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상실감’
예술가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에 우선하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감각이란 절대적인 존재 근거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감각의 차이를 예술적 스타일의 문제를 통해서 확인하곤 한다.
소조각회 작가들의 ‘일기 다시 읽기’는 갖가지 스타일로 가득 차 있다. 절반이 넘는 작가들이 선택한 방법은 인체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형상을 빌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작업들이다. 이 경우, 특히 스타일의 문제가 감각의 차이를 주도한다. 인체 표현작업들을 몇 가지로 묶어서 읽어보자면 심플한 인체 표현과 일러스트풍의 인체, 사실적인 묘사를 강조하는 경우와 격정적인 감성 표현에 무게를 두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인체를 다루지 않은 경우다. 일부 작가들은 인체를 다루되 특정 부분만을 결합하여 다른 구조체를 만들거나 사물 이미지와 결합하기도 한다.
세 번째 부류는 개념적 오브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업 경향들이다. 이 경우 레디메이드 설치와 더불어 조형 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삶의 길이만큼 켜켜이 쌓인 일기들은 삶의 좌표를 점검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이란 그렇게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바짝 붙어 있다. 그것은 과거면서도 현실을 규정하는 강력한 실재, 리얼리티다. 우리는 그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순간, 삶을 되짚어보면서 과거를 생각함으로써 다시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을 집약한 일기의 실체는 종이 위에 남겨진 문자언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자로 된 일기를 시각언어로 재해석해보는 일,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집약한 일기를 다시 읽고 그 안에서 내러티브를 발견하여 이미지로 전환해보는 작업이며, 자신에게 일기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에 대한 시각언어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 ‘일기 다시 읽기’는 일기에 대한 일기, 즉 메타 일기다. 예술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 그 이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9월12일까지, 모란갤러리, 02-737-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