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5일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자유주의연대 창립 2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서 신지호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라이트 조직 내부에서 이상한 현상도 감지된다. 파문을 진화하기 위해 공동 대처하기보다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서로 다른 조직인데, 뉴라이트라는 이름 때문에 싸잡아서 비난받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로 표출되고 있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은 뉴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으면 비슷한 성향의 조직으로 인식한다. 뉴라이트가 보수우파 진영의 상징적인 이름인 데다 역사도 짧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뉴라이트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길게 잡아도 2년 정도에 불과하다.
‘정권교체 vs 새 정권창출’ 목표 엇갈리기도
하지만 뉴라이트 진영은 이미 여러 조직들로 다원화돼 있다. 조직 구성원뿐 아니라 이념과 철학, 조직 운영방식, 지향점도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은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목표로 내건 반면, 어떤 조직은 ‘새로운 정권창출’을 꿈꾸고 있다. 교체와 창출은 엄연히 다르다. 교체는 현 정치구도에서의 권력 이동을 뜻하지만 창출은 새로운 정치조직의 권력 장악을 의미하기 때문. 또 어떤 조직은 대중조직화에 사활을 건 반면, 어떤 조직은 새로운 이념과 철학을 체계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진영은 어떤 조직들이 어떤 구도로 짜여져 있는 것일까.
뉴라이트 관련 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뉴라이트 진영은 현재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표1 참조).
자유주의연대 창립 2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 참여한 손학규(왼쪽에서 네 번째) 전 경기지사와 이명박(오른쪽에서 세 번째) 전 서울시장.
이와 별도의 연대조직으로는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꼽힌다. 이 조직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네트워크에 소속된 조직들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시민회의 측은 자신이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의 설명이다.
“시민회의는 중도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외부에서는 뉴라이트 진영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큰 방향에서는 유사한 부분이 있고 활동하는 교수들이 겹치기도 하지만, 정치색이 짙은 뉴라이트와는 다르다. 비정부기구(NGO)의 성격이 강한 조직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 정예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운동조직이라는 것. 지도부를 이루는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과 류근일 자유주의연대 상임고문, 박효종 교과서포럼 상임대표(서울대 교수), 김영호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성신여대 교수), 김종석 뉴라이트재단 이사(홍익대 교수), 윤창현 뉴라이트재단 이사(서울시립대 교수),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등이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다. 신지호 뉴라이트네트워크 및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경기고와 연세대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학파 출신.
이처럼 엘리트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표2 참조). 교과서포럼 운영위원 13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이 동시에 뉴라이트싱크넷 상임집행위원을 맡고 있을 정도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네트워크와 대척점에 놓인 또 다른 한 축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자유주의연대에 잠시 몸담았던 김진홍 목사(두레교회)가 지난해 초 의견 차이로 떨어져 나온 뒤 비슷한 시기에 태동한 ‘뉴라이트전국연대’를 흡수 통합해 그해 11월7일 창립한 조직이다.
.류근일 | 뉴라이트네트워크 고문, 자유주의연대 상임고문,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고문, 북한민주화포럼 공동대표 |
.안병직 |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뉴라이트네트워크 고문, 교과서포럼 고문 |
.신지호 | 뉴라이트네트워크 및 자유주의연대 대표, 뉴라이트재단 이사, 교과서포럼 운영위원 |
.김종석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뉴라이트재단 이사, 쥬라이트싱크넷 상임위원, 교과서포럼 운영위원(선진화국민회의 싱크탱크) |
.박효종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과거사진상규명모니터링단 단장,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및 운영위원 |
.김영호 |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 뉴라이트재단 이사, 교과서포럼 운영위원 |
.조전혁 |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뉴라이트싱크넷 상임위원(선진화국민회의 싱크탱크) |
*( )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연대조직 |
한 사람이 여러 개 조직에 몸담아
이 조직의 특징은 전국적인 대중조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네트워크와는 정반대다. 전국연합 측은 교사연합과 대학연합, 청년연합 등 하부 직능조직과 전국 지역단위조직, 4개 해외조직 등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1만 명의 회원을 확보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전국연합과 연대를 맺고 있는 조직은 올해 4월과 9월에 잇따라 결성된 ‘선진화국민회의’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다. 선진화국민회의는 서경석 목사가 사무총장을 맡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선진화재단은 서울대 박세일 교수가 이사장을 맡았다.
전국연합, 선진화국민회의, 선진화재단은 각기 임무가 다르다. 전국연합은 보수우파 세력을 규합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선진화국민회의는 중도세력 규합에 집중하고 있다.
서 목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에서는 뉴라이트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운동방식이 선진화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뉴라이트와 구별된다. 우리는 특히 뉴라이트에 참여하기 곤란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화재단은 이들 조직에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일종의 싱크탱크다. 이들 간의 연대는 이석연 변호사가 세 조직의 지도부에 모두 몸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뉴라이트의 두 축인 네트워크와 전국연합 간의 관계다. 두 축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이념부터가 미묘하게 다르다. 네트워크는 ‘자유주의’를, 전국연합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것.
운동방식도 다르다. 네트워크는 뉴라이트 운동에서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전국연합은 노무현 정권 타도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천명하는 등 강한 정치색을 띠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한나라당이 수구보수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네트워크와는 달리, 전국연합은 각종 행사에 한나라당 정치인들을 초대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연합 측의 김진홍 목사와 네트워크 쪽의 신지호 대표의 관계가 결별과정에서 다소 불편해졌고, 신 대표와 서경석 목사 간에 쌓인 개인적인 앙금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두 축 간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이다.
비근한 예가 12월5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자유주의연대 후원의 밤’ 행사. 이 자리에서 신 대표는 우회적으로 전국연합을 비판했다. “뉴라이트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커지자 이 흐름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칙 없는 세 불리기와 조급한 정치권 줄대기 등 뉴라이트 초기 정신에서 일탈한 행위가 나오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신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연합에 대해 더욱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전국연합은 출발부터가 잘못됐다. 한나라당이나 자민련 간판을 달고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들, 공천을 못 받은 이들 등 정치 유랑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만든 조직이다. 조직 만들기와 세 불리기에만 전념했다. 뉴라이트의 정신이나 철학은 거의 없다. 회원 수도 믿을 수 없다. 11만명이나 되는 조직의 홈페이지가 회원 수 200명 정도인 ‘뉴라이트닷컴’보다 페이지뷰가 적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뉴라이트 진영, 국민의 눈은 생각 안 할까
신 대표는 또한 “올해 일정 시점부터 전국연합이 한나라당과 밀착해 정치전략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뉴라이트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이지 대통령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는 그 자체가 수단은 될 수 있지만 목표는 아니라는 것. 그는 이어 “이론이 없는 운동은 지속성이 없다.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전국연합은 한나라당과 뭐가 다른가. 대선이 끝나면 없어질 조직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목사는 이에 대해 네트워크 진영에 속한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파문을 거론하면서 역공을 가했다.
“네트워크에 속한 단체가 문제를 일으켰는데도 10만 회원을 거느린 전국연합이 함께 욕을 먹는 상황이 됐다. 서로 충고와 협의, 연대 등을 통해 불의의 실수를 막아야 하는데 너무 차별화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 목사는 안병직 교수의 정신대 관련 발언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안 교수의 평소 지론에 대해서도 “정신대를 강제 동원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 수많은 대한민국 여성들이 끌려가 희생을 당한 살아 있는 흔적이 있다. 자료가 없다고 일제가 토지를 수탈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본 강점기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가 없었다면 근대화가 되지 못했다는 의미인가. 학자적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뉴라이트 진영의 입장은 아니다. 그런 학자가 왜 뉴라이트 단체에 나와서 물을 흐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양측의 감정적인 골은 어느 정도일까. 신 대표의 말이다.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재단과는 생각하는 것이 서로 비슷해 협력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서 목사의 선진화국민회의와는 노선도 문제지만 표리부동한 자세와 개인적으로 밝힐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가 어려울 것 같다. 김 목사 측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반면 서 목사는 신 대표에 대해 “그쪽과는 상종도 안 한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90년대 초반 서 목사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 시절 신 대표는 그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친분관계가 있던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목사는 신 대표에 대한 언급 자체를 에둘러 피했다. 다만 “어차피 소중한 뉴라이트 진영이니까, 앞으로 이해를 시켜서 뉴라이트 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지붕 아래 두 쪽으로 갈라진 뉴라이트, 이들이 다시 뭉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들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때 국민이 뉴라이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은 뉴라이트 진영이 애초에 내세웠던 순수한 의도조차 의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