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바’ 묘기 단원들.
공연장은 2500여 석의 좌석이 통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고품격 이동식 빅탑 천막극장. 문 밖은 잠실종합운동장이지만, 내부에선 바깥과 전혀 다른 환희의 세계가 펼쳐진다.
고전적인 서커스 형식에 모던한 기교를 담고 아스라한 음악과 코믹한 광대극으로 무장한 시르크 뒤 솔레이(Cirque Du Soleil : 태양 서커스단)의 ‘알레그리아’가 국내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태양 서커스단은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퀴담(Quidam)’으로 첫 내한공연을 가져 남녀노소를 불문한 객석 전체를 탄성으로 채웠던 바로 그 극단이다.
‘알레그리아(Alegria)’는 스페인어로 ‘환희’라는 뜻이다. 서커스 제목으로는 최상이다. 이 작품이 지향하는 환희란 역설적으로 짙은 서글픔 속에 존재하는 기쁨을 뜻한다. 화려한 기교, 아름다운 몸, 중력을 거스르는 공중돌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각종 진기한 묘기를 한자리에서 펼치는 주인공이 바로 서커스단의 연희자들이지만 그 내면은 외롭다.
서커스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숙명으로 삼은 이들에게 ‘알레그리아’는 또 다른 목표를 갖게 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통해 진정으로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바로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오늘날 이 극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된 ‘핸드 밸런싱(지팡이 위에서 팔 하나로 지탱하기)’을 통해 외로운 도전과 성취 후의 환희가 공존하는 연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감이 드러난다.
사실 ‘알레그리아’에서 보여주는 서커스 묘기 중에는 기존의 레퍼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많다. 아크로바틱, 균형잡기, 줄타기, 집단 러시안 스윙 등이 그렇다. ‘알레그리아’는 이 극단의 초창기 작품이다. 이 작품이 2년 후에 발표된 ‘퀴담’과 비교해 서커스 기교를 선보이는 장면이 많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퀴담’이 판타지를 도입해 연극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모던한 작품이었다면 ‘알레그리아’는 보편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의 총체적 서커스극이라 할 수 있다. ‘퀴담’에서 멜빵바지를 입은 소녀가 강렬한 현대인 캐릭터로 작품의 중심에 있었다면, ‘알레그리아’에서는 꼽추 서커스 단장의 무언극과 요정 가수의 노래, 최고조에 이른 서커스의 기교가 삼위일체가 돼 만든 거대한 제의(祭儀)의 순간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11월 말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문의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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