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에 자리한 베니건스의 예전 모습(왼쪽)과 마켓오와 함께 병합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재 모습.
한편 한국의 베니건스는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수식어를 지우는 중이다(베니건스의 파산신청은 미국 직영점에만 적용되며, 한국 베니건스를 포함한 해외 베니건스는 ‘베니건스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재편돼 운영된다).
베니건스의 초록색 로고 아래 어구는 ‘FAMILY RESTAURANT’ 대신 ‘GRILL · PASTA’로 대체됐다. 베니건스는 올해 2월부터 ‘전문 셰프가 요리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유기농 체인인 마켓오와 함께 병합매장을 운영하며 기존 패밀리레스토랑들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일부 매장의 인테리어가 바뀐 것은 물론, 점원이 무릎 꿇고 주문을 받는 패밀리레스토랑 특유의 ‘퍼피독(Puppy Dog)’ 서비스 방식도 사라졌다. 베니건스 측은 “지난 2년 사이 매출 하락이 컸지만 최근의 전면적인 개선으로 지난 상반기 2%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면서 지속적인 차별화 전략 계획을 밝혔다.
베니건스의 이 같은 움직임은 2006년부터 시작된 국내 패밀리레스토랑의 전반적인 부진과 관련이 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30개가 넘던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는 현재 5~6개만 남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들은 “저성장을 넘어 마이너스 성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제1호 ‘코코스’를 기억하나요
한때 패밀리레스토랑은 한국 중산층에게 ‘부(富)’와 ‘세련됨’의 상징이었다. 청춘 남녀는 ‘폼나는’ 첫만남을 위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소개팅을 했고, 생일을 맞은 이들은 특별한 이벤트를 갖고자 그곳을 찾았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첩에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접한 음식 사진이 가득했던 것도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패밀리레스토랑의 시작은 1988년 문을 연 코코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농그룹 계열 미도파가 국내 사업권을 따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1호점을 낸 코코스는 한국에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고, 온 가족을 아우르는 외식문화를 확산시켰다. 경희대 김태희 교수(식품경영학)는 “본래 코코스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게 맞지만 용어의 편의성 때문에 패밀리레스토랑이라 불리게 됐다”면서 “코코스를 계기로 이후 들어온 모든 체인 레스토랑이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90% 이상 소규모로 운영되던 외식업체가 기업화하기 시작한 것도 코코스 이후 생겨난 일이다.
이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패밀리레스토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대기업이 패밀리레스토랑에 뛰어든 것은 1993년 TGI 프라이데이스(이하 TGI)의 성공 이후부터다.
“TGI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레스토랑이었다. 음식 내용이나 가격 면에서 코코스보다 한 단계 발전한 형태였으며(코코스는 캐주얼 레스토랑, TGI는 그보다 한 단계 위인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서빙을 하는 직원들은 캐주얼한 유니폼을 개성 있게 입었다. 생일파티에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무릎 꿇고 주문받는 퍼피독 서비스 등은 이전까지 접하지 못한 신선함을 줬다.”
(사)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정종규 부장은 TGI 이후 1990년대 중반 등장한 패밀리레스토랑에 대해 “음식점이 식사뿐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장소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과 더불어 대기업이 외식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1995년 베니건스와 토니로마스, 빕스 등이 론칭했으며 이어 1997년에 아웃백스테이크가 들어왔다. 정 부장은 이러한 기업형 패밀리레스토랑의 등장이 “외식전문인력 배출시스템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1990년 말부터 국내 다수 대학에서 외식관련 학과들을 개설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패밀리레스토랑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기름진 메뉴 호황은 잠시
하지만 이런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까지 비슷한 콘셉트의 패밀리레스토랑이 우후죽순 등장해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2000년 이후 불기 시작한 참살이(웰빙) 열풍으로 대중의 취향이나 입맛은 변했다. 시푸드레스토랑을 비롯해 각종 웰빙형 레스토랑이 대거 등장했고, 점차 패밀리레스토랑 특유의 고칼로리 음식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줄었다. 자연히 대다수 패밀리레스토랑의 매출이 하락하거나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특히 2006년 하반기부터는 눈에 띄게 공격적이라 할 만큼 급격히 늘어나던 매장의 증가속도도 주춤해졌다. 무엇보다 중산층의 붕괴와 양극화 심화는 중산층 외식문화를 대표하던 패밀리레스토랑 매출에 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2007년 TGI의 매출은 전년보다 9.3% 줄어든 914억원에 그쳤다. 반면 영업손실은 2006년의 5배에 가까운 79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TGI 매각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TGI를 운영하는 롯데푸드스타 관계자는 “2000년대 초까지 연평균 매출액이 20~30%씩 성장한 것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쇠퇴기”라면서 “신규 매장 개설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특정 브랜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CJ푸드빌의 빕스도 마찬가지다. 2006년 한 해 26개 매장을 신규로 연 빕스는 지난해 그 절반도 안 되는 11곳만 오픈했다. CJ푸드빌 권형준 부장은 “패밀리레스토랑 업계의 매출이 전년과 비교해 10% 이상 줄고 있다”면서 “더 이상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이젠 성숙시장에 접어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름 빼곤 다 바꿔라 … 생존 안간힘
현재 패밀리레스토랑들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강구책을 찾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변화는 식재료 개선과 가격경쟁력 강화다.
웰빙 ‘대세’에 맞춰 메뉴도 계속 바뀌는 중이다. 새로운 메뉴가 출시되는 기간도 짧아졌고 기름진 음식 대신 저칼로리의 가벼운 음식이 많이 나왔다. CJ푸드빌 김종필 식품연구센터장은 “저칼로리에다 신선한 식재료 선정에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은 “예전엔 마요네즈 베이스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인기였다면 이제는 올리브오일을 이용한 저칼로리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년에 두 번 바뀌던 메뉴 교체시기도 계절마다 한 번씩으로 주기가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아웃백에서 9900원짜리 점심메뉴가 나온 것을 비롯해 TGI, 토니로마스 등에서도 저가 메뉴를 등장시켰다. 하지만 식재료를 비롯한 전반적인 물가 인상 추세에서 낮은 가격대의 메뉴를 내놓는 것은 이들 업체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화’를 내세워 기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레스토랑들은 가격대를 조금 높이는 대신 베니건스의 사례처럼 웰빙 이미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종대 김영갑 교수(조리외식경영학)는 “가격 인하나 셰프 시스템 도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레스토랑이 어떤 장소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지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더불어 “기존 업체들이 그간 가지고 있던 브랜드 이미지를 얼마만큼 바꿀 수 있을지가 앞으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특히 취향의 변화가 빠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패밀리레스토랑은 해외 레스토랑의 콘셉트를 들여와 그대로 사용한 게 전부입니다. 이제는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계속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김영갑 교수)