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땐 아이스크림이라는 말도 없었다. 막대기에 깡깡 얼린 찝찔한 팥물의 아이스케이크도 참 귀했다. 여름밤 “아이스께끼~” 하고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달콤했던지…. “이번 딱 한 번만”이라며 엄마랑 손가락을 건 뒤 10원짜리 종이돈 들고 대문 박차고 나가면서 외쳤던 “아이스께끼 아저씨~.”
‘투게더’였다. 아이스크림이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먹거리임을 알려준 것이. 한겨울 벽난로 옆에서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텔레비전 광고를 중년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송창식이 부른 “온 가족이 함께~”로 시작하는 투게더 CM송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해 전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직수입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 아이스크림 시장을 엿보게 됐다. 구멍가게 아이스크림은 초딩용이고, 중딩 이상은 30여 가지 다양한 아이스크림이 진열되어 있는 전문점을 애용했다. 대딩이나 직딩은 이탈리아나 미국에서 수입된 고급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이 자신들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가면 온갖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만날 수 있다. 맛보다는 폼,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 액세서리 같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청춘들의 현란한 옷차림과 아이스크림의 색깔이 어찌나 똑떨어지던지. 최근 스타벅스가 여성의 허영심을 자극해 장사한다며 말이 많은데, 브랜드 아이스크림 소비 행태도 자세히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유 대신 물 넣어 제조 “이렇게 개운할 수가”
두 해 전 그 여름, 나는 중년의 몸으로 젊음이 넘치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현란한 색상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누볐다. 그 거리에서 내 몸이 생경한 것은 세월 탓이라 여기면 그만이었으나, 당최 그놈의 아이스크림 맛에 적응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맛칼럼니스트로서 장수하려면 입맛의 세대차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거늘. 어찌나 달던지 두어 숟갈에 혀 천장이 간질간질해질 정도였다. 또 향신료 때문에 한 종류를 먹고 나면 다른 아이스크림 맛을 도저히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 거리에서 아이스케이크 장수를 만났다면 달려가 뽀뽀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최근 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쑥스러울 정도로 나를 반겼다. “선생님, 요즘 저 ‘닥터 로빈’이라는 다이어트 음식 전문점 컨설팅하고 있어요. 오셔서 한번 맛보세요.” 음식에 대한 특출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무슨 ‘장난’을 하나 해서 바로 달려갔다.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가장 큰 건물 1층의 식당으로, 귀뚜라미 보일러 본사 건물이었다. 회사 ‘귀뚜라미’가 ‘닥터 로빈’이란 브랜드로 외식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보일러 회사가 외식사업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한국 외식산업도 꽤 파이가 커져 이제 큰 자본이 뛰어들 만한 사업거리가 되었구나 싶어 한편으론 반가웠다.
다이어트 음식점답게 별별 음식이 다 있었다. 식욕을 억제하는 커피, 대체감미료를 넣은 케이크 같은 것들이었는데, 단 음식을 워낙 싫어하는 내 입에는 딱 좋았다. 게다가 열량을 대폭 줄인 음식이라고 하니 배가 터지게 먹으면서도 심리적 압박감이 덜했다(요즘 배가 나와 음식량을 줄이는 중이다).
음식 자랑에 열변을 토하던 지인에게 “다 좋다고 하지 말고, 딱 하나 내세울 만한 것 있으면 말해봐” 했더니 망설임 없이 “아이스크림!”이란다. “물 베이스 아이스크림 들어보셨어요? 아이스크림은 공기의 예술이라잖아요. 지방을 치대 자잘한 공기방울을 집어넣는 게 아이스크림 제조의 포인트죠. 그게 대부분 유지방인데, 저희는 우유 대신 물을 넣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요. 살 안 찌는 대체감미료도 넣고요.” 에이, 그렇게 해서 맛이 날까 싶었는데 이것저것 퍼 날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개운할 수가 있나?!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으면서 천연 재료의 향이 입 안에서 잠시 퍼지더니 마지막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여기 사장님(‘귀뚜라미’의 따님이라고 들었다)이 매일 아침 직접 만들어요. 판에 치대면 더 쫄깃해지는데 다음엔 일찍 와서 더 다양하게 맛보세요.” 두 해 전 압구정동에서 내 입에 맞는 아이스크림이 이젠 없다며 투정한 뒤 아이스크림을 끊었는데, 여기 아이스크림이라면 가끔 맛 보러 다닐 만하지 싶다.
‘투게더’였다. 아이스크림이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먹거리임을 알려준 것이. 한겨울 벽난로 옆에서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텔레비전 광고를 중년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송창식이 부른 “온 가족이 함께~”로 시작하는 투게더 CM송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닥터 로빈’의 아이스크림
우유 대신 물 넣어 제조 “이렇게 개운할 수가”
두 해 전 그 여름, 나는 중년의 몸으로 젊음이 넘치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현란한 색상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누볐다. 그 거리에서 내 몸이 생경한 것은 세월 탓이라 여기면 그만이었으나, 당최 그놈의 아이스크림 맛에 적응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맛칼럼니스트로서 장수하려면 입맛의 세대차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거늘. 어찌나 달던지 두어 숟갈에 혀 천장이 간질간질해질 정도였다. 또 향신료 때문에 한 종류를 먹고 나면 다른 아이스크림 맛을 도저히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 거리에서 아이스케이크 장수를 만났다면 달려가 뽀뽀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최근 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쑥스러울 정도로 나를 반겼다. “선생님, 요즘 저 ‘닥터 로빈’이라는 다이어트 음식 전문점 컨설팅하고 있어요. 오셔서 한번 맛보세요.” 음식에 대한 특출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무슨 ‘장난’을 하나 해서 바로 달려갔다.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가장 큰 건물 1층의 식당으로, 귀뚜라미 보일러 본사 건물이었다. 회사 ‘귀뚜라미’가 ‘닥터 로빈’이란 브랜드로 외식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보일러 회사가 외식사업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한국 외식산업도 꽤 파이가 커져 이제 큰 자본이 뛰어들 만한 사업거리가 되었구나 싶어 한편으론 반가웠다.
다이어트 음식점답게 별별 음식이 다 있었다. 식욕을 억제하는 커피, 대체감미료를 넣은 케이크 같은 것들이었는데, 단 음식을 워낙 싫어하는 내 입에는 딱 좋았다. 게다가 열량을 대폭 줄인 음식이라고 하니 배가 터지게 먹으면서도 심리적 압박감이 덜했다(요즘 배가 나와 음식량을 줄이는 중이다).
음식 자랑에 열변을 토하던 지인에게 “다 좋다고 하지 말고, 딱 하나 내세울 만한 것 있으면 말해봐” 했더니 망설임 없이 “아이스크림!”이란다. “물 베이스 아이스크림 들어보셨어요? 아이스크림은 공기의 예술이라잖아요. 지방을 치대 자잘한 공기방울을 집어넣는 게 아이스크림 제조의 포인트죠. 그게 대부분 유지방인데, 저희는 우유 대신 물을 넣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요. 살 안 찌는 대체감미료도 넣고요.” 에이, 그렇게 해서 맛이 날까 싶었는데 이것저것 퍼 날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개운할 수가 있나?!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으면서 천연 재료의 향이 입 안에서 잠시 퍼지더니 마지막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여기 사장님(‘귀뚜라미’의 따님이라고 들었다)이 매일 아침 직접 만들어요. 판에 치대면 더 쫄깃해지는데 다음엔 일찍 와서 더 다양하게 맛보세요.” 두 해 전 압구정동에서 내 입에 맞는 아이스크림이 이젠 없다며 투정한 뒤 아이스크림을 끊었는데, 여기 아이스크림이라면 가끔 맛 보러 다닐 만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