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현모 그렇네요. 결과가 나와 있겠군요.
영대 후보작들은 좀 보셨어요?
현모 그럼요. 며칠 뒤 개봉할 것들만 빼고 다 봤죠. 최신작들 챙겨보느라 오랜만에 혼자 마스크 쓰고 영화관에도 다녀왔어요. 은근 걱정됐는데 오히려 관객이 없어서 편하게 봤어요.
영대 현모 님은 그동안 팝콘 못 먹는다는 이유로 영화관 잘 안 가셨잖아요. ㅋㅋㅋ
현모 어쩔 수 없이 음료수만 마시면서 봤습니다. ㅡ.ㅡ
영대 저도 이번에 작품상 후보들은 좀 봤어요. ‘코다’랑 ‘돈 룩 업’은 우리가 이미 입이 아프도록 얘기한 영화들이고, ‘듄’이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파워 오브 도그’도 봤네요.
현모 어떠셨어요?
영대 음… 일단 수상은 ‘파워 오브 도그’가 유력한 거 같아요. 일반 관객들 평가는 좀 엇갈리는 측면이 있지만, 평단 평이 워낙 긍정적이라서요. 아카데미 회원
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잖아요.
현모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 작품상을 수상했으니, 확률은 높겠죠? 근데 결과를 점치는 거 말고, 개인적인 감상은 어떠셨어요?
영대 다 재밌게 봤어요. 특히 ‘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서 봤죠. 원래 원작 소설도 좋아했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이 이 어려운 연출을 성공적으로 해냈더라고요. 음악도 한스 치머 특유의 꽝꽝꽝 하는 음악이 제대로 어울렸던 거 같고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임에도 카메라 워크나 안무, 연출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괜히 거장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현모 ㅎㅎ 지금 언급하신 영화들이 전부 시청 방법이 다른 거 아시죠? ‘파워 오브 도그’는 넷플릭스에서 봐야 하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봐야 하고, ‘듄’은 IPTV에서 시청할 수 있고요. 아직 상영 중인 영화는 극장 가서 봐야 하고…. 게다가 남녀 주연상 후보에 오른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아마존 오리지널이라 아마존 프라임에까지 가입했어요.
영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위력이 올해는 진짜 더 세졌네요.
현모 작품상의 경우 후보작 10편 가운데 5편이나 OTT 작품이라는 사실!
영대 어휴, 가끔은 구독료가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확 해지하기도 뭐 하고….
현모 그죠. VOD 단편으로 가끔 결제하는 비용 생각하면 신작은 1만 원이 훌쩍 넘을 때도 많아요. 또 2~3일 지나면 삭제되니까 그럴 바엔 그냥 OTT 구독료를 내는 게 나을 수도 있거든요. 플랫폼마다 꼭 봐야 하는 괜찮은 오리지널 콘텐츠들도 있고요. 이렇게나 선택지가 많은데 HBO맥스는 한국에서 언제 서비스되나 그것까지 기다리게 된다니까요.
영대 그니까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아쉽지만, 점점 추세가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현모 며칠 전에는 애플 TV+에서 새로 개봉한 드라마 ‘파친코’ 관련 행사를 진행하느라 무려 8시간에 달하는 양 전체를 정주행했거든요. 근데 진짜 거기도 완전 신세계더라고요. 애플이 콘텐츠 양은 많지 않지만 그 대신 하나하나가 전부 웰메이드 영화 같은 퀄리티라더니, 정말 영화를 8편 본 거 같았어요.
영대 오, ‘파친코’는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해서 저도 관심 가요. 그러면 애플 TV+에도 가입해야 하나. ㅎㅎㅎ
현모 솔직히 한두 편만 맛보기로 보고 가서 일해도 충분히 되는 거였는데, 무척 재미있고 다음이 궁금해서 일 마치고 집에 와 밤늦게까지 나머지를 마저 완주했다니까요. ㅋㅋㅋㅋ
영대 궁금하다.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현모 요즘엔 거의 다 온라인 비대면이라 편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만나는 거 같은 정도의 감흥은 없어요. 그렇다고 또 아예 안 만난 건 아니고 화면으로나마 직접 대화를 나누긴 한 거니까, 그냥 덤덤하다고 해야 하나. 어중간한 느낌이죠.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올해는 시상자로 참석한다. [동아DB]
현모 흐흐, 혹시라도 질문 잘못할까 봐 조심스럽긴 했죠.
영대 어찌 보면 참 신기하네요. 한국 배우들이 한국 역사를 연기했는데, 오히려 미국 제작진이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 현지에서 프로모션을 하는 중에 역으로 한국과 온라인으로 연결했다는 게.
현모 맞아요. 대사 상당 부분이 한국어고 전반적으로도 굉장히 한국적인데, 이게 글로벌 프로젝트로 탄생했다는 건 그만큼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뜻이겠죠. 특히 일본 식민 통치나 ‘자이니치’(일본에 사는 한국인)에 대한 내용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됐다는 건 대단한 일인 거 같아요.
영대 제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만 해도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학부생들 가르칠 때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특히 컨템퍼러리한 건 거의 없고 기껏해야 오래된 다큐멘터리가 다였는데, 요즘 유학하는 친구들은 아시아학이나 문화인류학 수업에 교재로 활용할 만한 설득력 있는 콘텐츠가 많아요. 얼마나 좋은 환경일지 생각할수록 부러워요.
현모 남들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저는 지금을 사는 저 자신이 부러워요. ㅋㅋㅋ
영대 ㅎㅎㅎ 그렇긴 하죠.
현모 얼마 전에는 유럽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란 거 아세요? BTS(방탄소년단)나 ‘오징어 게임’을 언급할 때는 으레 예의상 형식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누구는 ‘솔로지옥’을 밤새워 봤다는 둥, 예전엔 케이팝을 듣다가 요새는 트로트를 즐겨 듣는다는 둥 저마다 취향도, 스토리도 다양하더라고요. 어떤 이는 이탈리아어로 의사가 어쩌고 하길래 뭔 소린가 했더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자기 최애라는 얘기였어요. 먼 나라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나 패션, 정서를 그렇게나 친숙하게 접하고 있다니!
영대 한국 대중문화 저변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증거죠. 분명 처음에는 케이팝이나 좁게는 아이돌, BTS에서 시작했을 수 있지만, 점차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가지를 뻗어나가는 거죠. 우리가 누구나 다 똑같은 할리우드 영화나 빌보드 뮤지션을 좋아하지는 않듯이요.
현모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일본 영화이긴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에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한국 배우 3인방(박유림・진대연・안휘태)이 참석을 확정했다고 해요. 지난해 수상자였던 윤여정 선생님도 당연히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니까 ‘기생충’과 ‘미나리’로 이어졌던 흐름이 계속될 거 같아서 넘 기대돼요. 물론 국적을 떠나 반가운 얼굴들이 멋진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거 자체가 무척 신나는 일인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영대 ㅎㅎㅎ 1열에서 응원하면서 시청할게요.
현모 저는 그럼 오늘도 합법적으로(?) 대낮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 감상을 하고 오겠습니다. 노는 거 아니고 엄연히 일하는 거라고요!
영대 알아요, 뭐라 안 해요. ㅋㅋㅋ 그게 바로 덕업일치(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
현모 오늘은 ‘벨파스트’ 볼 건데, 어땠는지는 다음 주에 말씀드릴게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