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게더’였다. 아이스크림이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먹거리임을 알려준 것이. 한겨울 벽난로 옆에서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텔레비전 광고를 중년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송창식이 부른 “온 가족이 함께~”로 시작하는 투게더 CM송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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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로빈’의 아이스크림
우유 대신 물 넣어 제조 “이렇게 개운할 수가”
두 해 전 그 여름, 나는 중년의 몸으로 젊음이 넘치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현란한 색상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누볐다. 그 거리에서 내 몸이 생경한 것은 세월 탓이라 여기면 그만이었으나, 당최 그놈의 아이스크림 맛에 적응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맛칼럼니스트로서 장수하려면 입맛의 세대차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거늘. 어찌나 달던지 두어 숟갈에 혀 천장이 간질간질해질 정도였다. 또 향신료 때문에 한 종류를 먹고 나면 다른 아이스크림 맛을 도저히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 거리에서 아이스케이크 장수를 만났다면 달려가 뽀뽀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최근 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쑥스러울 정도로 나를 반겼다. “선생님, 요즘 저 ‘닥터 로빈’이라는 다이어트 음식 전문점 컨설팅하고 있어요. 오셔서 한번 맛보세요.” 음식에 대한 특출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무슨 ‘장난’을 하나 해서 바로 달려갔다.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가장 큰 건물 1층의 식당으로, 귀뚜라미 보일러 본사 건물이었다. 회사 ‘귀뚜라미’가 ‘닥터 로빈’이란 브랜드로 외식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보일러 회사가 외식사업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한국 외식산업도 꽤 파이가 커져 이제 큰 자본이 뛰어들 만한 사업거리가 되었구나 싶어 한편으론 반가웠다.
다이어트 음식점답게 별별 음식이 다 있었다. 식욕을 억제하는 커피, 대체감미료를 넣은 케이크 같은 것들이었는데, 단 음식을 워낙 싫어하는 내 입에는 딱 좋았다. 게다가 열량을 대폭 줄인 음식이라고 하니 배가 터지게 먹으면서도 심리적 압박감이 덜했다(요즘 배가 나와 음식량을 줄이는 중이다).
음식 자랑에 열변을 토하던 지인에게 “다 좋다고 하지 말고, 딱 하나 내세울 만한 것 있으면 말해봐” 했더니 망설임 없이 “아이스크림!”이란다. “물 베이스 아이스크림 들어보셨어요? 아이스크림은 공기의 예술이라잖아요. 지방을 치대 자잘한 공기방울을 집어넣는 게 아이스크림 제조의 포인트죠. 그게 대부분 유지방인데, 저희는 우유 대신 물을 넣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요. 살 안 찌는 대체감미료도 넣고요.” 에이, 그렇게 해서 맛이 날까 싶었는데 이것저것 퍼 날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개운할 수가 있나?!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으면서 천연 재료의 향이 입 안에서 잠시 퍼지더니 마지막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여기 사장님(‘귀뚜라미’의 따님이라고 들었다)이 매일 아침 직접 만들어요. 판에 치대면 더 쫄깃해지는데 다음엔 일찍 와서 더 다양하게 맛보세요.” 두 해 전 압구정동에서 내 입에 맞는 아이스크림이 이젠 없다며 투정한 뒤 아이스크림을 끊었는데, 여기 아이스크림이라면 가끔 맛 보러 다닐 만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