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쉴레인
14세기 말 회화에서는 3차원의 원근법이 새롭게 나타났다. 음악 분야에서도 3차원적인 청각의 기하학이 시작됐다. 화성(和聲), 즉 수평선과 수직선의 연결로 이어진 대위법(counterpoint)이 바로 그것. 수직과 수평의 구조는 미술, 음악에서뿐 아니라 그래프를 널리 쓰기 시작한 물리학적 좌표의 사용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문학에서는 단일하고 개별적인 시점이라는 관념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림에서 문자가 사라진 시기는 가사가 사라지고 대신 악기들로만 이루어진 음악이 나타난 시기와 일치한다. 또 인쇄술의 등장은 문자나 지식에 대한 종교적 숭배를 약화시키고 각각 개별적인 매체에 대한 천착과 분석을 심화시켰다. 단일한 음조(tonality)를 기본으로 하는 음악은 이른바 연속적 기초(baso continuo)라는 개념 위에서 개별적 소리들이 조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솔로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한 사람이 가장 많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코드(clavichord)와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구인 캔버스 및 이젤이 이 시기에 동시에 발명됐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테의 ‘신곡’은 바로 이 시기에 쓰인 가장 개별적인 시점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처럼 음악과 미술, 과학과 문학뿐 아니라 대다수의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노력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깊이 있는 형식으로 구축해오고 있다. 19,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확실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잠재적 패러다임이 형성돼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의 예술형식과 내용을 결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