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을 배경으로 한‘80일간의 세계일주’.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오른쪽).
물론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미국식을 오히려 낮춰보는 경향도 있다. 초창기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계의 이민자 대다수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낮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었던 탓에 지금 미국에서 사용하는 영어에 과거 영국 빈민층의 악센트가 많이 남아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100년 전 대영제국 시절 빛나는 영광 ‘어게인’?
그럼에도 ‘영국식’ 하면 사람들은 뭔가 흘러간 유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품위는 있지만 아득한 기억일 뿐 빛바래고 한물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 ‘영국식’이라는 수식이 풍기는 고풍스런 느낌과도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의 세계에서는 영국식이란 곧 현대식이고, 표준이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의 발전과 제국주의 정책에 의한 식민지를 거느리며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 영국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였을 것은 당연하다. 당시 영국의 여왕 이름부터가 ‘빅토리아’(재위 1837~1907년), 즉 ‘승리’였지 않은가.
부가 흘러넘치고 대영제국의 영광이 빛나던 시절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 건 당연한 일이다. 영국 근대문학을 수놓은 많은 작품이 빅토리아 시대에 쓰였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로도 만나는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80일간의 세계일주’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등이 모두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많은 영국인들, 특히 여성들이 ‘전망 좋은 방’의 여주인공 루시처럼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같은 영국인 남자들을 만나 사랑을 나눴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미스터 포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한 아이콘이었다. 포그의 세계일주는 영국인들이 자국 식민지를 찾아다닌 모험기와도 같다. 지구촌 구석구석이 그들에겐 안방이고 정원이었다. ‘빅토리아풍’이라는 건축·가구 양식은 그 영광의 산물이다. 빅토리아풍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각국의 문화양식을 혼합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유리, 철 등의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는 등 당시의 신기술까지 끌어들였다. 빅토리아풍은 영국 제국주의의 한 집대성이자 당대의 첨단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영광도 저물고, 빅토리아풍이 ‘옛것’의 상징으로 바뀐 지 100여 년도 더 지난 지금, 영국식이 모처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뛰쳐나왔다.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가 해결사로 등장하면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영국식 해법’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유럽 나라들은 영국식 해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슈퍼파워가 위기에 처한 지금 영국이 다시 빅토리아의 영광을 찾아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식에 가려졌던 영국식이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