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속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의 중심에 큰무당 이해경이 있다.
그녀가 신내림을 받은 때는 1991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지만 의처증이 심한 남편 때문에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들이 다섯 살 때 사고로 죽었다.
그 후 심한 무병을 앓다가 서해안 풍어제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인 김금화 만신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 이해경은 황해도 무당의 맥을 이어가면서 굿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사이에서’의 시사회에서 작가 이외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가수 김수철 등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녀는 이렇게 타 장르의 예술인과 교류하면서 굿의 현대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무당이다.
“나는 전통 굿의 스타일을 변형하는 게 아니라, 압축하고 정제해서 무대에 올리려고 노력한다.”
박기복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매’도 무당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진도의 씻김굿부터 황해도 무당의 내림굿까지 소개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소통시키고, 죽은 넋을 위로하는 무당들의 제의가 훌륭하게 그려진다. ‘사이에서’의 이 감독은 다양한 굿의 종류에 따라 여러 명의 무당들을 등장시켰던 ‘영매’와는 다르게, 큰무당 이해경을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당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나의 모든 것을 들켜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방송하면서부터 안면을 터온 그녀지만, 인터뷰를 위해 카페의 호젓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긴장이 된다. 그런데 나보다 그녀가 더 떨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굉장히 부끄럽다. 뭘 모를 때는 용감하다고, 조금씩 알아가니까 무서워진다.”
이해경의 삶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BS TV의 ‘이것은 인생이다’(2003년)를 통해 재연 드라마처럼 대역을 통해서 한 많은 삶을 살다가 김금화 만신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기까지의 인생이 대중에게 소개됐다. 그때도 두 달 동안 찍었는데, “내가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흘러가는 대로 찍으라고 부탁했다”고 말한다.“이 감독이 영화 제의를 했을 때도, 한 달 동안은 카메라로 찍지 말고 옆에서 그냥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제의했던 의도가무당의 정체성, 무당의 내면적인 것을 찾아보자는 것이어서 촬영을 승낙했다. 흥미나 오락 위주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해도 맥 잇는 큰무당, 산 자와 죽은 자 소통
그러나 촬영은 순조롭지 못했다. 어떤 때는 이해경이 촬영을 거부했고, 또 어떤 때는 감독이 이렇게는 못 찍겠다면서 판을 깨려고 했다. “촬영하는 동안 옆에 카메라가 있다는 의식이 없었다. 굿에 들어가면 촬영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나 이해경은 가편집을 보고, 영화 안 한다면서 “발광 떨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사이에서’를 본 것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전주에 내려가서 처음 자신이 나온 영화를 봤다.
“내가 나온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놀랐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영화에서 나왔다. TV와 영화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변질이 없이 나를 발가벗기고 있었다. 그것이 짜릿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해경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마어마한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극장 개봉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이 부담스럽고 겁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 여인의 삶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진다는 것, 주인공과 인연을 맺는 사람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이 진실하게 보여진다는 것이 느껴져 만족하고 있다.
‘사이에서’는 이해경의 개인적인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가 무당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또 다른 신들린 인생이 펼쳐진다. 영화의 핵심에는 28살의 처녀 황인희가 있다. 그녀는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 이해경을 찾는다. 이해경은 황인희의 몸속에 신령한 기운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당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았던 자신처럼 황인희 역시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믿고 곁에서 무당수업을 받게 한다.
그러나 황인희는 사람들의 앞날을 예언하고 귀신을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내림굿까지 받아 스스로 무당이 되었지만, 자신의 몸 속으로 혼령들이 들어오는 것을 악착같이 거부한다. 한 재일교포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죽자 가족들은 죽은 영을 위로해달라며 이해경을 찾는데, 의식을 집행하는 도중 황인희는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이 자기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몸서리치며 거부한다.
“굿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신딸들에게 그 상황에 대해 가르쳐준다. 어떤 상황에서는 지금 신이 들어왔는지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들다.”
“굿판 벌인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 지속”
영화를 찍으면서, 이해경이 봐도 무서운 장면이 있었다. 50살이 되어 무병을 앓다가 이해경으로부터 내림굿을 받는 영희라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캄캄한 밤 산속에서, 마치 다중 성격의 소유자처럼 영희의 몸에 여러 귀신이 들어왔다 나갈 때 그녀도 섬뜩하게 무서웠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인희의 내림굿 장면이다. 그러나 이 필름을 외국에 내보낸다고 한옥을 구하다가 용인 민속촌을 섭외해서 찍었는데, 그 장소 설정이 인위적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나는 감독에게 지금도 옥의 티라고 얘기한다.”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지인들이 참석한 시사회에서 이해경은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자본주의사회에 살면서 상업적인 요소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게 힘들다. 나는 그게 두렵다. 남들이 뭐라 해도 무당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무당인 동시에 인간인지라 그게 흔들리기도 한다.”
매우 솔직한 발언이었다. 가령 방송을 타면 전화통에 불이 난다. 매스컴을 타면 영업이 잘된다. 하지만 그때도 “오시는 분들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다. 내 것 있으면 다 줘야 하고 같이 울어야 할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상업적인 것하고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렇게 영화에 나오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갈 것이다.”
‘사이에서’는 8개월가량 촬영했다. 그 많은 필름 중에서 아주 적은 양만 편집되어 공개된 것이 아쉽지는 않을까? 더구나 처음에는 3시간 버전이었는데, 너무 길다고 2시간 안 되게 축소됐다.
“정말 인간적인 부분들이 빠져서 아쉽다. 굿판의 관계가 오래가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굿을 벌인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지속한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가깝게 지내는 유진규 씨는 “진짜 이해경을 봤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다.
무당이 친구 같고 삶의 조언자 같은 사람이라며, 진짜 필요한 존재라고 느꼈다는 일반 관객이 많다. 어느 신부님은,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관객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어느 교수가 ‘영화에서 이해경의 눈빛을 보고 반성했다. 내가 제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건조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해경의 눈은 정말 제자를 사랑하는 눈이다’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독에게 고맙다.”
그녀가 신내림을 받은 때는 1991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지만 의처증이 심한 남편 때문에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들이 다섯 살 때 사고로 죽었다.
그 후 심한 무병을 앓다가 서해안 풍어제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인 김금화 만신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 이해경은 황해도 무당의 맥을 이어가면서 굿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사이에서’의 시사회에서 작가 이외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가수 김수철 등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녀는 이렇게 타 장르의 예술인과 교류하면서 굿의 현대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무당이다.
“나는 전통 굿의 스타일을 변형하는 게 아니라, 압축하고 정제해서 무대에 올리려고 노력한다.”
박기복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매’도 무당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진도의 씻김굿부터 황해도 무당의 내림굿까지 소개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소통시키고, 죽은 넋을 위로하는 무당들의 제의가 훌륭하게 그려진다. ‘사이에서’의 이 감독은 다양한 굿의 종류에 따라 여러 명의 무당들을 등장시켰던 ‘영매’와는 다르게, 큰무당 이해경을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당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나의 모든 것을 들켜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방송하면서부터 안면을 터온 그녀지만, 인터뷰를 위해 카페의 호젓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긴장이 된다. 그런데 나보다 그녀가 더 떨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굉장히 부끄럽다. 뭘 모를 때는 용감하다고, 조금씩 알아가니까 무서워진다.”
이해경의 삶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BS TV의 ‘이것은 인생이다’(2003년)를 통해 재연 드라마처럼 대역을 통해서 한 많은 삶을 살다가 김금화 만신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기까지의 인생이 대중에게 소개됐다. 그때도 두 달 동안 찍었는데, “내가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흘러가는 대로 찍으라고 부탁했다”고 말한다.“이 감독이 영화 제의를 했을 때도, 한 달 동안은 카메라로 찍지 말고 옆에서 그냥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제의했던 의도가무당의 정체성, 무당의 내면적인 것을 찾아보자는 것이어서 촬영을 승낙했다. 흥미나 오락 위주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해도 맥 잇는 큰무당, 산 자와 죽은 자 소통
그러나 촬영은 순조롭지 못했다. 어떤 때는 이해경이 촬영을 거부했고, 또 어떤 때는 감독이 이렇게는 못 찍겠다면서 판을 깨려고 했다. “촬영하는 동안 옆에 카메라가 있다는 의식이 없었다. 굿에 들어가면 촬영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나 이해경은 가편집을 보고, 영화 안 한다면서 “발광 떨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사이에서’를 본 것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전주에 내려가서 처음 자신이 나온 영화를 봤다.
“내가 나온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놀랐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영화에서 나왔다. TV와 영화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변질이 없이 나를 발가벗기고 있었다. 그것이 짜릿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해경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마어마한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극장 개봉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이 부담스럽고 겁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 여인의 삶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진다는 것, 주인공과 인연을 맺는 사람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이 진실하게 보여진다는 것이 느껴져 만족하고 있다.
‘사이에서’는 이해경의 개인적인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가 무당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또 다른 신들린 인생이 펼쳐진다. 영화의 핵심에는 28살의 처녀 황인희가 있다. 그녀는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 이해경을 찾는다. 이해경은 황인희의 몸속에 신령한 기운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당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았던 자신처럼 황인희 역시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믿고 곁에서 무당수업을 받게 한다.
그러나 황인희는 사람들의 앞날을 예언하고 귀신을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내림굿까지 받아 스스로 무당이 되었지만, 자신의 몸 속으로 혼령들이 들어오는 것을 악착같이 거부한다. 한 재일교포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죽자 가족들은 죽은 영을 위로해달라며 이해경을 찾는데, 의식을 집행하는 도중 황인희는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이 자기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몸서리치며 거부한다.
“굿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신딸들에게 그 상황에 대해 가르쳐준다. 어떤 상황에서는 지금 신이 들어왔는지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들다.”
“굿판 벌인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 지속”
영화를 찍으면서, 이해경이 봐도 무서운 장면이 있었다. 50살이 되어 무병을 앓다가 이해경으로부터 내림굿을 받는 영희라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캄캄한 밤 산속에서, 마치 다중 성격의 소유자처럼 영희의 몸에 여러 귀신이 들어왔다 나갈 때 그녀도 섬뜩하게 무서웠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인희의 내림굿 장면이다. 그러나 이 필름을 외국에 내보낸다고 한옥을 구하다가 용인 민속촌을 섭외해서 찍었는데, 그 장소 설정이 인위적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나는 감독에게 지금도 옥의 티라고 얘기한다.”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지인들이 참석한 시사회에서 이해경은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자본주의사회에 살면서 상업적인 요소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게 힘들다. 나는 그게 두렵다. 남들이 뭐라 해도 무당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무당인 동시에 인간인지라 그게 흔들리기도 한다.”
매우 솔직한 발언이었다. 가령 방송을 타면 전화통에 불이 난다. 매스컴을 타면 영업이 잘된다. 하지만 그때도 “오시는 분들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다. 내 것 있으면 다 줘야 하고 같이 울어야 할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상업적인 것하고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렇게 영화에 나오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갈 것이다.”
‘사이에서’는 8개월가량 촬영했다. 그 많은 필름 중에서 아주 적은 양만 편집되어 공개된 것이 아쉽지는 않을까? 더구나 처음에는 3시간 버전이었는데, 너무 길다고 2시간 안 되게 축소됐다.
“정말 인간적인 부분들이 빠져서 아쉽다. 굿판의 관계가 오래가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굿을 벌인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지속한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가깝게 지내는 유진규 씨는 “진짜 이해경을 봤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다.
무당이 친구 같고 삶의 조언자 같은 사람이라며, 진짜 필요한 존재라고 느꼈다는 일반 관객이 많다. 어느 신부님은,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관객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어느 교수가 ‘영화에서 이해경의 눈빛을 보고 반성했다. 내가 제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건조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해경의 눈은 정말 제자를 사랑하는 눈이다’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독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