명사는 ‘카레이스키 돔(코리언 하우스)’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알려진 ‘우래옥’이다. 1993년 모스크바에 가장 먼저 문을 연 한식당이고 규모도 가장 크다. 연회장이 있어 현지인들이 생일파티나 연말 송년파티를 이곳에서 하기도 한다.

    ‘카레이스키 샐러드’ 익숙한 음식

    서종현 우래옥 사장이 들려주는 한국 요리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만찬의 메뉴가 러시아 언론에 소개됐다. 한식이지만 궁중요리로 한국에서도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너비아니’와 삼색지단, 영양밥, 인삼김치 등이 식탁에 올랐다. 러시아 기자들은 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메뉴 내용을 물었고, 그는 러시아어로 일일이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는 것.

    한국야쿠르트의 도시락 컵라면과 오리온 초코파이는 시베리아의 오지에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히트 상품이다. 한국야쿠르트와 오리온은 현지 공장까지 세웠다. 진로 역시 진로푸드라는 현지법인을 세웠고, CJ도 식품 관련 현지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식품이 러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과거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동양적인 맛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또 국토가 넓다 보니 다양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웬만한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있는 배추는 고려인들이 주로 남부 지역에서 재배한 것이다. 비록 한국의 김치 맛과는 다르지만 ‘카레이스키 샐러드’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인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다. 요즘에도 재래시장마다 고려인들이 한국 음식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남아와 일본, 중국 등에 부는 한류는 연예인들과 드라마와 가요가 이끌고 있다. 반면 러시아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한국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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