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대한 짧은 필름’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글쎄, 아직도 바버라 그레이엄이 영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죄인지, 아니면 힘없는 노파를 매정하게 살해한 강도 중 한 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문에 영화는 조금 사기처럼 보인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시리즈를 장편으로 재편집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솔직하다. 이 영화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청년은 정말로 택시 운전사를 무참하게 살해한 진범이다. 영화는 일단 그걸 인정하고 그의 살인을 보여주면서 과연 국가가 처벌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은지 질문한다. 정답은? 그건 각자의 몫이다.
보통 영화에서 사형은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와 데드라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영화로는 윌리엄 아이리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로버트 시오드막의 ‘환상의 여인’. 주인공 스코트 헨더슨이 아내를 살해한 죄로 잡혀 사형일자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의 연인인 캐럴은 진범을 찾아 뉴욕의 밤거리를 헤맨다. 서스펜스 넘치는 설정이지만 관객들은 안심해도 된다. 바버라 그레이엄과는 달리 스코트 헨더슨은 무죄이고 결국 그는 애인의 도움으로 사형집행 몇 초 전에 구출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는커녕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죽은 쥐만 봐도 비명을 질러대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형은 공개적으로 집행됐고 종종 대중오락이기도 했다. BBC 미니시리즈 ‘핑거스미스’를 보면 교수형 장면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돈을 받고 구경꾼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프랑스혁명 때도 단두형은 인기 있는 오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피투성이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단두대 주변에 몰려들었고, 그들의 머리가 떨어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를 그린 수많은 영화들이 이 드라마틱한 오락을 위해 가짜 머리들을 만들었다. ‘두 도시 이야기’ ‘당통’…. 미국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소피아 코폴라의 신작 ‘마리 앙트와네트’에 사람들이 실망한 가장 큰 이유도 사형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 앙트와네트를 포함한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면 당연히 사형 집행 장면도 나올 수밖에 없다. 가장 유명한 사형은 역시 예수의 죽음이다. 얼마 전에 나온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지금까지 나온 예수 영화들 중 사형 과정을 가장 무자비하게 그린 작품으로, 가학적이거나 때론 피학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사형제도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의 도구로서의 기능이 더 강하다. 아름다운 청년 강동원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교수형으로 죽는다니 어찌 슬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