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인문학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들은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인문학 전공 대학원들도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가 하면, 인문학 서적 출판시장의 퇴조 현상이 두드러졌다. 과학기술 문명을 주도하는 자연과학의 발전과는 달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는 곧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 삶에 대한 성찰, 새로운 윤리 척도의 부재를 초래했고, 그 결과 전 지구적인 생태파괴, 생명 존엄성을 경시한 생명체 조작·복제 시도, 빈부 갈등의 심화 등 비(非)인간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인문학 위기 담론들이 지적하는 위기의 내용들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영화로 논술을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랴 싶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준비하는 논술고사의 공통된 주제를 살펴보라. 인간과 환경, 대중문화, 개인과 사회, 법과 정의,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노동과 인간소외, 자아 정체성 등 어느 것 하나 인간의 삶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충실하게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보다 인문정신이 충만한 학생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또한 대학은 더 나은 인간의 삶과 인간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한다는 공통의 목표로 학문을 닦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3년 연세대 수시 논술고사처럼 인문정신을 묻는 문항이 출제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난달 치러진 경희대 2007학년도 수시 1학기 논술 문제도 다르지 않다.
인문학 위기 또는 인문정신을 논하는 데 영화만큼 유용한 소재도 드물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역사, 신화를 담은 문화 텍스트다. 영화는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이미지로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는데, 이 이야기는 물론 ‘인간의 이야기’다. 문학이 문자를 통해 인간의 삶과 가치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영화는 그것을 영상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문학 텍스트의 이동 또는 확장으로 보는 문화 연구의 방법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는다. 영화 시나리오가 문학의 한 장르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학생들과 무관할 수 없는 인문학의 위기를 영화로 풀어보자.
과연 인문학 위기인가
인문학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밝히기 위한 반성적인 지적 활동을 바탕으로 인간 정신의 객관적인 산물을 연구하여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치를 추구하고,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인간 정신의 객관적인 산물’ 중 대표적인 것이 문학·역사·철학 등으로, 흔히 인문학을 말할 때 떠올리는 학문 영역들이다. 문학은 수용자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국면을 체험하게 하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문학이 개인의 실존적 차원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민족·국가 등 집단적 차원의 삶을 통시적으로 표현한다. 역사를 통해 인간은 개인의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성찰하고,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인간적 가치가 구현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한편 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정수(精髓)로서 가장 철저한 비판정신의 소산이다. 인간은 철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명징한 이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람직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 애정이라는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경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라는 사회체제의 변화다. 시장성이 없는 인문학은 대학에서 퇴출의 대상이 되고, 수요가 없는 인문서적들은 ‘폐지(廢紙)’로 전락한다. 한편 외출하는 학생들의 주머니 속에는 포켓북(pocket book)이 아닌 최신 DMB폰이 들어 있고, 집에서는 독서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접속해 가상공간을 유영(遊泳)한다.
그러나 이런 인문학 위기의 실체에 대해서는 좀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위에 언급한 인문학 위기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런 현실이 과연 ‘인문학의 위기’인지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문정신의 위기’인지는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인문학이 경제적 이유로 퇴출당하는 가운데 인문학을 기초로 한 서적의 출판과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비근한 예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등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금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인디라이터(indie writer)라는 ‘독립 필자’(주간동아 551호)로서 인문학자들의 글쓰기가 출판시장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문학 위기라는 현재에도 사람들은 책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 노력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또한 인터넷상에서 하루에 약 1000개가 만들어진다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은 어떤가? 이들 인터넷 매체는 개인이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며,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다. 현재 활성화된 인터넷 커뮤니티의 근저에는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즉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하려는 개인들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 인문정신 - 이 꿈틀거리고 있다.
영화 속의 인문학 정신
앞서 이야기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자. 이들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인문학(조앤 롤링-영문학, 톨킨-중세 라틴어)을 전공한 사람들이며, 두 작품 모두 인간의 집단적 사고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신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문학으로서의 ‘이야기’, 역사로서의 ‘신화’, 철학으로서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담은 주제’ 등 인문학적 요소가 짙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작품은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즉, 두 작품 모두 영화화돼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소설(문자 텍스트)과 영화(영상 텍스트)라는 매체의 차이가 인문정신이 가진 커다란 호소력을 전혀 감소시키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영화 수용자(관객)의 측면을 고려하면, 이들 작품의 소통 맥락에서 인문정신은 더욱 도드라진다. 관객(또는 독자)은 작품 속 환상세계에서의 지적 여행과 모험을 통해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깃든 인문정신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김성곤 교수(서울대 영문학과)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의 주제를 ‘saving humanity’로 해석하고 밀러 대위가 구하고자 했던 것이 일개 병사의 생명을 넘어 인간적인 가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영화 ‘웰 컴 투 동막골’의 리수화와 표현철이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켜냈던 것,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와 그의 동료들이 구하고자 했던 것, ‘제리 맥과이어’의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가 부와 명예를 버리고 흑인선수와의 관계 속에서 찾고자 했던 것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인간의 존엄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또 인문학의 대표 영역인 역사와 철학까지 아우른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트로이’,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부터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해낸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그린 ‘쉰들러 리스트’, 6·25전쟁에 휘말린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는 역사를 통해 현재의 삶을 뒤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준다.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영화들도 적지 않다. 영화 자체가 철학 텍스트로서 철학적 담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대표적인 사례인 ‘매트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화는 곳곳에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회의, 세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해답 찾기 등 영화 속에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이 녹아 있다. 이처럼 영화는 인문학의 대표 영역들을 포괄하면서 인간의 인문정신을 대변한다.
1000만 관객시대의 한국 영화가 말해주는 것
영화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양식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성찰 위에서 창작되며, 관객은 영화 속에 담긴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주제를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과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추구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식의 틀을 제공받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창작과 수용이라는 문화 현상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인문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2003년 ‘실미도’,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왕의 남자’에 이어 올해 ‘괴물’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 영화는 매년 한두 편의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을 내놓고 있다. 한 작품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는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4800만 국민 중 1000만 명, 경제활동인구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1000만 관객이 상징하는 한국 영화의 부흥, 여기에 다양한 영화가 제작·수입되어 상영되는 영화시장의 성장은 현재 우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 애정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문학 위기’는 영화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인문학의 위기가 ‘영화로 논술을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랴 싶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준비하는 논술고사의 공통된 주제를 살펴보라. 인간과 환경, 대중문화, 개인과 사회, 법과 정의,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노동과 인간소외, 자아 정체성 등 어느 것 하나 인간의 삶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충실하게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보다 인문정신이 충만한 학생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또한 대학은 더 나은 인간의 삶과 인간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한다는 공통의 목표로 학문을 닦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3년 연세대 수시 논술고사처럼 인문정신을 묻는 문항이 출제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난달 치러진 경희대 2007학년도 수시 1학기 논술 문제도 다르지 않다.
인문학 위기 또는 인문정신을 논하는 데 영화만큼 유용한 소재도 드물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역사, 신화를 담은 문화 텍스트다. 영화는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이미지로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는데, 이 이야기는 물론 ‘인간의 이야기’다. 문학이 문자를 통해 인간의 삶과 가치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영화는 그것을 영상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문학 텍스트의 이동 또는 확장으로 보는 문화 연구의 방법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는다. 영화 시나리오가 문학의 한 장르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학생들과 무관할 수 없는 인문학의 위기를 영화로 풀어보자.
과연 인문학 위기인가
인문학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밝히기 위한 반성적인 지적 활동을 바탕으로 인간 정신의 객관적인 산물을 연구하여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치를 추구하고,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인간 정신의 객관적인 산물’ 중 대표적인 것이 문학·역사·철학 등으로, 흔히 인문학을 말할 때 떠올리는 학문 영역들이다. 문학은 수용자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국면을 체험하게 하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문학이 개인의 실존적 차원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민족·국가 등 집단적 차원의 삶을 통시적으로 표현한다. 역사를 통해 인간은 개인의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성찰하고,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인간적 가치가 구현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한편 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정수(精髓)로서 가장 철저한 비판정신의 소산이다. 인간은 철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명징한 이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람직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 애정이라는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경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라는 사회체제의 변화다. 시장성이 없는 인문학은 대학에서 퇴출의 대상이 되고, 수요가 없는 인문서적들은 ‘폐지(廢紙)’로 전락한다. 한편 외출하는 학생들의 주머니 속에는 포켓북(pocket book)이 아닌 최신 DMB폰이 들어 있고, 집에서는 독서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접속해 가상공간을 유영(遊泳)한다.
그러나 이런 인문학 위기의 실체에 대해서는 좀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위에 언급한 인문학 위기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런 현실이 과연 ‘인문학의 위기’인지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문정신의 위기’인지는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인문학이 경제적 이유로 퇴출당하는 가운데 인문학을 기초로 한 서적의 출판과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비근한 예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등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금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인디라이터(indie writer)라는 ‘독립 필자’(주간동아 551호)로서 인문학자들의 글쓰기가 출판시장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문학 위기라는 현재에도 사람들은 책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 노력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또한 인터넷상에서 하루에 약 1000개가 만들어진다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은 어떤가? 이들 인터넷 매체는 개인이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며,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다. 현재 활성화된 인터넷 커뮤니티의 근저에는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즉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하려는 개인들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 인문정신 - 이 꿈틀거리고 있다.
영화 속의 인문학 정신
앞서 이야기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자. 이들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인문학(조앤 롤링-영문학, 톨킨-중세 라틴어)을 전공한 사람들이며, 두 작품 모두 인간의 집단적 사고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신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문학으로서의 ‘이야기’, 역사로서의 ‘신화’, 철학으로서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담은 주제’ 등 인문학적 요소가 짙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작품은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즉, 두 작품 모두 영화화돼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소설(문자 텍스트)과 영화(영상 텍스트)라는 매체의 차이가 인문정신이 가진 커다란 호소력을 전혀 감소시키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영화 수용자(관객)의 측면을 고려하면, 이들 작품의 소통 맥락에서 인문정신은 더욱 도드라진다. 관객(또는 독자)은 작품 속 환상세계에서의 지적 여행과 모험을 통해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깃든 인문정신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김성곤 교수(서울대 영문학과)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의 주제를 ‘saving humanity’로 해석하고 밀러 대위가 구하고자 했던 것이 일개 병사의 생명을 넘어 인간적인 가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영화 ‘웰 컴 투 동막골’의 리수화와 표현철이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켜냈던 것,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와 그의 동료들이 구하고자 했던 것, ‘제리 맥과이어’의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가 부와 명예를 버리고 흑인선수와의 관계 속에서 찾고자 했던 것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인간의 존엄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또 인문학의 대표 영역인 역사와 철학까지 아우른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트로이’,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부터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해낸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그린 ‘쉰들러 리스트’, 6·25전쟁에 휘말린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는 역사를 통해 현재의 삶을 뒤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준다.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영화들도 적지 않다. 영화 자체가 철학 텍스트로서 철학적 담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대표적인 사례인 ‘매트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화는 곳곳에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회의, 세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해답 찾기 등 영화 속에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이 녹아 있다. 이처럼 영화는 인문학의 대표 영역들을 포괄하면서 인간의 인문정신을 대변한다.
1000만 관객시대의 한국 영화가 말해주는 것
영화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양식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성찰 위에서 창작되며, 관객은 영화 속에 담긴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주제를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과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추구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식의 틀을 제공받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창작과 수용이라는 문화 현상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인문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2003년 ‘실미도’,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왕의 남자’에 이어 올해 ‘괴물’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 영화는 매년 한두 편의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을 내놓고 있다. 한 작품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는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4800만 국민 중 1000만 명, 경제활동인구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1000만 관객이 상징하는 한국 영화의 부흥, 여기에 다양한 영화가 제작·수입되어 상영되는 영화시장의 성장은 현재 우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 애정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문학 위기’는 영화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