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한마디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만 충실할 뿐, 정작 의무는 수행하지 않는 철밥통들이다.”
교사들에 대한 비판이 이보다 더 심할 수는 없다. 네 아이의 엄마인 독일인 저자는 작정하고 교사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교사들에게 열 받았던 사연들을 하나하나 까발린 것이다. 저자는 도대체 교사들의 어떤 점에 화가 났을까?
“교사들은 기본 의무이자 가장 중요한 의무인 가르치는 일마저 게을리한다. 어차피 배울 것인데 괜히 일찍부터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줄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철자법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의 인격을 짓밟는 말을 쉽게 내뱉고 욕설을 남발한다. 아이들의 질문이나 의견은 아예 무시해버림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은 물론 학교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이 정도 되면 교사가 아니라 배울 것 하나 없는 불한당이 아닌가. 그런데 저자의 통렬한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방과 후에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라는 통지문을 보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무조건 부모 탓으로 돌린다. 또 심심하면 학교 행사에 학부모들의 참여를 강요하기 일쑤다.”
저자가 9개월 전 이 책을 출간했을 때 독일 교육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부모들은 저자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고, 교사 및 교사 단체들은 맹렬히 비난했다.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책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현재 독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크게 떨어진 것과 관련 있다. 2000년과 2003년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순위에서 독일 학생들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을 기록했고, 여기저기서 교육제도의 전면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교육제도뿐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고조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이 출간됐으니 교육개혁, 아니 교사개혁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그렇다면 저자의 눈에 좋은 교사는 보이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래도 훌륭한 교사들이 있긴 하다”는 말로 좋은 교사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자신의 학창시절 경험과 자녀들의 말을 듣고 평가한 좋은 교사의 모습은 의외로 평범하다.
△학생에게 스스럼없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는 교사(독일 교사들의 경우 방과 후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 현상인 듯) △학교에서 뭔가 잘되고 있거나 문제가 있을 경우 최소한의 통보라도 해주는 교사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신이 맡은 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교사 △학생들을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교사 △편애하지 않고 학생 모두에게 친절한 교사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귀를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교사
저자는 마지막에 교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공격(?) 내용을 공개했다. 엄밀히 말하면 ‘더 이상은 못해 먹겠다’는 반항의 시작인 셈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구구단을 외우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을 것이다. 영어와 동명사의 차이를 설명하느라 입을 쉴 새 없이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학교 교사들이 할 일이니까. 아이가 깜빡 잊고 간 도시락이나 체육복 가방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해서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달 네 아이의 학급비로 내던 3만원의 돈으로 더 나은 일을 해볼 생각이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묘하게도 우리 현실과 겹쳐진다. “어쩜 이렇게 똑같지? 맞아 맞아, 정말 그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을 코 풀듯이 팽하니 풀어버렸네! 속이 다 시원해.” 책 말미의 한국 학부모 독자평이다.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272쪽/ 9500원
교사들에 대한 비판이 이보다 더 심할 수는 없다. 네 아이의 엄마인 독일인 저자는 작정하고 교사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교사들에게 열 받았던 사연들을 하나하나 까발린 것이다. 저자는 도대체 교사들의 어떤 점에 화가 났을까?
“교사들은 기본 의무이자 가장 중요한 의무인 가르치는 일마저 게을리한다. 어차피 배울 것인데 괜히 일찍부터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줄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철자법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의 인격을 짓밟는 말을 쉽게 내뱉고 욕설을 남발한다. 아이들의 질문이나 의견은 아예 무시해버림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은 물론 학교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이 정도 되면 교사가 아니라 배울 것 하나 없는 불한당이 아닌가. 그런데 저자의 통렬한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방과 후에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라는 통지문을 보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무조건 부모 탓으로 돌린다. 또 심심하면 학교 행사에 학부모들의 참여를 강요하기 일쑤다.”
저자가 9개월 전 이 책을 출간했을 때 독일 교육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부모들은 저자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고, 교사 및 교사 단체들은 맹렬히 비난했다.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책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현재 독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크게 떨어진 것과 관련 있다. 2000년과 2003년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순위에서 독일 학생들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을 기록했고, 여기저기서 교육제도의 전면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교육제도뿐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고조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이 출간됐으니 교육개혁, 아니 교사개혁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그렇다면 저자의 눈에 좋은 교사는 보이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래도 훌륭한 교사들이 있긴 하다”는 말로 좋은 교사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자신의 학창시절 경험과 자녀들의 말을 듣고 평가한 좋은 교사의 모습은 의외로 평범하다.
△학생에게 스스럼없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는 교사(독일 교사들의 경우 방과 후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 현상인 듯) △학교에서 뭔가 잘되고 있거나 문제가 있을 경우 최소한의 통보라도 해주는 교사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신이 맡은 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교사 △학생들을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교사 △편애하지 않고 학생 모두에게 친절한 교사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귀를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교사
저자는 마지막에 교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공격(?) 내용을 공개했다. 엄밀히 말하면 ‘더 이상은 못해 먹겠다’는 반항의 시작인 셈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구구단을 외우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을 것이다. 영어와 동명사의 차이를 설명하느라 입을 쉴 새 없이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학교 교사들이 할 일이니까. 아이가 깜빡 잊고 간 도시락이나 체육복 가방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해서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달 네 아이의 학급비로 내던 3만원의 돈으로 더 나은 일을 해볼 생각이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묘하게도 우리 현실과 겹쳐진다. “어쩜 이렇게 똑같지? 맞아 맞아, 정말 그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을 코 풀듯이 팽하니 풀어버렸네! 속이 다 시원해.” 책 말미의 한국 학부모 독자평이다.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272쪽/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