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왼쪽), ‘화산고’의 한 장면.
하지만 그렇게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데 머물 수는 없다. 이 사건 혹은 사고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의 폭력성에 대해 새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내 모임을 들라면 무엇일까. 아마 ‘일진회’가 아닐까 싶다. 폭력을 가르치고 전수받는 이 모임은 학교 공간에 이미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학교라는 공간의 폭력성 새삼 생각해봐야 할 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그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상당 부분 일진회 혹은 일진회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교실 대신 학교 옥상에 올라가 싸움 실력으로 자기네끼리 서열을 매긴다. 주인공 현수가 연필 대신 쌍절곤을 들고, 교과서 대신 무술교본을 공부하는 것은 이 살벌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1990년대부터 최근 몇 년 전까지 이런 류의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다. ‘화산고’ ‘두사부일체’ ‘뚝방 전설’ 등이 그렇다. 충무로 영화계는 김두한과 이정재가 주먹을 이어갈 ‘새로운 종로와 명동’으로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을 발견한 것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요약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수시로 한목소리를 내는 우리 사회가 과연 이 문제를 ‘근절’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학교폭력 대책을 내놓는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학교의 폭력지수를 높이는 데 공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한 중학교 학부모들이 ‘사랑의 매’를 때려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때려서라도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며 매 다발을 전달하는 모습. 이는 ‘말죽거리 잔혹사’ ‘화산고’ 속 장면들에 오버랩되는 모습이다. 이 학교의 학부모들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어 민주적으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학부모 다수가 찬성한 민주적 결정이었기에 더욱 무섭다.
‘여고괴담’이라는 영화 제목에 ‘괴담’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귀신 이야기여서다. 그러나 귀신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 영화 속 학교는 충분히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친개’라는 폭력교사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 울산 ‘사랑의 매’를 그에 비할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폭력이라도 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것에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 합의’한다면, 나에겐 그것이 괴담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