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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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형상 빌려 과거 들여다보기

  • 김준기 미술평론가

    입력2006-09-13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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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형상 빌려 과거 들여다보기

    김병철, ‘상실감’

    아주 가끔 옛날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가 하면, 과거를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전이시키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삶의 총체성을 찾아보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에 우선하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감각이란 절대적인 존재 근거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감각의 차이를 예술적 스타일의 문제를 통해서 확인하곤 한다.

    소조각회 작가들의 ‘일기 다시 읽기’는 갖가지 스타일로 가득 차 있다. 절반이 넘는 작가들이 선택한 방법은 인체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형상을 빌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작업들이다. 이 경우, 특히 스타일의 문제가 감각의 차이를 주도한다. 인체 표현작업들을 몇 가지로 묶어서 읽어보자면 심플한 인체 표현과 일러스트풍의 인체, 사실적인 묘사를 강조하는 경우와 격정적인 감성 표현에 무게를 두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인체를 다루지 않은 경우다. 일부 작가들은 인체를 다루되 특정 부분만을 결합하여 다른 구조체를 만들거나 사물 이미지와 결합하기도 한다.

    세 번째 부류는 개념적 오브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업 경향들이다. 이 경우 레디메이드 설치와 더불어 조형 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삶의 길이만큼 켜켜이 쌓인 일기들은 삶의 좌표를 점검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이란 그렇게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바짝 붙어 있다. 그것은 과거면서도 현실을 규정하는 강력한 실재, 리얼리티다. 우리는 그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순간, 삶을 되짚어보면서 과거를 생각함으로써 다시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을 집약한 일기의 실체는 종이 위에 남겨진 문자언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자로 된 일기를 시각언어로 재해석해보는 일,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집약한 일기를 다시 읽고 그 안에서 내러티브를 발견하여 이미지로 전환해보는 작업이며, 자신에게 일기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에 대한 시각언어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 ‘일기 다시 읽기’는 일기에 대한 일기, 즉 메타 일기다. 예술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 그 이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9월12일까지, 모란갤러리, 02-737-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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