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백원우 의원(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쌀 직불금 수령자 명단 공개 문제로 고함을 치고 있다.
“지난 정부는 밝혀냈나? 국민 대표들이 그렇게 싸가지가 없나?”(한나라당 이애주 의원)
10월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6층 국정감사장. 건강보험 재정과 운용의 문제점 등을 다뤄야 할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쌀 소득보전 직불금(이하 쌀 직불금) 수령자 명단 공개 문제로 온종일 파행을 거듭하더니 결국 막말로 치달았다. 이날 국감은 민주당 측에서 지난해 공단이 감사원에 회신한 쌀 직불금 수령자 105만명의 신분과 직업이 적힌 명단을 요청하면서 서서히 달아올랐다.
● 막말…삿대질 | 정형근 공단 이사장이 명단 보유 사실을 시인했지만 개인정보보호 의무 등을 들어 명단 제출을 거부하자 야당 측 공세 수위가 높아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단 감사를 시작하자며 야유를 보냈다.
송영길 의원(민주당)이 “국회의원 생활 중에 처음이다. (명단 공개 불가 이유를) 사생활 보호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생활에 관심 없다”며 정 이사장을 몰아붙였고, 몇 번의 설왕설래 후 백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형근이 언제부터 비겁한 정치인이 됐나?”(백 의원)
“말이 너무 지나치잖아.”(한나라당 윤석용 의원)
“(백 의원이 자신의 발언 순서에 고함을 치자) 어디다 대고 가로막고 그래? 책상 치고 소리친다고 위협받지 않아. 삿대질하고 책상을 치는 것은 문제가 있어.”(이 의원)
결국 이날 공단 감사는 10월29일로 연기됐다.
● 난타…설전 | 10월7일 열린 기획재정부 국감도 마찬가지. 입씨름과 감정 대립만 있고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도출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은 예산과 세제문제를 두고 ‘외나무 설전’을 벌였다. 시작은 강 장관의 행정고시 2년 선배로 김대중 정부 시절 옛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지낸 강봉균 의원이었다.
강 의원이 “잠재성장률을 7%까지 높이겠다고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하자 강 장관은 “경제학자 수십 명과 이야기한 것인데 웃기는 이야기라고 하느냐”며 받아쳤다.
“감세하겠다면서 국가 채무를 줄이겠다니 경제정책이 뒤죽박죽이다.”(강 의원)
“(발끈하며) 어디가 뒤죽박죽이란 말인가.”(강 장관)
이어 김종률 의원(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얼마나 내느냐”고 묻자 강 장관은 “개인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화가 난 김 의원의 언성이 높아지자 강 장관은 “김 의원님, 꼭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감사가 잘 됩니까?”라고 대응했다.
“우리나라의 종부세 같은 세금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강 장관의 발언이 이어지자 오제세 의원(민주당)은 직격탄을 날렸다. “어느 나라에도 종부세가 없다는 것은 무식한 말이다.” 이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장관의 답변에 문제가 있다” “감세안의 내용도 모르면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할 수 있나” 등 감정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불만을 표출했다.
● 성적 발언…불륜 | ‘성적 발언’으로 국회 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에 제소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10월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가 한국관광공사 등을 대상으로 한 국감장. 이날 문방위는 민주당 의원들이 YTN 노조원 해고 사태와 관련해 국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거나 국감 일정을 늘려 집중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파행됐다. 이 때문에 오후 질의시간은 7분에서 5분으로 줄여 진행됐다.
성윤환 의원(한나라당)은 질의에 앞서 “좀 야한 얘기 같습니다만, 5분은 너무 짧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이어 “존경하는 야당 의원들께서 제가 질문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없앴다. 위원장님께서 좀 보상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인 뒤 본격적인 질의를 시작했다. 당시 성 의원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한 의원은 없었지만 국감 이후 그는 해명해야 했고, 민주당은 10월13일 그를 윤리위에 제소했다.
한라당의 ‘맞보기 제소’도 이어졌다.
국정감사장에서 땀을 닦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에 앞서 10월7일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국감에서는 선거자금과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정두언 의원(한나라당)이 “함부로 답변하지 말라”며 제지함으로써 국감을 방해하고 회의장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이유로 윤리위에 제소됐다.
● 재반박…점입가경 | 10월6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감장.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이 참여정부 시절 중국대사를 지낸 김하중 통일부 장관을 1라운드에서 몰아붙였다.
“통일부 장관에 앉을 사람이 아니다. 영혼을 판 것 아니냐?”(박 의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나?”(김 장관)
2라운드는 오후 추가 질의시간. 박 의원이 “(김 장관이) 발끈하신 것 같은데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자, 김 장관이 “국회의원이지만 말을 삼가달라”며 맞받았다.
이어진 3라운드는 절정이었다. “‘햇볕정책’을 선도했으면서 탈북자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며 거세게 질타한 박 의원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반성하세요”라고 말하자, 김 장관은 “박 의원도 반성하세요”라고 응수했다. 결국 여당 소속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김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화재 직전’ 진화에 나서야 했다.
● 난동…사과 | 10월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감에서는 피감기관 임원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난동을 부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최철국 의원(민주당)이 “공단 동남지역본부에서 거액을 횡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책임자인 이모 씨가 동남지역본부장을 서울지역본부장으로 영전했다”고 지적한 뒤 화장실에 가자, 당사자인 이 본부장이 그를 따라가 담뱃갑과 라이터를 던지는 ‘초유의 난동사건’이 발생한 것. 국감장은 발칵 뒤집혔고, 정장선 위원장(민주당)은 “국감 도중 의원을 따라나가서 행패를 부리는 사례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감사 중단을 선언했다. 이 본부장은 현행범으로 체포돼 영등포경찰서로 이송됐으며, 공단은 긴급이사회를 개최해 이사장과 부이사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감장을 찾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공식 일정을 마감한 18대 국회 첫 국감은 예전과 달리 의원들의 출석률이 높았고 무책임한 폭로성 질의도 많이 줄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묵묵부답이던 피감 기관장들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곳곳에서 정책 질의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제력을 잃은 ‘X표 발언들’과 삿대질, 비아냥거림 등은 국감 녹화방송을 함께 보는 온 가족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