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 야경. 지난해 6월 개장한 국내 첫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최근 스와치그룹코리아, 로레알코리아 등이 입점함으로써 구색이 다양해지고 있다.
회사원 조은지(28) 씨는 영국 런던 근처에 있는 버버리 공장 아웃렛을 찾아갔다가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아웃렛 인근에 도착해 한 행인에게 길을 물으려 하자 그가 다짜고짜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내 질문을 미리 알아차렸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그 거리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버버리 아웃렛이 어디냐고 물었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라고요.”(조씨)
명품을 향한 한국인의 애정은 럭셔리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아웃렛에까지 뻗친다. 파리, 런던뿐 아니라 뉴욕, 홍콩 등 대도시 명품 아웃렛들에서 한국인은 이미 ‘큰손’으로 통한다.
5일제 정착 쇼핑 패턴의 변화
국내 명품 소비자층 확대 등과 맞물려 대기업들의 프리미엄 아웃렛 진출 열기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최근 같은 환율 불안 시기에는 해외보다 국내에서 쇼핑하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 국내 프리미엄 아웃렛의 수요 역시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신세계와 첼시프로퍼티그룹의 합작으로 문을 연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국내명품 아웃렛 시장 형성에 큰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세계첼시 채은 과장은 “지금까지 할인 판매를 하지 않던 로레알코리아의 랑콤, 비오템, 키엘, 슈에무라 같은 브랜드들과 스와치그룹코리아 등이 9월 입점하는 등 제품군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1월 말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도심형 명품 아웃렛 ‘더블유컨셉레드(W concept RED)’가 오픈하면서 명품 아웃렛의 확산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 패션업체 JH코오스와 해외구매 대행사이트 위즈위드의 조인트 벤처(공동기업)로 탄생한 이 아웃렛에는 구찌, 펜디, 페라가모 등 유명 해외브랜드 50여 종과 수입화장품 브랜드들이 입점할 예정이다.
JH코오스 측은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이 넓은 대지와 건물을 확보하면서 각 브랜드들을 입주시키는 일종의 임대업 형태로 운영된다면 ‘더블유컨셉레드’는 병행수입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선별해 사온 뒤 카테고리별로 진열, 판매하는 멀티숍”이라고 소개했다.
JH코오스는 홍콩의 대형 유통기업 ‘킹파워그룹’의 한국법인 ‘킹파워코리아’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김상훈 킹파워코리아 해외유통사업부 이사는 “해외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아웃렛 매장들은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이 한정적이어서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는 반면, ‘더블유컨셉레드’는 킹파워그룹의 글로벌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품의 품목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편 10월24일 광주시 서구 풍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도심형 아웃렛 광주월드컵점을 열면서 아웃렛 시장 진출에 신호탄을 알린 롯데쇼핑은 11월 말에는 프리미엄 콘셉트의 아웃렛을 경남 김해시 김해관광유통단지 내에 개장할 예정이다. 연면적 4만5000m²(약 1만4000평), 영업면적 2만8700m²(약 7700평) 규모로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 같은 교외형이다. 롯데는 2009년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2010년 대구 동구 이시아폴리스에 각각 대규모 교외형 아웃렛 개장을 계획하고 있어 2010년경 부산시 기장군에 프리미엄 아웃렛 2호점 오픈을 추진 중인 신세계와 아웃렛 부문에서도 또다시 정면승부를 펼치게 됐다.
11월 말 문을 여는 롯데백화점의 프리미엄 아웃렛 조감도. 경남 김해시 김해관광유통단지 내에 연면적 4만5000㎡ 규모로 오픈할 예정이다(왼쪽). 지난 8월 ‘해외명품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소니, 아이그너, 겐조 등의 해외 명품 브랜드 아웃렛을 꾸민 서울 용산의 아이파크몰.
롯데 측은 “국내 백화점의 2010년 전체 매출액 신장률은 2006년 대비 약 2.7%, 몰(mall)형 중저가 아웃렛은 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은 19% 신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 용산 매장 내에 명품 아웃렛을 오픈한 아이파크몰 역시 프리미엄 아웃렛 시장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사장은 “2009년 상반기까지 60여 종의 명품 브랜드를 갖춘 대단위 아웃렛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킹파워그룹도 2010년경 경기 하남시 신장동과 창우동 일대에 400개 매장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명품 아웃렛 및 레저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앞으로 수년간 프리미엄 아웃렛 조성이 유통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웃렛은 유명 브랜드의 재고 또는 이월상품(출시 후 1년차 미만), 매장 전시품, 경미한 하자품 등을 처분하기 위한 할인점이다. 킹파워그룹의 시장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는 1992년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서울 문정동 로데오거리와 1994년 문을 연 ‘2001 아웃렛 당산점’을 효시로, 1998년 전후 외환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유통의 큰 축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프리미엄 아웃렛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명품 브랜드들은 대놓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재고 처리, 단기간 고매출 등 매력적인 효과의 반대급부로 명품의 가치 중 가장 큰 부분인 희소성을 잃게 될 염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병행수입업체나 멀티숍 등을 통해 곳곳에서 아웃렛용 물건이 유입될 경우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수익성에만 초점을 두게 되면서 통제 불가능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루이비통 등 일부 명품 브랜드가 재고품을 소각할지언정 세일이나 할인판매 채널을 통해 유통되지 못하도록 강력히 규제하는 것도 이러한 걱정 때문이다.
럭셔리 시장 전문가인 손주연 블루벨코리아 이사는 “소비자들은 아웃렛에서도 일반 매장에서와 같은 명품 서비스와 품질을 요구하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