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계획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용산 이전, 졸속 결정 아니냐”
윤 당선인은 3월 20일 “광화문으로 가면 청와대를 100% 개방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보고를 한 번 받아보니 시민에게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용산 이전 결정 배경을 밝혔다. 이어 “용산 문제는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니고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안으로 생각은 했다”고 덧붙였다. 공약 발표 35일 만에 주된 내용이 수정된 것이다.윤 당선인은 2월 13일 대통령실 개혁 구상을 밝히며 “현 청와대 구조는 왕조시대 궁궐 축소판으로 권위 의식과 업무 비효율을 초래한다”면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의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나 외교부 청사가 후보군에 올랐지만 경호 문제 등에 직면하면서 국방부 청사로 수정됐다. 광화문에 위치한 청사들은 주변에 고층 건물이 많고, 주변 지역 관리도 쉽지 않다. 국방부 청사의 경우 지하벙커 등 보안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것도 가점으로 작용했다.
당내 ‘반발 목소리’도 있었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초 국방부는 “3월 1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국방부 청사 방문 및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전제로 국방부 본관동을 비울 수 있는 계획 수립을 요청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공약 발표 엿새 전이다.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을 졸속으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당선인이 직접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공약을 발표하면서 당 내부적으로는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당선인 측 한 인사는 “용산 부지가 당초 1순위 고려 대상이 아니어서 내부에서도 정보가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 ‘용산 이전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현재는 관련 정보를 내부에서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만큼 문제되는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다양한 집회가 열려 소통을 상징하게 된 광화문과 달리 용산은 이런 경험이 적다”면서 “시민 입장에서는 소통하겠다며 용산으로 이전 계획을 밝히는 모습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한데 단순히 터만 바꿔서 되겠느냐는 의문도 드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靑 “안보 공백 우려돼”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청와대가 개방되는 순간 찬반 여론이 역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개방 첫날 긍정 여론이 대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영환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은 3월 23일 ‘주간동아’와 통화에서 “(윤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는) 5월 10일 청와대가 개방되면 분위기가 확 반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용산 이전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청와대를 들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청와대가 개방되더라도 윤 당선인은 임기 초반 임시 집무실에 머물러야 한다. 집무실 이전 예비비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인수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다. 윤 당선인 측이 3월 2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집무실 이전 비용으로 필요한 예비비 사용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청와대가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며 거부해 난관에 부딪혔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도 전날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뜻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새 정부 출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점에 국방부와 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경호처 등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무리인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윤 당선인 직속인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소속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3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과정에 안보 공백은 분명히 없다. (북한이) 그동안 수십 차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해왔음에도 이 정부는 도발을 도발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안보 운운하는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윤 당선인의 충암고 1년 선배로 유력한 초대 경호처장 후보다.
신구 권력이 강 대 강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6·1 전국동시지방선거 유불리를 두고서도 계산이 복잡하다. 김영환 특별고문은 “여권이 예산을 조속히 처리해주면 설령 이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윤 당선인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응은 민주당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지면서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 같은데 아주 악수다”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경제위기 대응 소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논란의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3월 24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현 상황이) 장기화되면 반드시 (민주당에) ‘6·1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신정부와 일부러 여러 쟁점 사안을 만드는 것 아니냐’고 직접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인수위 기간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할 △코로나19 대응 △경제 문제 대응 △인사 문제 등으로 다툼이 확산되는 것도 문제다. 문 대통령은 3월 24일 참모회의에서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될 분이다.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 나누고 혹시 참고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이 직접 판단해주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교착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윤 당선인의 판단에 문제가 있고,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린 것처럼 언급한 데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신구) 정부 간 인수인계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긴요한 순간에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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