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오른쪽)이 11월16일 슬로바키아 질리나시에 있는 기아차 유럽 공장을
가장 최근의 반가운 소식은 미국 유력 소비자 잡지 ‘컨슈머 리포트’의 자동차 소비자 품질 신뢰도 발표다. ‘컨슈머 리포트’는 11월17일 기아차의 그랜드카니발(수출명 세도나), 오피러스(수출명 아만띠), 쏘렌토 등을 ‘추천 차종’으로 선정했다. 특히 그랜드카니발은 현대차의 쏘나타와 그랜저, 앙트라지(미국 수출용 미니밴)와 함께 한국차 최초로 ‘최우수 추천 차종’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 최대의 소비자 연맹이 발간하는 ‘컨슈머 리포트’는 매년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300여 종의 차량에 대한 성능, 신뢰성, 안전도 등을 평가해 우수한 차종을 1차적으로 ‘추천 차종’으로, 추천 차종 중 안전도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차종을 ‘최우수 차종’으로 각각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컨슈머 리포트’는 지난해엔 기아차 차종 중에서 쏘렌토만을 추천 차종으로 선정했다.
그랜드카니발, 한국차 최초로 ‘최우수 추천차’
이에 앞서 10월9일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 스트래티직 비전(Strategic Vision)사의 종합가치지수(TVI) 평가 발표에서는 로체(수출명 옵티마)와 그랜드카니발이 각각 중형차와 미니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스트래티직 비전사가 199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TVI 평가는 10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제품의 신뢰성, 내구성, 중고차 가치 등 차량 전반에 대한 종합평가로, 미국 고객들의 차량 구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로체와 그랜드카니발은 미국의 충돌 테스트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으며 품질을 인정받아왔다. 그랜드카니발은 올 3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한 충돌 테스트에서 4개 부문 모두 안전도 만점인 별다섯(★★★★★)을 획득했다. 또 4월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정면, 후면, 측면 충돌 안전도 평가 모두 최고 등급인 ‘우수(Good)’ 평가를 받아 미니밴 가운데 최초로 전 부문 우수 평가를 받았다. 로체 역시 8월 IIHS가 발표한 정면, 후면 충돌 테스트 결과에서 최고 등급인 ‘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에 앞서 6월엔 기아차의 프라이드가 미국 JD파워사의 2006년 신차품질 조사(IQS) 소형차 부문에서 경쟁 차인 도요타의 싸이언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기아차가 IQS에서 1위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아차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아차 전체의 IQS는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는데 프라이드가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으니 임직원이 감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IQS는 JD파워사가 신차를 구입한 지 석 달이 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엔진, 변속기, 승차감, 디자인 등 217개 항목에 대한 초기 품질 만족도를 자세히 조사해 100대당 불만 건수를 셈한 수치. 따라서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일시 | 차종 | 평가기관 | 분야 | 수상 내용 |
2006년 10월 | 로체(수출명:옵티마) 그랜드카니발(수출명:세도나) |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사 | 2006 종합가치지수 평가 | 신차 구입 후 90일 이상 지난 소비자 6만4000명 대상, 차량 종합평가. 로체는 중형차 분야, 그랜드카니발은 미니밴 분야 최고점수 획득 |
2006년 8월 | 로체 |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 | 충돌 테스트 | 정면, 후면 충돌 테스트 우수(Good) 평가 동급 21개 차종 중에서 4개 차종만 둘 다 최고등급 획득 |
2006년 6월 | 프라이드(수출명:리오) | JD파워사 | 신차품질 조사 | 소형차 부문 1위 |
2006년 4월 | 그랜드카니발 | IHS | 충돌 테스트 | 정면충돌 시 운전자 및 동승자, 측면충돌 시 앞·뒷좌석의 안전도 측정 4개 부문 모두 최고등급인 별다섯 획득 |
2006년 3월 | 그랜드카니발 |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 충돌 테스트 | 정면충돌 시 운전자 및 동승자, 측면충돌 시 앞·뒷좌석의 안전도 측정 4개 부문 모두 최고등급인 별다섯 획득 |
2006년 1월 | 오피러스(수출명:아만띠) 쎄라토(수출명:스펙트라) |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사 | 2005 소비자 기쁨 지수 | 오피러스는 대형차 부문, 쎄라토는 소형차 부문에서 2005 가장 기쁨 주는 모델(Most Delightful Vehicles of 2005)로 선정 |
2005년 11월 | 스포티지 | 미국 북서부자동차기자협회 | 머드페스트 컴페티션 (Mudfest Competition) | SUV 종합 성능 테스트에서 '2만5000달러 이하 최고 SUV'로 선정 (Best In Class under 000) |
2005년 10월 | 오피러스 |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사 | 2005 종합가치지수 평가 | 신차 구입 후 90일 이상 지난 소비자 6만9000명 대상, 차량 종합평가 대형차 부문 1위 차지 |
2005년 9월 | 오피러스 스포티지 | JD파워사 | 2005 자동차 품질 및 디자인 만족도 조사 | 신차 출고 후 90일 이내의 소비자 11만5000명 대상 스포티지는 소평 SUV 부문 1위, 오피러스는 중형차 부문 1위 차지 |
2005년 1월 | 오피러스 |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사 | 2004 소비자 기쁨 지수 | 미국 중형차 부문에서 2004 가장 기쁨 주는 모델(Most Delightful Vehicles of 2005)선정 |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의지 ‘결실’
기아차의 이런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현대차에 인수되기 전의 기아차는 전반적으로 품질 마인드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아차 관계자는 “공장 라인의 근로자들은 회사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회사 사정과 노조 요구사항은 별개’라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노사가 한마음으로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기아차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놀라운 변신에 성공한 것일까.
기아자동차 경기 화성시험장에서 시속 64km로 정면충돌 시험을 하는 로체(수출명 옵티마) 2006년형.
정 회장의 ‘품질 경영’ 의지가 말단 근로자에게까지 전달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기아차 관계자는 “연구소 엔지니어나 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품질’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 개념인데, 정 회장을 비롯해 최고 경영진이 품질을 강조하자 한 번 체크할 것도 두 번 이상 점검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방침도 주효했다. 대체로 자동차에서 품질 문제가 생기면 회사 내부에선 ‘핑퐁 게임’을 한다. 연구소 쪽에서는 개발 과정엔 문제가 없었는데 공장의 조립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공장에선 개발 과정의 문제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그런데 품질회의에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판정하자 품질 관련 부문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이는 과거 김선홍 회장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기아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선홍 회장 시절 양산 단계 전의 종합 품평회에서 A라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개발 부서에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엔 개발 일정이 촉박하고 예산이 부족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다음 단계에서 확실히 고치겠다’고 얘기하면 대체로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도 여전히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곤 했으니 품질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품질 안 되면 출시도 늦춘다
현대차가 인수한 이후엔 그런 식의 대응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출시 시기를 늦추더라도 품질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 됐다. 2004년 예정보다 출시 시기를 2주 늦춘 스포티지가 대표적이다. 안정된 품질을 바탕으로 새로 선보인 스포티지는 극심한 내수불황 속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2005년 출시된 프라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기아차는 과거 국민차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품질에 완벽을 기하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신차 발표 직전까지 품질 향상에 매달렸다. 그 결과 출시 이후 지금까지 소형차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기아차는 해외에 대규모 품질조사단도 파견했다. 2004년 8월부터 △공장부분 제조부서 △생산기획 센터 △품질사업부 등 현장 과·부장급 간부사원 205명을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파견, 현장 품질조사를 시켰다. 이는 “생산현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직접 세계 고객들을 찾아가 우리 차의 품질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듣고 요구사항은 무엇인지, 또 세계 명차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을 정확히 파악해 가슴에 새겨볼 수 있도록 하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정 회장도 솔선수범했다. 현대·기아차 임원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외부 인사를 거의 만나지 않는데, 이 역시 ‘품질 경영’에 대한 정 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 정치권 인사 등 외부 인사를 만나다 보면 인사청탁과 납품업체 청탁에 휘둘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품질 혁신은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게 정 회장의 소신이라는 설명이다.
기아차는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2010년엔 오피러스, 쏘렌토, 쎄라토 등 주력 차종의 IQS를 세계 1위 메이커와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품질 경영’ 효과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임직원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